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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카카오 출신 둘의 필리핀 마닐라 창업기

레이찰스 2021. 12. 12. 06:45

[스타트업] 카카오 출신 둘의 필리핀 마닐라 창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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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하우투]는 현장 창업가의 경험과 생각을 담습니다. 정답이 아닐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론서가 아닌, 현장에 선 이의 노하우 공유입니다.

오늘의 ‘하우투’는 카카오 출신 둘의 필리핀 마닐라 창업기입니다. 2011년 카카오 사번 70번대 입사한 이진호 대표(44), 창업한 스타트업이 카카오에 인수돼 합류한 나영채(41) 대표는 각각 카카오필리핀 법인장과 필리핀 CTO를 맡으면서 필리핀 시장 개척의 특명을 받고 마닐라로 건너갔습니다. 2년간의 카카오톡 동남아 시장 도전이 실패로 돌아간 시점, 둘은 카카오로 안정적인 복귀가 아닌 마닐라에서 게임 회사 창업을 선택합니다. 2016년 슈퍼진 창업 이후 5년이 지난 현재, 회사는 2020년 매출 270억원과 영업이익 233억원을 기록한 작고 튼튼한 게임 스타트업이 됐습니다. 그래서 ‘두 창업자가 마닐라에서 사는 법’을 들어봤습니다. 이진호 공동대표의 워딩은 (이), 나영채 공동대표의 워딩은 (나)로 표기했습니다.

슈퍼진의 창업가, 이진호 대표(왼쪽)와 나영채 대표 /슈퍼진 제공

카카오필리핀 법인으로 발령, 카톡은 접었지만 창업을 택했다


“(이) 2013년 카카오톡은 국내에서 완전 자리를 잡았죠. 하지만 경쟁사인 네이버 라인이나 텐센트 위챗이 글로벌 진출을 왕성하게 하던 시점이었어요. 당시만해도 스타트업이었던 카카오의 리소스는 제한적이었지만, 글로벌 시장 진출에 대한 니즈는 있었죠. 동시에 여러 국가는 못하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필리핀을 찝어서 진출했던 것이 카카오필리핀 법인이었어요. 필리핀 현지 대형 미디어 회사와 JV로 출범했고, 제가 대표를 받았고 나 대표가 CTO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카카오에서 개발자 두분을 모셔서 4명의 작은 팀으로 시작했죠. 입사 때 롤이 글로벌 진출 전략 수립과 실행이었습니다. 마닐라를 가야하는 운명이었죠.”

“(나) 저는 자원했어요. 대학 때 어학연수로 필리핀에서 6개월 정도 지냈거든요. 그때 기억이 좋았어요. 바다와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거든요. 영어도 통했고요. 그래서 은퇴하면 필리핀와서 살아야지 했는데, 사내에서 필리핀 갈 사람을 찾더군요. 주저없이 손들었습니다.”

“(이)카카오톡의 필리핀 시장 도전은 아시다시피 잘 안 됐습니다. 당시 메신저 시장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고, 페이스북도 메신저를 내놓았고요. 결국 본사에서 글로벌 진출 계획은 접는 것으로 결론이 났어요.

그런데 필리핀에서 찾았던 인사이트 하나가 생각났어요. 필리핀에서 카카오톡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니었고, 나름 개발자들이 왔으니까 작은 서비스를 만들어보자고해서 만들었던 웹퀴즈가 ‘스낵박스닷컴’이었습니다. 간단한 퀴즈를 풀고 광고가 같이 나와서 매출을 올리는 콘텐츠였죠. 정말 가볍게 만들었는데, 갑자기 어떤 퀴즈 하나가 1000 PV를 달성했어요.

그런데 분석을 해보니 전세계에서 접속자가 나왔어요. 필리핀은 해외에 이민간 동포가 많은 나라에요. 미국만 하더라도 필리핀 교포가 1000만이나 돼요. 특히 필리핀은 페이스북을 열심히 쓰고 소셜미디어 이용자와 사용 시간이 많은 나라죠. 필리핀의 바이럴이 홍콩, 싱가포르에 도달해서 PV가 나오고 다음엔 미국에서도 수치가 쭉쭉 올라갔어요. 그다음은 중남미, 유럽까지 전파됐죠.

