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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갈라파고스’에서 탈출하는 방법

레이찰스 2022. 8. 21. 08:14

‘코로나 갈라파고스’에서 탈출하는 방법

[장부승의 海外事情]
입국방역에 집착하는 韓日
갈라파고스의 교훈 잊었나

 

일러스트=한상엽
오랜만에 한국에 나가려다 낭패를 당할 뻔했다. 요즘 한국에 가려면 코로나 음성확인서가 필수다. 확인서가 없으면 비행기도 못 탄다. 그래서 출발 전날 동네 클리닉에 전화를 걸었다. 이상하다. 전화를 안 받는다. 열 번을 걸어도 계속 통화 중. 인터넷으로 예약 가능한 다른 클리닉들을 찾아보았다. 무려 두 달 치가 꽉 차 있다. 간신히 한 군데 통화가 되었는데, 무려 3만엔을 달란다. 그것도 검사 결과는 내일. 비상이다. 여기저기 전화를 더 돌려보다 옜다 모르겠다 하고 어느 클리닉에 무작정 쳐들어갔다. 당연히 창구 직원은 난색이다. 사정을 설명하고 두 시간 정도 기다려 간신히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또 이상하다. 여기 대기실엔 왜 이리 한국말 하는 사람이 많나? 알고 보니 이 코로나 검사 대란의 진원지가 한국이다. 최근 한국행 비자가 풀리면서 많은 한국인, 일본인들이 한국행 항공편을 구매했는데, 탑승 전 음성확인서 제출 의무가 있다 보니 이렇게 ‘코로나 검사 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24시간 내에 코로나 검사를 한 번 더 받으란다. 검사를 안 받으면 1000만원 이하 벌금형 혹은 1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친절하고 엄중하게 적힌 설명서까지 건네준다. 득달같이 동네 보건소로 달려갔다. 검사 결과는 음성. 엊그제 검사받고 비행기 타고 왔는데 또 코를 쑤셨다.

그런데 또 있다. 일본으로 돌아가야 할 것 아닌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입국 전 음성확인서를 요구한다. 동네 보건소에서는 해외출국용 음성확인서 발급이 안 된다고 해서 국립중앙의료원까지 갔다. 닷새 사이에 세 번째로 코를 쑤신다. 검사 결과는 음성.

다행히 일본에 도착하고 나서 공항에서 받던 PCR 검사는 없어졌다. 일주일 자택 격리도 없어졌고, 격리에서 해제되기 위해 필요했던 추가 PCR 검사도 없다. 한국이 일본 정부 분류표상 코로나 위험 국가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 제외 조치가 없었다면 불과 열흘 남짓 사이에 코를 무려 다섯 번이나 쑤실 뻔했다.

일주일간 한국을 다녀오면서 느낀 바가 있다. 마치 갈라파고스 제도의 한쪽 섬에서 다른 섬을 다녀온 느낌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중미 대륙에서 서쪽으로 약 1000킬로미터, 동태평양 적도 부근에 위치한 에콰도르 영토 섬들이다. 갈라파고스가 유명해진 것은 찰스 다윈 때문이다. 1835년 이곳을 방문한 다윈은 흥미로운 사실을 관찰했다. 이 섬의 동식물들이 여타 대륙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다윈의 주목을 끈 것은 갈라파고스의 여러 섬들에서 똑같은 새들이 조금씩 다른 형태를 보였다는 점이다. 지리적 고립의 정도와 생물 종의 유사성 정도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이 관찰이 24년 뒤 인류 사상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다윈의 저작 <종의 기원>의 모태가 됐다.

최근 들어 갈라파고스는 다시 유명해졌다. ‘갈라파고스화(化)’라는 말 때문이다. 주로 경영학에서 쓰이는 이 말은 기업들이 국내 시장 수요에만 집중하다가 세계 트렌드로부터 고립되어 결국에는 도태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국내 수요를 기반으로 한때 미국 시장 규모를 압도하던 일본의 휴대폰 업계가 지금은 사실상 아이폰을 비롯한 외국 제품에 밀려 도태되다시피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일주일 동안 세 번의 코로나 검사를 받으면서 한국과 일본이 ‘코로나 갈라파고스’가 된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해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외국에선 이미 코로나 관련 규제가 완화된 지 오래다. 영국에선 오래전부터 길에서 마스크 쓴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도 올 3월부터 실내 마스크 의무를 해제했다. 미국은 8월 11일부터 고위험군을 제외한 모든 미국인 대상 코로나 관련 규제를 전면 해제했다.

그렇다고 이들 나라에서 코로나가 폭증하나? 코로나 폭증은 한국과 일본이 걱정할 문제다. 8월 12일 기준 일본 코로나 확진자 수는 하루 20만명을 돌파하여 세계 최대 규모다. 인구 대비로 보면 한국이 100만명당 약 2400명으로 압도적 1위. 규제가 없는 유럽과 북미에서 확진자는 오히려 감소 중이다. 입국 전 코로나 음성확인서 제출을 의무화한 나라 역시 OECD 회원국 중 단 두 나라, 일본과 한국이다. 일본은 그나마 입국 후 검사는 면제해 준다. 입국 전후 검사 의무화라는 촘촘한 코로나 방어 체계가 수립된 OECD 유일한 나라 국민으로서 가슴이 웅장해진다. 하지만 정책 효과는 의문이다. 국내 코로나 확진자의 99% 이상은 국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화의 원인은 기업들이 국내만 바라보고 해외 사정에 어둡기 때문이다. 해법 역시 간단하다. 고개를 들어 세상을 널리 보고 그에 맞춰 자신을 바꾸면 된다. ‘코로나 갈라파고스 제도’를 오가는 주민으로서 살짝 걱정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희망 섞인 기대도 해본다. 갈라파고스야말로 인류 과학사에 남는 위대한 창의적 연구의 발상지 아닌가? 한국과 일본의 의료 전문가들과 정책 담당자들이 세계 최대 규모로 폭발 중인 한일 양국의 코로나 파고를 뛰어넘을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놓을지 누가 아나? 하지만 갈라파고스를 뛰어넘으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여기가 갈라파고스라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세상을 둘러봐야 한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