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대한민국

[만물상] 스카이라인

레이찰스 2022. 3. 5. 08:48

[만물상] 스카이라인

 

2018년 5월 미국 뉴욕에서 미·북 고위급 실무회담이 열릴 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에게 창밖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보여주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의 마천루는 그 자체가 경제 번영의 상징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응한다면 풍요롭고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 보였다.


▶”파리는 신중하게 작곡된 심포니 같고, 뉴욕은 혼란스럽지만 멋진 재즈 연주자들이 악보 없이 즉흥 연주하는 잼 세션 같다.”(에드워드 글레이저, ‘도시의 승리’). 파리는 고층 건물이나 고층 아파트가 별로 없다.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의 명을 받아 오스만 남작이 파리를 전면 개조했고 그 틀을 유지한다. 반면 뉴욕은 20세기 초반부터 민간에 의해 자유롭게 개발됐다. 뉴욕의 상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해 초고층빌딩 10곳 중 5곳가량이 1930년대 초반에 지어졌다. 뉴욕 스카이라인은 지금도 바뀐다. 도시가 하늘로 쑥쑥 자란다.

▶일본의 수도 도쿄의 스카이라인은 지난 20년 새 상전벽해가 됐다. 20여 년 전 고이즈미 총리 시절부터 도쿄 재생에 박차를 가했다. 고도 제한을 완화하자 낡은 4~5층 건물이 즐비하던 곳에 대기업·금융기업의 멋진 본사 건물이 들어섰다. 추가 용적률을 주는 대신 공원과 녹지를 조성할 책임을 지웠다. 공중권(空中權)을 사서 건물을 더 높이는 것도 허용했다. 당초 30층 허가가 난 도쿄역 인근의 신축 건물은 도쿄역의 남아도는 공중권을 사들여 38층 건물로 높였다. 도쿄역은 공중권 판 돈으로 건물 보수비를 충당했다.

▶1970~1980년대에 서울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고도 성장기에 부족한 집을 대량 공급하느라 지어진 아파트들인데 한강변에 성냥갑 세운 것처럼 똑같은 크기, 똑같은 높이로 들어서 무슨 담벼락처럼 돼 버렸다. 최악의 스카이라인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는 나라의 수도가 맞나 싶을 정도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박원순 전 시장의 아파트 35층 규제를 풀었다. 주어진 용적률 내에서 높낮이가 다른 건물을 단지 내에 지으면 서울에도 스카이라인이 생길 듯하다.

▶서울의 인구 밀도(㎢당 1만4600명)는 홍콩(6888명), 싱가포르(8371명)의 2배 안팎이다. 미국 뉴욕(1만1000명)보다도 높다. 홍콩, 싱가포르, 뉴욕 못지않게 ‘수직 개발’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선 후보들이 용적률 상향 등을 내걸었지만 마구잡이 개발로는 멋진 스카이라인이 만들어질 수 없다.

강경희 논설위원 kh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