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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해!" 39살에 삼성 최연소 임원, 그녀가 돌연 사표 쓴 이유

레이찰스 2022. 9. 12. 08:53

"일단 해!" 39살에 삼성 최연소 임원, 그녀가 돌연 사표 쓴 이유

중앙일보

 제가 두 아이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일단 해! 아님 말고! 그래도 아무 일도 안 생기거든!’ 제 인생을 관통하는 말이에요. 

지난달 31일 만난 김지영 대표는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달라”는 요청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김 대표에게 그런 질문한 데엔 이유가 있죠. 그는 39세에 삼성물산(옛 제일모직) 최연소 여성 임원이 된, 이를테면 입지전적인 여성입니다. 그런데 7년 후 유기농 생리대를 만드는 작은 스타트업 라엘에 합류하죠. 거기서 기껏 회사를 키워놓고는 3년 뒤 또 회사를 나옵니다. 그러더니 스타트업을 차려버렸죠. 과학학습 키트 구독 서비스 똑똑하마를 만든 이큅입니다.

일에 올인하는 화려한 싱글일 것 같지만, 그는 워킹맘입니다. 그것도 쌍둥이 아들(8세)을 키우는 워킹맘이요. 여성 창업자도 드문 스타트업 판에서, 기혼 유자녀 여성 창업자라니. 그는 왜 삼성 임원 자리를 버리고 고생을 자처한 걸까요? ‘이모님’ 구하기도 힘들다는 아들 쌍둥이는 대체 누가 키울까요? 김 대표야 말로 다양한 양육 서사를 발굴하는 미션을 가진 hello! Parents가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양육자죠.

김지영 이큅 대표는 입지전적인 여성이다. 하버드 MBA 출신으로 삼성물산(옛 제일모직) 최연소 여성 임원을 지냈다. 그런 그의 선택은 스타트업이었다. '일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서다. 김현동 기자

Part1.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

김지영 대표가 “일단 해!”라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건 MBA(경영전문대학원) 경험 때문입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삼성물산에 들어갑니다.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마케팅이었습니다. 4년을 일했죠.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죠. 더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버드 MBA로 떠나죠. 거기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첫 학기가 다 지나가는데, 발표 한 번을 안 한 거예요. 당연한 거라서, 다 아는 거라서 말을 안했더니 그렇게 돼버렸죠. 큰 맘 먹고 손을 들까 말까 하는데, 제가 하려던 말을 딴 애가 해버리는 거예요. 그때 결심했어요. 그냥 말하자! 아니면 말지, 뭐! 아니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고요. 오히려 말 안하면 바보인 줄 알고 말이죠. 

 

사실 그는 한국에선 그다지 ‘다소곳한 여성’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자 너무 전형적인 ‘아시아 여성’이 되어 있었죠.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치길 반복한 끝에 깨달았습니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요.

그 정신은 그의 커리어를 관통합니다. MBA를 마친 후 그는 보스톤컨설팅(컨설턴트)을 거쳐 메릴린치(애널리스트)에 갑니다. 그 뒤 야후코리아에서 전략 및 인수합병(M&A) 담당 임원을 했어요. 그리고 마침 삼성물산(옛 제일모직)에서 합류 제안을 받고 이직하죠. 글로벌 회사의 한국 법인은 결정권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게 아쉽던 차에 삼성이 손을 내민 거죠. 삼성물산에선 여성으로 처음으로 남성복 사업부문장을 맡아 적자던 사업부를 흑자로 돌려놓습니다. 덕분에 최연소 여성 임원이 됐고요. 그렇게 잘 나가던 어느날, 돌연 사표를 내고 이름도 낯선 스타트업에 합류합니다. 유기농 생리대를 만드는 라엘로요.

 

삼성은 합리적이고, 체계적이고, 발전하는 회사에요. 많이 배웠죠. 그런데 제 미래는 상상이 가더라고요. 저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일하고 싶거든요. 그건 못하죠, 삼성에선. 그래서 스타트업으로 갔어요.

 

말은 쉽게 하지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겁니다. 크지 않은 것도 막상 내려놓으려면 커보이는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하물며 그가 내려놓으려던 건 삼성의 임원 자리였습니다. 그가 내년 재계약을 걱정하는 임원도 아니었고 말이죠. 하지만 그는 늘 그랬듯,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기로 합니다.

