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도, LG배터리도… 일본산 소재·장비 끊기면 생산 스톱
日이 장악한 핵심 기술… 갈 길 먼 소부장 국산화
국내 1위 배터리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은 액체 화학물질인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포장하는 핵심 소재 ‘알루미늄 파우치 필름’을 일본의 DNP와 쇼와덴코라는 두 업체에서 수입하고 있다. 2019년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의 한국 수출 규제에 나서자, LG도 재빨리 대체 공급망 확보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국내와 중국 업체를 접촉해 제품 테스트도 진행하고, 납품을 받으려고 여러 방면으로 알아봤다”고 했다.
文은 국내 소부장 기업 격려했지만… - 2020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이천 SK하이닉스 사업장을 방문해 소재·부품·장비 기술 개발 현황과 성과를 보고받은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정부는 2019년 7월‘소부장 독립’을 선언하고 각종 지원 정책을 펼쳤지만 지난해 일본으로부터의 소부장 수입액은 오히려 증가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LG는 여전히 세계시장의 70%를 과점한 두 일본 업체의 제품을 쓰고 있다. 여러 파우치 필름을 테스트해 봤지만 가격과 성능 모두 기준에 미달해 양산(量産)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 밖에도 2차 전지의 전극을 안정화시키는 양극·음극 바인더, 전해액 첨가제, 동박(銅箔·종이처럼 얇게 만든 구리) 제조 설비 등 일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제품이 여전히 많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들이 국산화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수차례 배출한 일본이 핵심 기술 특허를 상당수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본의 기술 특허를 피해가면서 소부장 국산화를 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정부 “해외 대체 공급망 발굴”… 알고 보니 일본 업체 해외 공장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 3종 중 하나였던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수입 의존도가 2018년 93.2%에서 지난해 79.5%로 줄었다. 대체 공급망인 벨기에를 발굴해 포토레지스트 수입액을 10배 이상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벨기에 수입 비율은 15.8%를 차지했다. 정부는 ‘일본 의존도를 줄인 성과’로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본 경제지 니케이는 “한국의 포토레지스트 벨기에 수입분은 일본 JSR의 벨기에 공장에서 제조된 것”이라며 “기만적인 수치 발표”라고 보도했다. 제조 국가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일본 업체의 제품이라는 것이다.
역시 규제 대상이었던 고순도 불화수소는 솔브레인, 이엔에프테크놀로지 등 일부 국내 기업이 국산화에 성공했다. 제조 기술력을 확보해 양산까지 했지만, 여전히 일본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을 위한 원료 수급부터, 제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련 업체가 일본 화학 회사와 지분을 섞은 합작사이기 때문이다. 솔브레인은 일본 스텔라케미파·마루젠케미칼과 함께 세운 훽트에서 원료를 공급받고, 이엔에프테크놀로지의 고순도 불화수소 제조 계열사인 팸테크놀로지는 일본 모리타케미칼(지분 32%) 등과 함께 세운 것이다.
◇소재뿐 아니라 반도체 장비도 日 의존 높아
세계 반도체 1위 기업인 삼성전자도 일본 장비가 없으면 공정(工程)에 큰 차질이 생긴다. 예를 들어, 초미세 공정인 나노(㎚·1나노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단위의 반도체 공정을 진행하는 데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검사 장비는 일본의 레이저텍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한다. 레이저텍의 최대 수출 국가도 한국이다. 이 밖에도 도쿄일렉트론, 에바라제작소 등 반도체 특수 공정에 필요한 장비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일본 업체가 많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담당자와 반도체 장비 공급망 리스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일본 장비 기업에서 100% 독립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용 레이저 절단기는 최근 2년 연속 일본에서 100% 수입했고, 포토레지스트 도포·현상기, 반도체 웨이퍼 식각 등을 위한 분사기, 웨이퍼를 개별 칩으로 절단하는 기기 모두 일본 수입 비율이 90%가 넘는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0년에 반도체 제조 장비 수입 품목을 전수조사한 결과, 일본 수입 의존도가 70%가 넘는 품목이 22개였다”며 “일본이 장비 분야에도 수출 규제를 걸 경우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임경업 기자 up@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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