윤종용 “정치인들 기업 경영 쉽게 봐… ‘억지 일자리’ 文정권 뒷수습 잘해야”
[송의달이 만난 사람] 윤종용 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윤종용(78) 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문 경영인이다. 그를 ‘국보(國寶) CEO’라 부르는 인사들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윤 전 부회장은 1997년 1월 대표이사에 취임한 해 18조원이던 삼성전자의 매출액을 퇴임한 2008년에 118조원으로 늘렸다.
변방의 평범한 전자(電子)회사이던 삼성전자는, 그가 재임한 12년 만에 세계 1위 제품 10여개를 보유한 글로벌 종합IT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그것도 전대미문(前代未聞)의 IMF 경제위기를 정면 돌파하면서.
◇‘세계 최고 실적 CEO 2위’...한국인 최초
미국 경영전문지인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2010년 1월과 2013년 1월, 윤종용을 ‘세계 최고 실적 CEO’ 2위와 3위로 선정했다. ‘포춘’(Fortune) 아시아판은 그를 ‘아시아에서 영향력있는 기업인 1위’로 발표했다.(2005년 9월 12일자)
미국 투자 전문지 ‘배런스’(Barron’s)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CEO 30인’ 중 한 명으로 2005~2007년 3년 연속 꼽았고, ‘포브스’와 ‘비즈니스 위크’도 윤종용 전 부회장을 표지(表紙) 인물로 소개했다. 우리나라 전·현직 기업가를 통틀어 그 보다 더 높은 세계적 인정(認定)을 받은 이는 아직 없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초일류 삼성전자의 ‘명장(名將)’인 그는 대한민국에 ‘우리도 세계 1등, 세계 1류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기자는 지난달 28일 낮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그의 개인 사무실을 찾았다. 1시간 30분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윤 전 부회장은 줄곧 활기차고 분명한 어조(語調)로 말했다.
◇“文 정권 경제 뒷수습 잘 해야”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매일 오전 10시쯤 사무실에 나와 오후까지 책과 신문, 저널 등을 읽고 사람들을 만난다. 피트니스클럽 운동과 별도로 매일 최소 6000보 이상씩 걸으며 건강관리를 한다.”
- 올해 한국 경제의 화두는 무엇인가?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 부동산 등 여럿 있지만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저질러진 문제들을 잘 수습하는 게 중요하다. 급증한 국가 부채와 개인 부채, 국민연금 및 의료보험 개혁, 노동 개혁, 탈(脫)원전 정책 등을 새 정권이 잘 해결해야 한다. 소비자가 지갑을 닫고,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 모든 문제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 장기화하는 ‘코로나 팬데믹’에서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정상)을 꼽는다면?
“큰 전쟁이나 사건 후에 나타나는 현상인 사회 전 부문에서 밸류에이션(valuation·가치 및 가치관)이 달라지고 생활양식이 바뀌고 있다. 특히 고급 제품·고급 서비스 수요 증가와 비대면(非對面) 유통 확산이 주목된다. ‘자국(自國) 우선주의’를 내건 각국 정부가 코로나 통제 등을 이유로 국가 권한을 강화해 공권력의 간섭이 우려된다.”
◇“정부, 성장잠재력 대폭 끌어 올려야”
- 최근 5년간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평가한다면.
“문 정부의 대표 정책인 소득 주도 성장은 경제 발전의 원인 행위인 투자는 않고 결과물(소득)만 늘려서 억지 일자리를 만들려 한 것이다. 젖소로 비유하자면 좋은 우유가 생산되도록 노력하지 않고 짜놓은 우유 나눠주기에만 급급한 꼴이다. 주52시간제는 국민들을 다시 게으름뱅이로 만들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는 “문 정권 5년 만에 국가부채가 415조원 늘어 올해 최소 1075조원이 되고, 부동산·유가증권 등 자산에 부여하는 정부 세금인 자산세(taxes on property)가 최근 4년 만에 51% 급증했다. 우리나라의 GDP대비 자산세 비율은 지난해 36개 OECD국가 중 미국, 영국 보다 더 높은 세계 2위가 됐다”고 말했다.