 

결혼도 그랬습니다. 사실 그는 MBA 시절부터 결혼하고 싶었다고 해요. 팍팍한 외국 생활에 지쳐 안정된 가정을 갖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MBA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하고 싶진 않았대요. 거기서 만난 소위 ‘잘나가는’ 남자들은 배우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죠. 귀국 후 일을 하다 보니 세상이 말하는 ‘혼기’를 놓쳤지만, 그는 늘 안정된 가정을 바랐습니다.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자 6개월만에 속전속결로 결혼할 수 있었던 건 그래섭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니면 그때 가서 해결하고, 일단 해보자’고 생각했죠.

 

요즘엔 출산도 기피하잖아요. 육아, 힘들죠. 저는 뒤늦게 시작해 더 힘들지만, 그래도 가장 잘 한 일이 아이를 낳은 거예요. 출산하지 않았다면 똑똑하마를 창업하지도 않았겠죠. 모든 일엔 장점과 단점, 기회와 리스크가 있어요. 그래서 전 뭐든 하자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김지영 대표는 만든 건 하버드 MBA 경험이다. 거기서 그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걸 배웠고, "일단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김현동 기자

Part2. 강점을 레버리지 삼아 약점을 메운다

김지영 대표는 “일단 해보는 것 말곤 별 게 없었다”고 말했지만, 그의 커리어를 들여다 보면 늘 강점을 레버리지 삼아 약점을 메우는 선택을 해왔습니다.

그가 첫 직장으로 컨설팅사를 선택한 건 MBA 출신이라는 강점을 레버리지 삼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하면서 내내 숫자에 약한 게 아쉬웠습니다. 메릴린치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 장고하지 않은 건 그래서죠. 컨설턴트의 분석력을 레버리지 삼아 애널리스트가 되어 재무 감각을 익혔습니다. 애널리스트를 해보니 시장 상황과 기업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걸 넘어 직접 운영해보고 싶어졌대요. 사원·대리였지만, 삼성물산에서 마케터로 프로젝트를 굴리던 때가 자꾸 생각도 나고요. 야후로 옮긴 이유입니다. 야후에서 그는 전략과 인수합병(M&A)을 담당했는데, 지사의 한계가 뚜렷했죠. 삼성에서 불렀을 때 주저하지 않은 건 바로 그 경험 때문입니다.

 

MBA에 간 것도, 적지 않게 이직을 감행한 것도 사실은 제 약점이 뭔지 너무 잘 알겠어서에요. 그 자리에 가면 약점을 메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저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일하고 싶으니까, 길게 보고 옮긴 거죠. 

 

누구나 자신의 약점은 그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래서 어떤 기회와 왔을 때 주저하죠. “내가 저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겁니다. 그럴 때 김지영 대표는 “잘하는 걸 하면서 약점을 메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그가 하버드 MBA에서 ‘동양인 여성’으로 살면서 깨달은 ‘일단 하자’ 정신과도 닿아 있죠. 남들도 다 아는 거라서, 별 거 아니라서 조용히 있으면, 어느 누구도 내 역량을 알아챌 수 없으니까요. 내가 아는 그 걸로 누군가는 칭찬 받고 인정 받고 말입니다.

김지영 대표의 경험은 메타의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셰릴 샌드버그의 경험과도 닮았습니다. 샌드버그는 여성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린인(lean in, 달려들다)’하지 않고 ‘린백(lean back, 물러서다)’한다고 말합니다.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요. 샌드버그가 『린인』이란 이름의 책을 쓴 이유가 바로 거기 있죠. 그래선 결코 기회를 잡을 수 없으니까요.

김지영 대표는 여러 회사를 거치며 일했다. 그의 이직 노하우는 "잘하는 걸 레버리지 삼고, 이직해서 약점을 메우는 것"이었다. 김현동 기자

Part3.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삼성물산(옛 제일모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남성복 사업부문장 시절입니다. 그는 남성복 사업부문장이 된 삼성물산 최초의 여성이었죠. “옷도 못 입어보는데 어떻게 남성복 사업을 이끄냐”는 얘길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사업부문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상황이 안좋아서죠. 당시 남성복 사업부는 매출이 하락 중이었거든요. 김지영 대표 역시 유리절벽(galss cliff)에 섰던 겁니다. 유리절벽은 조직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여성을 대표나 리더로 세워 책임을 지게 하는 걸 뜻하는 말입니다. 유리절벽에 선 그가 제안한 건 로드샵 진출이었습니다.

