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괴물 태풍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고 있는 가운데 4일 오후 경기 수원 수도권기상청에서 예보관이 태풍의 향후 경로를 분석하고 있다. / 뉴스1 김영운 기자
지구에 닿는 태양에너지의 93%가 결국은 바다에 축적된다. 바람과 해류는 적도에 쌓인 열을 극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기상 현상이다. 그걸로도 안 돼 바닷물이 너무 뜨거워지면 열 운반량을 극대화시킨 태풍이 등장한다. 수퍼 태풍이 운반하는 열에너지는 히로시마 원폭 1000만발, 또는 100만㎾급 원전 2만개를 1년간 가동시킬 때의 전력 에너지와 비슷하다고 한다. 아찔하다.
▶기후변화 온도 상승은 극지방에선 빠르고, 적도에서 느리게 진행된다. 열대와 극지방 사이 에너지 낙차가 점점 작아지게 된다. 그래서 기후변화가 진행될수록 발생 태풍의 개수는 줄어든다. 그렇지만 강력한 태풍은 개수도 늘고 힘도 세진다. 열대 바닷물이 태양열을 받아 워낙 가열되기 때문이다. 2015년 과학 논문은 태평양의 수퍼 태풍이 지금은 연간 3개꼴이지만 60~80년 뒤 연 12개로 늘 것으로 봤다. 수퍼 태풍의 풍속은 평균 88m에 달할 걸로 예측했다. 지금까지 측정된 태풍 최대 풍속은 2013년 하이옌의 초속 87m였다. 사라호(1959년) 이후 최강이었다는 2003년 매미 때는 ‘일 최대 풍속’이 초당 51.1m였다.
▶태풍 힌남노도 초강력 태풍이라고 한다. 기상청에서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규모”라는 말까지 나왔다. 기상청은 될수록 좀 더 심각한 쪽으로 예보하는 경향이 있다. 낙관했다가 큰 곤욕을 치른 것이 1987년 셀마 때였다. 기상청은 대한해협으로 빠져나가겠다고 예보했는데 실제론 순천만에 상륙해 내륙을 훑고 지나갔다. 기상청은 예보 실패라는 추궁이 두려워 국회 답변에서까지 실제 경로가 대마도 위쪽이었다고 우겨댔다. 5개월 뒤 ‘진로 조작’이 드러나 혼쭐이 났다.
▶기상청은 힌남노가 2003년 매미와 비슷한 경로, 강도일 걸로 예측했다. 매미 때는 경남 마산이 큰 피해를 당했다. 저기압으로 바닷물이 부풀어오른 상태에서 만조와 강풍이 겹쳤다. 큼지막한 해일이 해안가 매립지에 조성된 아파트와 상가를 덮쳤다. 당시 매미로 인해 100명 이상 인명 피해가 났다. 마산에서만 침수 차량이 8000대였다. 그 이후 마산과 창원 일대 아파트들은 1층을 비운 필로티 형태로 지어진 것이 많다.
▶내일 남해안으로 상륙할 것으로 기상청이 예보한 힌남노의 진로가 이번엔 대한해협 쪽으로 빗나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태풍의 경로를 인간이 어쩌기는 어렵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괴물 태풍’은 점점 늘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마산의 필로티 건물들처럼 강력 태풍에도 견딜 수 있게 철저히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sh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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