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형배 위장탈당 이어, 쌀 의무매입법 ‘윤미향 알박기’
野, 또 선진화법 꼼수… 안건조정위 무력화
국민의힘이 26일 민주당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소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제1교섭단체(다수당)와 그 밖의 소속 의원이 3대3 동수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는 최장 90일간 쟁점 법안을 논의하고, 위원 4명의 찬성이 있어야 법안을 의결할 수 있다. 여야가 최대한 논의해 합의하라는 게 국회선진화법상 안건조정위의 취지다. 다수당의 입법 독재를 막기 위한 장치다.
민형배 무소속 의원이 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검수완박' 공개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민 의원은 취재진이 있는 1층 대심판정 입구가 아닌 중앙현관으로 들어갔다.
이날 공개변론은 국민의힘이 국회의장과 법제사법위원장을 상대로 낸 '검수완박' 관련 권한쟁의심판이다.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 탈당 후 무소속으로서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에 배치된 것이 쟁점이다. 2022.7.12 /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 민주당 소속인 소병훈 농해수위 위원장은 안건조정위에 민주당 신정훈·윤준병·이원택 의원과 국민의힘 홍문표·정희용 의원, 그리고 민주당 출신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들어가도록 구성했다. 여야 3대3 동수가 아니라 사실상 ‘민주당 4표 대 국민의힘 2표’로 만든 것이다. 민주당은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며 자기 뜻대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은 27일 국민의힘이 안건조정위 구성을 요구한 것 자체가 “법안 처리 지연 전술”이라며 법안의 즉시 처리를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윤미향 의원은 어제까지 야당(민주당)에 있던 사람”이라며 “안건조정위는 찬성 측과 반대 측이 모여 숙의하자는 제도인데, 21대 국회 들어 민주당이 안건조정위를 이런 식으로 구성한다”고 반발했다. 윤미향 의원은 “무소속으로 활동한 지 오래됐다”며 “원칙과 절차에 따라 안건조정위에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매년 초과 생산되는 쌀을 정부가 전량 시가에 사들이도록 강제하는 법안이다. 국민의힘이 재정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강행 처리를 예고했다. 거대 야당이 여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입법 폭주를 위해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는 꼼수를 쓴 것이다. 여권에선 “여야가 함께 법안을 숙의하라는 취지로 도입된 안건조정 제도가 민주당의 의석수를 앞세운 입법 독주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양수 국민의힘 간사가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관련해 여야 합의가 되어있지 않은 것에 대해 항의를 하며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요청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이 안건조정위 구성에서 꼼수를 부린 건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4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한 안건조정위를 구성할 때도 편법을 썼다. 안건조정위에 들어갈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법안에 반대 의사를 밝히자, 민주당은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만든 뒤 안건조정위에 양 의원 대신 들여보내 4대2로 법안을 처리했다. 지난 1월에는 공공기관 이사회에 노조를 참여시키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법안이 국민의힘 반대에 부딪히자 민주당이 먼저 안건조정위 구성을 요구했다. 이 안건조정위에는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비례 위성 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들어갔다. 한 법안에 대해 안건조정위를 두 번 구성할 수 없게 돼 있어 국민의힘의 반대가 원천 봉쇄됐다.
지난해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밀어붙일 때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안건조정위에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을 ‘야당’ 몫으로 포함시켰다. 2표밖에 갖지 못한 국민의힘은 안건조정위 구성 방식에 반발하며 불참했고, 민주당과 김 의원만 참석한 안건조정위가 법안 심사 없이 곧바로 법안을 문체위로 돌려보냈다. 2019년 국회 폭력 사태를 낳은 선거법과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처리 과정에서도 민주당과 협력하는 야 3당이 안건조정위원으로 참여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고립시키는 상황을 만들었다.
민주당이 ‘4대2 안건조정위’를 만들어 강행 처리한 법안들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에도 절차적 문제로 인해 원천 무효라는 논란을 낳고 있다. ‘검수완박’법에 대해 국민의힘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권한쟁의심판 사건의 지난 7월 공개 변론에선 이종석 헌법재판관이 “(검수완박을 강행하려는) 의도로 탈당한 민형배 의원을 안건조정위원으로 지정한 것은 절차적 하자가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회사무처는 지난해 발간한 ‘국회법해설’에서 안건조정 제도에 대해 “이견을 조정하기 힘든 안건에 대하여 (각 당 의석) 비율과 관계없이 조정위원회를 구성하여 논의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대화와 타협을 통한 효과적인 안건 처리를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김경필 기자 p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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