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더 큰 것 물려줍니다"…구두 닦아 7억 땅 기부한 부부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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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인연에 담긴 사연을 보내 주세요.
가족, 친구, 동료, 연인 등에 얽힌 어떠한 사연도 좋습니다.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아울러 지인을 추천해도 좋습니다.
추천한 지인에게 ‘인생 사진’이 남다른 선물이 될 겁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사연 보낼 곳: https://bbs.joongang.co.kr/lifepi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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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당신들이 아파 보고, 배곯아 봤기에 다른 이의 마음과 속내가 보인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부부는 일생 나누고 사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상암동에서 구두 수선방을 하는 김병록입니다.
저는 52년 전 처음 구두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열한 살 때였죠. 그러다 다른 일을 해보려 이것저것 다해봤습니다만,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돌아와 구두를 닦으며 구두 나눔을 생각했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헌 구두를 고쳐서 나눠주는 나눔입니다. 제 능력을 살려 나눔을 시작한 겁니다. 그게 26년 전입니다.
그 후 지금껏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헌 구두를 수선하여 새 구두처럼 만들어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공간을 상암동에 운영하고 있고요.
최근에 제가 가진 7억원 가치의 땅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누가 보면 저를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평생 이렇게 살아왔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아내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제 아내와 제가 지금껏 이렇게 살다 보니 변변한 가족사진 한장 없더라고요. 마침 중앙일보에서 인생 사진을 찍어 준다는 걸 알고 저희 가족사진을 찍어 주십사 신청합니다.
김병록 올림
나누며 살다 보니 자연스레 받게 된 국민포장, 김병록 씨는 모처럼 입은 양복에 그것을 달았습니다. 이 가족에겐 부귀보다 더 값어치있는 국민포장입니다.
김병록 씨를 만난 적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입니다. 정확히 그를 만난 게 1997년입니다.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기억이 나는 건 그의 삶 때문입니다. 구두를 닦으면서도 나누며 사는 그의 삶이 워낙 남달랐기에 숱한 세월이 흘렀어도 그를 기억하는 겁니다.
25년이 지나 만난 그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선한 웃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직도 구두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었습니다. 근자에 7억원에 이르는 땅을 기부하기도 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부부에겐 눈에 밟히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품고 보듬으며 그렇게 일생 함께 갈 아들입니다.
사실 이 가족의 속내를 들어보니 평생 보살펴야 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부를 하는 일이 맘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김병록 씨의 아내 권점득 여사에게 대놓고 물었습니다.
“기부하는 일에 선뜻 동의하셨나요?”
“반대는 안 했는데요. 사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어요. 하하.”
이른 아침 촬영이라 미장원에 들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던 권점득 여사는 정작 당신보다 남편의 매무새를 먼저 챙깁니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라 말하면서도 권 여사는 한껏 웃었습니다.
옆에서 듣던 김병록 씨가 묻지도 않았는데 말을 이었습니다.
“준 것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그것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행복감이죠.”
“권 여사는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라는 데요. 혼자만 행복감을 느끼시는 거 아닌가요?”
애매하게 웃는 김병록 씨 대신 권 여사가 답을 했습니다.
“먹고살 게 없는데, 그것을 먹고 살아야 되는데도 그것을 갖다 주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손톱만큼, 아니 손톱에 때만큼은 여유가 있으니까 나누는 겁니다. 하하.”
부부는 두 손으로 구두를 닦고 수선하며 살아왔습니다. 굳은살 깊게 밴 김병록 씨의 손을 살펴보니 짝짝이였습니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훨씬 큽니다. 그만큼 왼손 모르게 오른손이 하는 일이 많았나 봅니다.
“출가한 두 딸은 뭐라고 안 하던가요?”
김병록 씨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습니다.
“얘들이 나름대로 자립심을 갖고 자랐어요. 그래서 아빠에게 무엇을 전혀 받겠다는 생각도 않더라고요. 사실 아빠의 봉사 정신이 그게 유산인 거죠. 돈 물려줘 봤자 써버리면 끝인데 이 정신은 더 큰 유산인 거죠.”