- 우리나라가 앞으로 먹고 살 ‘미래 성장 동력’ 확보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렇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강도높게 혁신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미래 성장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원하는 노력을 쏟아야 한다. 여기서 인프라는 수 십년 이상 나라를 지탱하는데 필요한 우수한 인력 양성과 선진 제도 정비 같은 것이다. 인프라에 지속투자해 나라의 잠재 성장률을 대폭 끌어 올려야 한다. 앞으로 이민자 유입도 늘려야 한다.”
- 한달여 후에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는데.
“5년 단위로 바뀌는 정권들은 예외없이 초기에 기업 때리기를 하다가 2~3년 지나면 기업들을 이해하는 척 하다 끝난다. 이런 패턴에 종지부를 찍었으면 한다. 정치 지도자들은 기업이 국가와 사회 발전의 기본이 되는 경제 주체라는 사실을 절실히 인식하고, 기업인들의 의견을 경청해주면 좋겠다.”
그는 “새로 선출되는 정치 지도자는 사리사욕을 버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공정한 정책을 집행하고, 우수한 최고의 인재를 중용(重用)하여 능력있고 건강한 정부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정치인 간섭 않으면 기업 더 잘해”
- 한국 정치는 흔히 ‘4류’로 불리고 있다.
“기업인이 한 시간에 마치는 일들을 정치인들은 몇 날 며칠 붙잡고 입으로만 떠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치인과 정부는 항상 사회 변화에 뒤떨어진다. 기업인들은 현장을 뛰고, 정보를 분석하고, 외국 경쟁사를 이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느라 숨가쁘다. 심하게 말하면 고위 정치인들의 언행(言行)을 보면 기업 경영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위정자들은 ‘기업 활동에 간섭하지 않으면, 기업이 더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 이런 환경에서 삼성전자 같은 세계 1위 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더 나올 수 있나?
“삼성전자가 세계 1위로 오르는데 40년이 걸렸다. 글로벌 기업이 나오려면 기업의 노력과 정부 정책 및 사회 환경이 잘 지원되어야 한다. 특히 정부와 사회가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최우선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업하기 좋은 토양이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글로벌 기업이 나오기 힘들다.”
- 삼성전자 CEO로 12년간 재임하면서 눈부신 성과를 낸 비결이 궁금하다.
“전문경영인에게 확실하게 임파워먼트(empowerment·권한 이양)한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덕분이다. 윗 사람의 지시·허가만 받고 일하는 것과 달리 나는 더 큰 책임감으로 신명(身命) 바쳐 일했다. 한 예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1년 중 4개월은 국내외 현장을 찾아가 직접 챙기는 현장 경영을 했다.”
― 또 다른 요인이라면?
“삼성 입사후 맺은 일본과의 긴밀한 인연이 큰 도움이 됐다. 1970년대 초반까지 한 번 갈 때마다 4개월씩 3번에 걸쳐 산요전기, 미쓰비시전기 등에 가서 연수했다. 1977년부터 3년은 초대 도쿄지점장으로, 1995~96년은 일본 본사 사장으로 근무하면서 일본을 폭넓게 공부하고 경영에 대한 많은 생각과 공부를 했다.”
◇종업원 40% 감축...‘위기’를 ‘기회’로
- 대표이사에 취임한 그해에 IMF 경제위기 직격탄을 맞았는데.
“1997년 말 회사는 13조원의 차입금과 6조원의 부실을 갖고 있었다. 자본은 거의 잠식 상태여서 2~3년 내 망할 수 있는 위기였다. 이듬해 초 2주일 만에 구조조정 계획을 치밀하게 세운 뒤 핵심 임원들과 협의해 모두 사표를 써놓고 위기 탈출에 결사적으로 임했다. 1997년 기준 국내 5만8000명, 해외 2만5000명으로 총 8만5000명이던 종업원 가운데 국내 30%, 해외 40%를 감축하고, 120여개 사업·제품을 매각 또는 철수, 분사했다. 2년쯤 지나자 터널의 끝이 보였다.”