아, 이것이라면 서비스가 가능하겠다. 필리핀이나 동남아 국가들은 1인 노출당 광고단가가 미국의 15분의 1 수준으로 싸요. 필리핀 내수 시장만 노리면 적자를 감수해야죠. 하지만 필리핀은 영어를 쓰는 국가예요. 영어 콘텐츠에 대한 언어장벽이 없죠. 필리핀에서 영어 콘텐츠를 만들어 미국까지 도달한다면 글로벌 바이럴로 사업할 수 있겠구나. 게다가 필리핀은 인건비도 싸고, 개발자들도 영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요. 스타트업에겐 특장점이죠. ‘이렇게 사업을 하면 수지타산이 맞겠다, 여기가 글로벌 바이럴을 하기 위한 Right Place 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 슈퍼진 팀원들의 회식 /슈퍼진 제공

브라이언(김범수)에게 피칭한 가설,  6개월 만에 성공


“(이)그래서 둘이 머리를 맞댔죠. 둘다 가족이 함께 필리핀으로 왔고, 특히 나영채님은 돌아가기 싫어했거든요. 그렇다면 우리가 얻었던 그 인사이트로 사업을 한 번 해보자. 한국 돌아가서 브라이언(김범수 의장)에게 설명했어요. 퇴사하고 마닐라에서 소셜 게임을 만들겠다고요. 우리가 세웠던 ‘From 필리핀 to 미국’ 이 가설이 굴러가는지 확인하고 싶다고요. 김 의장이 ‘창업 선배로서 응원한다, 나가서 열심히 해보고 필요하면 SOS 쳐라’고 하더군요. 2016년도 가을에 퇴사하고 2017년도 1월에 런칭했죠.”

“(나)필리핀 개발자 임금이 한국 개발자 임금의 4분의 1 수준이에요. 재밌는 점은 필리핀도 지금 개발자 구하기 전쟁이라 영어가 되는 시니어 개발자는 대부분 외국계 회사에서 일해요. 그래서 구하기 정말 힘들죠. 하지만 주니어 개발자는 뽑을 수 있어요. 필리핀 대기업 급여 테이블과 비슷하게 임금을 준다고 홍보했어요. 거기에 더해서 강력한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걸었죠. 매출의 10%를 인센티브풀로 제시했어요. 지금도 인센티브풀이 급여전체금액보다 더 커요. 이걸 본 도전적이고 젊은 20대 초중반 필리핀 개발자들이 입사했죠.

필리핀 개발자들의 실력이요? 주니어 개발자들만 비교한다면 전혀 뒤떨어지지 않아요. 한국 개발자들과 협업해봤는데 다들 평가가 좋더군요. 한국의 경험많은 개발자가 조금만 어시스트를 해준다면 충분히 글로벌에서 통할 개발력을 갖고 있는 팀원들이죠.”

 

“(이)소셜 게임이 어떤 것이냐고요? 왜 다들 페이스북에서 몇가지 설문 문항에 대답하면 ‘나를 상징하는 색은, 나에게 어울리는 꽃은, 내 성격을 보여주는 수퍼히어로는’ 이런 결과 화면이 뜨고 페북에 공유하는 게임 해보셨죠? 그게 소셜 퀴즈 게임이에요. 저희가 만든 게임 브랜드는 ‘OMG’고요. 소셜미디어 이용자 중에도 소심하고, 글을 잘 쓰지 못하고, 사진도 못 찍는 분들이 있어요. 페북이나 인스타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만 자신을 표현하고자하는 욕구는 있죠. 이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가벼운 퀴즈게임예요. 여기에 광고가 같이 들어가면서 저희에게는 매출로 돌아오고요.