지난해 그는 국민포장을 받았습니다.
사실 권 여사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국민포장엔 권 여사의 몫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만났어요. 당시 남편의 몸무게가 45kg이었어요. 폐결핵을 심하게 앓은 터라 폐가 다 녹은 상태였죠. 제가 매일 엉덩이에 주사를 놓으며 살려냈어요.”
“아니 병원에서 주사 맞지 않고 어떻게 직접 놓으셨나요?”
“병원에서 주사 놓은 비용 3천원이 아까워서 그랬어요.”
이렇게 남편을 살려내고 알뜰살뜰 모아 일군 것을 선뜻 기부하여 받은 국민포장이니 당연히 아내의 몫도 있는 겁니다.
김병록 씨에게 아내는 생명의 은인이자 삶의 후원자입니다. 그러니 김병록 씨의 가슴에 단 국민포장엔 아내의 몫도 있습니다.
김병록 씨가 말을 덧붙였습니다.
“나는 지금 덤으로 살고 있잖아요. 그때 죽어야 할 사람인데…. 그런 저의 아픔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걸 보면 더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간 할 말이 많았던 듯 권 여사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젊었을 때 우리도 4년간 교회에서 쌀을 얻어먹은 적 있습니다. 장사하다가 망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없는 사람에게 쌀이 얼마나 귀한지 압니다.”
김병록 씨는 당신이 아파본 터라 아픈 이들의 마음을 알고, 권점득 여사는 배곯아 봤기에 없는 이들의 속내를 헤아리는 겁니다.
요즘 그들은 구두 수선방 앞에 ‘행운의 항아리’를 두고 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동전을 넣어 기부하게 하려는 겁니다. 결국 기부하는 게 행운이라는 의미인 겁니다.
구두 수선방 앞에 놓인 행운의 항아리입니다. 김병록 씨는 항아리에 동전이 가득 차게 되면 남을 돕는 일에 쓸 요량이라 했습니다.
“1월 28일부터 설치했는데 지금 한 3분의 1 찼어요. 지금 제일 궁금한 게 언제쯤 항아리가 찰지, 한가득 차면 얼마나 될지 그게 제일 궁금해요. 구두를 닦거나 수선하는 사람들에게 500원, 1000원씩 깎아 줍니다. 그 잔돈을 항아리에 기부하시라고 합니다. 신발도 닦고 기부도 하고 그러니 그게 행운이죠.”
김병록 씨는 이 항아리가 좀 더 확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유원지 놀러 가면 연못에 동전 던지는 데가 있잖아요. 행운의 동전이라고들 하는데 그걸 저 항아리에 하게끔 하는 거죠. 직장인들이 커피 내기도 해도 좋고요. 내게 별 의미 없는 동전이 모이고 쌓여 남을 돕는 일에 쓰이잖아요.”
김병록 씨는 방송 출연료 같은 소득이 생기면 7할은 권점득 여사 몫, 3할은 자기 몫으로 나눈다고 했습니다. 그 3할은 물론 전액 기부고요.
이렇듯 오롯이 기부의 삶을 사는 그에게 항아리의 용처가 어딘지 물었습니다.
“오래전 국회의원 선거할 때 유세장에서 커피믹스를 500원씩에 팔았어요. 마침 그때 강원도 산불이 났었죠. 그 커피 판 돈을 산불 난 마을에 기부했죠. 다 모이면 다 쓸 때가 생깁니다. 모으는 게 중요하죠.”
사진 촬영 후 식사를 하러 가는 중에 아들이 제게 사진을 찍어 달라 요청했습니다. 아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아버지인 겁니다.
사진 촬영과 25년 묵은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쌀 배달을 간다며 일어섰습니다. 교회에서 나눠주는 쌀을 필요한 이에게 나눠주려고 가는 겁니다. 가면서 그가 툭 던진 말이 제 가슴에 맺혔습니다.
“큰 빌딩을 가진 사람만 부자가 아니고 마음의 부자도 있잖아요. 저는 지금 나눔을 누리고 사니 제가 더 부자인 거죠.”
“나눔을 누린다”는 그의 말, 오래도록 되뇌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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