윤 전 부회장의 개인 경력에도 ‘위기’(危機)가 적지 않았다. 그는 VTR사업부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1986년 삼성전자를 그만두어야 했다. 네덜란드 필립스 본사에 가서 1년간 일했다. 귀국후 현대전자에서 8개월쯤 근무하던 중 1988년 이건희 회장의 요청으로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삼성전기, 삼성전관 사장을 맡았지만 1995년 11월 다시 본사를 떠나 일본 본사 사장으로 발령났다. 삼성 안팎에선 이런 연단(鍊鍛·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려 단단하게 함)의 과정을 통해 윤 전 부회장이 ‘위기에 강한 CEO’로 거듭 났다고 분석한다.
- 2000년대 들어 일본 소니까지 제치고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한 원동력이라면?
“가장 큰 요인은 지속적인 인재 양성과 기술력 향상이었다. 전 세계 설계·생산·조달 및 영업·조직망을 통합한 첨단 정보 인프라망도 빼놓을 수 없다. 1996년부터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구축을 시작해 7년여 동안 1조원이 훨씬 넘는 자금을 투입해 전 세계 60여개 주요 지점들이 재고와 영업·판매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도록 했다. 삼성의 ERP 운영·관리 수준은 지금도 세계 최고이다.”
◇“리더는 위기의식 갖고 늘 긴장해야”
- 재임 시절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불러넣는 경영자’로 소문났었는데.
“경영자는 ‘내일이라도 당장 우리 조직이 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늘 긴장해야 하고, 이를 직원들과 공유해야 한다. 이는 엄청난 고통이며, 스트레스이다. 하지만 윗사람부터 솔선하지 않으면 조직은 절대 위기의식을 가질 수 없다. 조직에 위기의식이 없으면 초일류 도약은 불가능하다.”
- 50년여 기업인 인생에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2006년 세계 TV시장 점유율에서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가 됐을 때다. 다음은 세계 전자전기산업 매출 1, 2위인 독일 지멘스와 미국 휴렛팻커드를 제치고 2009년 삼성전자가 매출액 세계 1위에 오른 순간이다. 개인적으로는 2010년 미국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서 ‘세계 최고 실적 CEO’ 2위로 선정됐을 때이다.”
- 후배 경영자들에게 조언한다면?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통찰력과 선견력을 기르고, 예측가능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믿음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 또 끝없이 도전하고 최선을 다 해야 한다. ‘평범한 최선’ 말고 상상할 수 없는 ‘극한(極限)의 최선’을!”
- MZ세대를 비롯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에 충고하신다면?
“호기심(好奇心)을 끊임없이 가져야 한다. 호기심이 있어야 도전의식과 열정이 생긴다. 호기심을 계속 가지려면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어려움에 부딪쳐도 절대 쉽게 포기하지 말라. 최선을 다하고서도 이 길이 절대 아니라고 판단되면 그땐 빨리 다른 길로 갈아타라.”
◇“미국과의 동맹관계 너무 약해졌다”
- 미·중(美中) 대결이 점점 격화하는 와중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어느 나라와도 등질 수 없지만 특히 미국과의 동맹(同盟) 관계를 더욱 굳혀가야겠다. 최근 수 년간 동맹 관계가 너무도 약해졌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중국은 내수 시장을 파고들어야 한다.”
- 한일(韓日) 관계는 어떤가?
“독일과 프랑스는 두차례 세계대전으로 싸워 수 백만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화해해 EU 단일 통합시장을 만들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과거에만 매달리면 한(恨)풀이만 하다 끝난다. 문화와 가치, 체제가 비슷한 일본은 우리와 충분히 친해질 수 있는 나라이다.”
◇“미래 창조하는 사람만 超一流 돼”
- 살아오면서 원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그 분야의 최고(最高)가 되겠다는 신념을 갖고 살았다. 좌우명은 정심(正心), 성실(誠實), 인내(忍耐), 감사(感謝)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중국 고전 <大學>에 등장하는 성어로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깊이 구명해 완전한 지식에 이른다는 뜻)를 사고의 축(軸)으로 삼았다.”
- 국민께 한 마디 하신다면?
“1970년 1인당 국민소득 250달러이던 우리나라가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 중 세계 7번째로 소득 3만달러가 된 것은 ‘기적’이다. 이는 많은 선후배 기업인들이 불철주야로 개척자적인 노력을 한 덕택이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선배들 못지 않게 더욱 훌륭한 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러나 미래는 기다리는 자가 아닌 창조하는 사람의 것이다. 미래를 창조하는 자만 초일류(超一流)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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