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비속어 논란' 강공 택했다…이재명 '불의' 발언이 도화선?
중앙일보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순방 뒤 첫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문답)에서 소위 ‘비속어 논란’에 대한 유감 표명 대신 역공을 택했다. 윤 대통령은 순방 과정에서 빚어진 논란에 관한 질문에 작심한 듯 “논란이라기보다는 이렇게 말씀드리겠다”며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한다는 건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부분을 먼저 얘기하고 싶고, 그와 관련된 나머지 이야기는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 더 확실히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야당의 ‘외교 참사’ 공세에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진상조사’를 요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수고하셨다”며 추가 질문 없이 집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순방 기간 비속어 논란에 대해 유감 표명 없이 "사실과 다른 보도"라며 역공을 펼쳤다. 사진은 26일 도어스테핑 뒤 집무실로 향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대통령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상 ‘MBC’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MBC는 2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48초 동안 대화한 뒤 행사장을 빠져나오며 한 발언을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달아 보도했다. 대통령실이 약 10여시간 뒤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고, '국회' 역시 미국 국회가 아닌 한국 국회를 지칭한 것이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도 “야당이 순방 기간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해 도어스테핑 발언을 한 것”이란 취지의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앞선 이번 사태를 MB정부의 ‘광우병 사태’에 비유한 여당에선 윤 대통령의 반응에 발맞춰 “MBC 행태를 도저히 두고 보기 어렵다(주호영 원내대표)”며 공세를 퍼부었다.
이종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26일 서울경찰청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발언 왜곡 MBC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시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발언 관련 허위 방송한 MBC 사장 등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뉴스1
尹은 왜 '강경대응'을 택했나
대통령실은 “잘못된 언론 보도가 처음이 아니었다”며 강경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내부 분위기도 ‘격앙’에 가까웠고, 순방의 성과가 일부 언론 보도로 가려졌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번 ‘날리면 논란’뿐 아니라 군 장병 속옷 예산 삭감과 대통령실 이전비용 부풀리기 등 야당에서 시작해 특정 언론에서 제기된 가짜뉴스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윤 대통령에 대한 조직적인 공격이 아니면 무엇이겠냐”고 말했다. 일종의 ‘정언 유착’ 프레임을 제기한 것이다. 특히 대통령실에선 지난 2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불의를 방관하는 건 불의”라며 지지자들의 행동을 요구한 대목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수사를 받는 이 대표까지 나서서 불의를 언급하는 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런 윤 대통령의 강경 대응엔 ‘순방 효과’를 기대했던 국정수행 지지율이 야당의 공세에 다시 하강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은 ‘민생’과 ‘약자복지’를 키워드로 연말까지 40%대의 지지율을 회복하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우여곡절끝에 겨우 올라탄 상승 추세가 다시 꺾였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순방 전 33%를 기록하며 두 달 만에 20%대를 겨우 벗어났던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지난 23일 다시 28%로 내려앉았다. 26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20일 36.4%를 기록한 것과 대비해 비속어 논란의 여파로 23일엔 32.8%까지 떨어졌다.
여권에선 “당분간 야당과 협치보다는 강경한 대치 전선이 예상된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도 오후 브리핑에서 “순방 외교와 같이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에서 허위 보도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 피해자는 국민”이라며 재차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발언의 의미를 재확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말한 진상 조사에 대해선 “이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여당에서 추가 조사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박성중 간사(왼쪽에서 세번째)와 위원들이 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발언을 최초 보도한 MBC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오히려 논란 키운다” 우려도
대통령실의 설명처럼 여권에선 MBC를 비판하는 공개 발언과 진상 조사의 필요성을 쏟아내고 있지만, 내부에선 “강경 대응이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여당의 초선 의원은 “윤 대통령이 유감 표명을 하면 벌써 끝났을 논란”이라며 “오히려 사태가 커지는 양상”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날 윤 대통령은 ‘이 xx’ 발언에 대해선 가타부타 언급을 하지 않았고,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xx’ 발언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대신 “야당을 지목한 것은 아니다. 야당에 소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후반기 정기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할 민생 법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야당의 협조는 물 건너갔다(재선 의원)”는 아쉬움도 여권 일각에선 제기됐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유감 표명 없는 강경 대응이 지지자를 달랠 수 있겠으나 비속어 보도를 ‘정언유착’이라 주장하는 것에 중도층 유권자가 동의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대통령실 출입 영상기자단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영상이 보도 전 유출 된 경위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입장문을 내고 “비속어 발언을 영상취재 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왜곡, 짜깁기도 없었음을 분명히 밝힌다”며 “엠바고(보도유예 시점) 이전에 영상이 유출된 경위에 대해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https://www.youtube.com/watch?v=jrKpq4BRdng&feature=share&utm_source=EJGixIgBCJiu2KjB4oSJEQ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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