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건축,구조물

75m 20층 이 건물, 나무로 지었습니다 [WEEKLY BIZ]

레이찰스 2022. 5. 2. 08:32

75m 20층 이 건물, 나무로 지었습니다 [WEEKLY BIZ]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세계에서 둘째로 높은 고층 목조 빌딩 '호호빈'의 전경. 2019년에 완공돼 호텔로 쓰이고 있다. 건물의 약 75%를 나무로 만들고, 목자재를 지지하는 구조물만 철근콘크리트로 고정한 하이브리드 목조 건물이다. 구조가 유사한 건물과 비교해, 총 2800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했다. /호호빈

대규모 금광 산업이 발달해 ‘골드 타운’으로 불렸던 스웨덴 북동부의 작은 도시 셸레프테오에 지난해 새로운 랜드마크가 들어섰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목조 고층 빌딩인 ‘사라문화센터’다. 도시로부터 반경 60km 안에 있는 삼림에서 수확한 가문비나무와 소나무로 쌓아올린 75m 높이의 20층 건물은 호텔과 미술관, 박물관, 극장, 도서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건물 외부는 물론 내부 역시 별도 내장재 없이 목조를 그대로 노출시켜 마치 자연 속을 거니는 느낌을 준다. 건물을 설계한 화이트아키텍츠의 로버트 슈미츠 수석건축가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목재 향기 덕분에 숲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스웨덴 셸레프테오에 지난해 문을 연 20층짜리 목조 건물 '사라문화센터'. 호텔, 미술관, 박물관 등이 들어서 있다. /화이트아키텍트

◇ 나무 고층빌딩 전 세계 열풍, 탄소 배출 줄이고 불에도 강해

19세기 중반 이후 철근과 콘크리트에 밀려 자취를 감췄던 목재가 다시 도시 건축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공학목재 기술이 발달하고 건설업계에도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대량 목재 건축(Mass Timber Construction)’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이다. 목재 무역 그룹 우드웍스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현재 미국에서 건설 중인 다층 목조 건물 수는 1300개 이상으로 2020년에 비해 50% 증가했다. 오는 6월 완공되는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25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어센트타워, 오는 8월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 문을 여는 구글의 5층짜리 사무실 건물도 목조 건물로 완공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밀워키에 건설 중인 목조 빌딩 '어센트'의 조감도. 오는 6월 완공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물이 된다. /손튼토마세티

◇탄소 절감하는 지속 가능 건축

이처럼 대형 목재 건축이 가능해진 것은 공학목재인 ‘구조용 집성재(글루램)’와 ‘구조용 직교 집성판(CLT)’의 개발과 보급 덕분이다. 건물 하중을 지지하는 기둥과 보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글루램은 여러 층의 나무를 한 방향으로 쌓은 뒤 압축시켜 강도를 높였다. 동일한 무게의 강철 또는 콘크리트보다 하중 지지력이 높다. CLT는 넓은 집성판을 마치 젠가처럼 직각 방향으로 교차해 여러 겹 접착한 목재를 뜻한다. 전방위로 하중을 견디는 능력이 탁월해 건물의 벽과 바닥에 쓰인다. 철근 콘크리트만큼 단단하지만 무게는 6분의 1에 불과해 내진성이 뛰어나다.

미래 건축 자재로 목재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친환경적 특성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7%가 건축물을 시공 및 운영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자동차나 항공 등 운송 수단(23%)보다 건물이 훨씬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반면 거대한 온실가스 저장소인 목재로 건물을 지을 경우 탄소를 오랜 기간 저장할 수 있다. 캐나다 건축가 마이클 그린은 “나무는 1㎥당 이산화탄소 1t을 저장한다”며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20층 건물을 지으면 1200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반면, 나무로 같은 높이의 건물을 지으면 이산화탄소 3100t을 저장해 연간 자동차 900대를 도로에서 없애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했다.

실제로 사라문화센터에 사용된 목재는 연간 9000t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한다. 사라문화센터는 이산화탄소 순배출량보다 감축량이 더 많은 ‘탄소 네거티브 빌딩’으로 등록됐다. 슈미츠 수석건축가는 “대량 목재 건축은 지속 가능한 건축을 위한 최선의 설루션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고층 복합 건물 전체를 목재 구조로 구현한 사라문화센터가 탄소 중립을 향한 대전환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목재를 사용하면 공사 기간과 인건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콘크리트를 붓고 굳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이 기둥과 보, 벽이 인근 공장에서 제조·가공돼 공사 현장으로 운반되기 때문이다. 사라문화센터는 일반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올릴 때에 비해 공사 기간을 1년 이상 단축시켰다. 자연스레 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분진과 공해, 폐기물도 대폭 줄었다. 재료 운반을 위한 트럭 배송 횟수도 평균보다 90%가량 감소했다. 미국 밀워키에 들어설 어센트타워 역시 공사 기간이 4개월 단축됐다. 어센트타워 프로젝트 관리자인 팀 고크만은 “콘크리트 바닥을 타설하려면 30~40명의 작업자가 필요하지만, 각층에 CLT 패널을 설치하는 데는 10명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브루문달에 있는 목조 빌딩 '미에스토르네'. 높이 85.4m로 현존하는 목조 빌딩 중 가장 높다. /볼아키텍터

◇화재도 잘 견디는 목조 빌딩

흔히 나무는 화재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있으나, 대량 목재 건축은 의외로 내화성이 뛰어나다. 목재는 화재가 발생하면 표면이 검게 그을려(탄화) 타는 속도가 다른 건축 자재보다 오히려 늦다. 탄화층은 목재 내부까지 불이 번지는 것을 지연시켜 주요 구조부를 화염으로부터 보호하고, 건물이 화재로 인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다. 따라서 화재 시 대피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험 결과 CLT 패널 벽은 섭씨 982도의 열을 3시간 이상 견디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목조 빌딩은 2019년 경북 영주에 지어진 ‘한그린목조관’이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지은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높이 19m)로, 강원도 일대의 낙엽송으로 만든 CLT를 사용했다. 2020년 목조 건축 높이에 대한 규제가 폐지되면서 2024년에는 대전에 7층 규모의 국내 최고층 목조 건축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건물은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이 산림복지전문가 교육시설로 사용할 계획이다.

다만 일각에선 대량 목재 건축 붐이 결국 삼림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샌프란시스코 세계야생동물재단은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목재의 양에는 객관적인 한계가 있다”며 “기후 재난을 피하고 자연 손실을 막으려면 목조 건축에도 제약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량 목재 건축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한 임업 관행을 기반으로 건물을 짓기 때문에 오히려 삼림 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반박한다. 환경단체 도브테일파트너스의 캐서린 페른홀츠 이사는 “삼림 파괴의 대다수는 나무를 베어 그 자리를 개발이나 농업과 같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며 “목재 건축에 대한 강력한 수요는 삼림 생태계의 순환을 돕고, 더 많은 숲을 자라나게 할 것”이라고 했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