2017년 1월 서비스 런칭했는데 바로 가설이 검증됐어요. 4개월이 지나니 전체 BEP(손익분기점)을 넘었죠. 물론 둘은 카카오 성장으로 받은 스톡옵션이 있어서 월급을 안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더 공격적인 투자도 가능했고요. 그해 7월에 한국 돌아가서 김범수 의장님 찾아갔어요. 자랑스럽게 성과 말씀 드렸죠. 브라이언이 깜짝 놀랐어요. 슈퍼진이 한달에 쓰는 비용이 너무 적은 거에요. ‘오퍼레이션을 이렇게 키웠는데, 비용이 이것 밖에 안 든다고?’라고 하시더군요.

카카오인베스트먼트 통해서 투자를 받았어요. 사실 돈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고, 카카오 투자가 갖는 의미가 있으니까요. 경험 많은 한국 개발자를 모셔와야 하는데 그냥 마닐라의 스타트업으로는 설득이 어려우니까 투자를 받았어요. 카카오 투자가 주는 신뢰감이 있잖아요? 김 의장님도 흔쾌히 투자를 결정했어요.”

해외 창업을 꿈꾼다면 필리핀을 브릿지로


“(나)필리핀 창업의 강점은 일단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비용이죠. 스타트업은 역시 사람이 중요한데, 큰 부담 없이 초기 세팅을 할 수 있고요. 다른 하나 장점은 일에만 몰두할 수 있다고 해야할까요. 둘다 가족과 함께 갔는데 필리핀은 아무래도 가정부님들을 부담없이 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때 아이가 2~3살이었는데 덕분에 아내에게 상대적으로 육아 눈치를 덜 봤어요. 저는 진짜 회사일에만 몰두하고요.”

“(이)저도요. 육아부담을 덜었죠. 다른 것도 한국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시선에 신경을 써야해요. 주변의 눈치와 평판이랄까요. ‘누구 카카오 나와서 창업했대, 망하는 거 아닐까?’ 라는 주변 시선의 부담에서 완전히 해방돼서 일했죠.”

“(나) 필리핀의 스타트업 문화도 아주 열정적이에요. 필리핀 사람들이 흥이 넘쳐요. 한동안 회사에 큰 스피커를 사두고 노래를 들으면서 일했어요. 너무 시끄러워서 나중엔 스피커를 치웠어요. 저녁엔 남아서 맥주 파티도 하고, 2차로 한국 노래방을 가자고 하는 팀원들이죠. 필리핀 팀원들과 정말 재밌게 일했습니다. 지금도 마닐라 법인 팀원이 40명이 넘어요. 한국 판교의 30명보다 더 많죠. 한국 법인은 작년에 만들었어요. 코로나로 마닐라 현지도 재택을 하기도 했고, 한국의 실력있는 개발자들도 필요했거든요.

필리핀에 도전할 한국 개발자들도 여전히 찾고 있어요. 훗날 미국의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거나 해외에서 창업할 계획이 있는 개발자들에겐 필리핀은 브릿지 역할을 해줄 수 있죠. 미국 같은 나라에 개발자로 갑자기 가면 자신감이 확 떨어집니다. 하지만 필리핀은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고, 조금 영어를 못해도 무시하지 않아요. 그들과 영어로 소통하면서 영어 실력도 금방 늘고요. 새로운 환경에 도전할 분들에게 필리핀과 슈퍼진은 언제나 웰컴입니다. 치안 걱정하는 분들 있는데, 필리핀에서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해서 지은 보니파시오 글로벌시티를 검색해보세요. 상상보다 훨씬 생활하기 좋은 곳, 판교 그 이상입니다.”

“(이)마닐라 맛집 추천은 ‘토마티토’라는 스페인 식당 추천합니다. 쉐프도 스페인인이라 맛있고, 보니파시오 도시도 예뻐서 마치 바르셀로나에 온 것 같아요.”

“(나)마닐라 최고 맛집으로 한식집을 꼽아요. ‘마실’이라는 돼지갈비집입니다. 고깃집하는 친구를 데려갔는데, 그 친구도 인정했습니다. 이 집은 한국에서 팔아도 경쟁력 있는 맛집이라고요.”

2019년 마닐라 팀원들의 한국 여행 중 남이섬에서 찍은 사진. 2018 KPI 달성 기념으로 단체 여행을 왔다. /슈퍼진 제공

임경업 기자 up@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