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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금 줄자 '빨간 두줄' 떠도 출근한다…"숨은 확진자 10만명"

레이찰스 2022. 7. 27. 11:25

지원금 줄자 '빨간 두줄' 떠도 출근한다…"숨은 확진자 10만명"

중앙일보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모(31)씨는 26일에도 잔기침을 삼키며 출근했다. 지난 22일 몸 상태가 나빠진 것을 느낀 이씨는 출근하고 한 자가진단키트 검사에서 코로나19 양성을 의미하는 빨간색 두 줄이 나온 상태였다. 지난 1월에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적이 있는 이씨는 이번 자가진단키트 검사 결과를 회사 상사에게 알렸지만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PCR 검사를 받지 말고 출근하라”는 말만 들었다. 이씨는 “1월에 처방 받은 약을 먹으며 버티고 있다”며 “주변에 민폐라고 생각하지만, 회사에서 쉬지 말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32)씨는 지난 3월 열이 39도를 오르내리는 상태에서 점포에 나가 일했다. 자가진단키트의 빨간색 두 줄을 확인했지만 김씨는 “아내도 확진된 상태에서 갑자기 편의점 대신 맡아줄 사람을 구할 수가 없었다”며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기침·발열 등 코로나19 증상이 확연함에도 의료기관에서 코로나19 진단을 받지 않은 채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숨은 확진자’가 코로나19 6차 대유행의 진앙으로 지목받고 있다. 치료비나 격리 기간 지원 등이 줄어들면서 생계유지를 위해 일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26일 서울 중구 서울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9만9327명이라고 밝혔다. 1주 전(19일·7만3582명)보다 1.3배 많은 수치다. 뉴스1

“검사 피하는 ‘숨은 확진자’만 10만명 될 것”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는 26일 0시 기준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9만9327명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20일 11만1291명 이후 10만 명 밑으로 떨어진 뒤 5022명(6월 6일)까지 떨어졌던 신규 확진자 수가 3달여 만에 다시 10만 명에 육박한 것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실제 확진자는 중대본 발표 수치의 두 배인 20만 명일 것으로 보인다”며 “자가진단키트 양성이라도 증상이 약해서 치료받을 게 없다는 생각에 검사받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분석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확진자 지원 축소에…“증상 없으면 검사 안 해”

지난 12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 자가진단키트 판매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확진자에 대한 지원이 줄어든 것도 숨은 확진자가 늘어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전 국민에게 지급되던 격리 기간 생활지원비(2인 이상 가구 1일 15만원)는 지난 11일부터 가구당 소득이 기준중위소득 100% 이하인 가구에만 지급되고 있다. 모든 중소기업에 지원하던 격리 기간 유급휴가비도 30인 미만 사업장으로 지원 대상이 축소됐다. 재택치료 비용 지원도 중단돼 본인이 부담이 늘어났다.

100인 이상인 중소기업에 다니는 최모(38)씨는 자신을 제외한 온 가족이 확진됐지만, 무증상이라는 이유로 검사받지 않고 있다. 최씨는 “상반기에 코로나 공가도 사라지면서 쉬려면 연차를 써야 한다”며 “여름휴가를 이미 써서 연차 쓰는 것도 눈치 보여 감염되지 않았다고 믿고 회사에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무증상자’에게는 비싼 검사비용도 확진 의심자들의 침묵에 한몫하고 있다. 병‧의원에서 진행하는 신속항원검사는 유증상일 때는 5000원 정도만 내면 받을 수 있지만, 무증상이면 유증상일 때보다 몇 배의 검사비를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병·의원마다 검사비도 제각각이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이비인후과는 5만원,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내과는 3만원인 식이다.

“휴가 내기 어려워” “기침도 안 하는데 왜”

연차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근로자들도 기침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최모(27)씨는 “증상이 있어도 대체자를 못 구하면 일하라고 한다”며 “옆자리의 동료가 기침이 있어 불안하지만 사정을 아는 터라 쉬라고 권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지난달 10∼16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코로나19와 직장생활 변화’ 설문조사에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던 353명 중 “유급휴가를 사용했다”고 답한 사람은 비정규직 중엔 15.3%로 정규직(45.0%)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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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증상에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생 이모(22)씨는 “이달 초 방학을 맞아 친구들하고 같이 여행을 갔다가 열이 올라 당황했다”며 “기침이 나는 것도 아니고 열이 금방 내려 키트도 해보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친구들도 괜찮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확진자 지원책은 줄어들고 검사비는 부담되니 사람들이 검사를 피하는 것”이라며 “경증인 ‘숨은 확진자’들이 고위험군인 사람들에게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무료 PCR 검사를 할 수 있는 임시선별검사소를 확대해서 조기에 검사해야 확산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몸이 아플 때 소득 일부를 국가가 보전해주는 상병수당제도가 대안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4일부터 서울 종로, 경기 부천, 충남 천안, 전남 순천, 경북 포항, 경남 창원 등 6개 지역에서 질병과 부상으로 일하지 못 하는 근로자에게 하루 4만3960원씩 상병수당을 지급하는 사업을 시범 실시하고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미국도 코로나19 발생했을 때 연방정부 차원에서 유급 병가를 도입했다”며 “유급휴가가 없는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를 대상으로 상병수당 제도를 우선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은 “시범사업의 보장 수준은 최저임금의 60% 수준”이라며 “국제노동기구(ILO)가 권고하는 직전 소득의 60%는 돼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남영·심석용 기자 kim.namyoung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