여성 CEO의 42%는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임명된 반면 남성은 이 비율이 22%로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

사람들이 양복을 안 입기 시작했어요. 온라인에서 사는 식의 구매 패턴도 생겨났고요. 백화점에만 목을 메고 있어선 안된다고 판단했죠. 고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드샵 판매자와 소비자에겐 “백화점 브랜드가 나왔다”고 마케팅했고, 백화점 상품기획자(MD)와 소비자에겐 “라인업이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두 매장에 들어가는 라인을 차별화했고요. “브랜드 가치를 깎아 먹는 미친 짓”이라는 반발이 거셌지만, 그가 맞았습니다. 남성복 사업부의 매출은 반등했고, 덕분에 그는 최연소 여성 임원 자리를 꿰찼죠.

다 맞는 말이에요. 전 남성복은 못 입죠. 남성복 부문에서 잔뼈 굵은 남자 MD들이랑 ‘형 동생’ 하는 것도 못하고요. 못하는 건 포기했어요. 대신 전 제가 할 수 있는 걸 했어요. 데이터를 보고, 현장에 가고, 그걸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했죠. 

 

로드샵을 내기로 한 것도 로드샵 유통 시장의 가능성이 숫자(성장률)로 증명됐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성복 로드샵 시장의 1등 업체가 하는 점주 설명회마다 쫒아다니며 노하우를 배웠고요.

하지 않는 것도 선택입니다. 그는 늘 그래왔죠.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는 건 깔끔하게 인정하고 포기했어요. 대신 할 수 있는 것에 전력을 다했죠.양육자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사도, 육아도 다 잘할 순 없어요. 전 가사는 포기했어요. 음식도, 청소도 젬병입니다. 대신 전 육아에 집중해요. 특히 만들기 같은 걸 하면서 놀아주는 데 온 힘을 쏟아요. 사실 과학학습 키트가 가장 필요했던 건 바로 저죠. 

김지영 대표는 "안되는 건 포기했다"고 말했다. 대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양육자로서도, 가사보단 육아에 집중한다.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김현동 기자

Part4. 결국 내 삶이다. 그러니까 내 스타일대로

그는 1972년생, 만 50세입니다. 아이는 이제 8살이고요. 일하다 보니 결혼도, 출산도 늦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늦어서 포기한 적도 없고, 늦어서 문제라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체력이 달리는 건 아쉽죠.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없는 것도요. 하지만 제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걸 알아요. 커리어에 있어서 끝까지 밀어붙여 봤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일엔 일장일단이 있고, 나는 그저 내 입장에서 선택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엔 유난히 해야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대학을 나오면 대기업에 입사해야 하고요. 어디, 그게 끝인가요? 적당한 나이에 늦지 않게 결혼도 해야 하고, 결혼 하면 “애는 왜 안 낳느냐”는 지청구를 들어야 합니다. 1972년생인 김지영 대표는 아마 그런 압력을 더 많이 받았을 테고요. 그런데도 그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유학가려고 할 때였어요. 추석 때 만난 친척 어른이 ‘지영이 시집 가야 하는데, 웬 유학이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저희 부모님이 그러셨죠. ‘지영이는 공부해야 한다’고요. 부모님 덕분인 것 같아요. 사실 저희 아버지도 뒤늦게 유학을 가셨거든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요. 

 

그의 부모님은 그가 삼성을 나와 라엘에 합류한다고 했을 때도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미래가 밝다”며 응원해주었다고 합니다.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일단 해보자”는 그의 생각은 어찌 보면 대책 없어 보입니다. 그가 그런 대책 없는 생각을 하는 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 믿음 덕분에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지 않았을 테고요. 김지영 대표는 “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어서, 나를 더 믿을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 믿음은 부모님으로부터 온 건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아직 영어학원도 다니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살아서 그런지,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하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더라고요.제 삶을 돌아보면 스스로 필요할 때 해야 진짜로 하는 것 같더라고요.

 

김지영 대표는 “학습에 있어선 잘 챙기는 편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 역시 자신의 부모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있는 게 아닐까요?

김지영 대표가 자신의 속도대로, 자신의 스타일대로 삶을 살 수 있었던 건 자신을 믿어주는 부모님 덕분이었다. 그 역시 그의 아이들에게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현동 기자

마지막으로 김지영 대표가 인터뷰 말미에 했던 말을 소개합니다. 그의 말이 어떤 기회 앞에서 “내가 저걸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주저하는 양육자에게 힘이 되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라엘은 1980년대생 여성 3명(아네스 안, 백양희, 원빈나)이 만든 회사였어요. 아네스 안 대표는 쌍둥이를 키우는 양육자였는데, 리더십이 정말 훌륭했죠. 곁에서 일하며 저도 창업에 도전할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잘나지도 않은 제가 제 이야기를 떠드는 이유입니다. 누구나 다 닥치면 할 수 있거든요.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