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 없는 인간들에게 끌린다… ‘소식좌’ 열풍
[Issue+] 新먹방 트렌드
폭식 먹방 피로에 반사이익
건강·환경 오염 이슈도 한몫

대표적 연예계 ‘소식좌’ 작곡가 코드쿤스트(왼쪽)와 방송인 박소현(오른쪽)이 각자의 방식대로 소식을 행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MBC
예부터 밥상머리에서 깨작거리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복 달아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제 반대가 돼가고 있다.
식탐이 결여된, 그래서 밥을 새모이만큼만 먹는 이른바 ‘소식좌’들이 각광받고 있다. 소식(小食)에 1인자를 뜻하는 유행어 ‘좌’(座)를 붙인 신조어로, 새로운 ‘먹방’ 트렌드를 구축했다. 방송인 박소현(51)씨가 최근 각종 예능 섭외 1순위로 떠오른 이유는 특유의 밥맛 없음 때문이다. 과자 한입(하나가 아니라)을 오물거린 뒤 “배부르다”며 지친 표정을 짓고, 아이스 바닐라 라테 한 잔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며, 저녁에는 따뜻한 바닐라 라테로 공복을 달래는 식습관이 일종의 진기명기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인기에 힘입어 웹예능 ‘밥맛 없는 언니들’이 지난달부터 절찬리 방영 중이고, TV 및 각종 유튜브 콘텐츠가 쏟아진다. 소식좌를 광고 모델로 내세운 육류 업체도 등장했다. “한입이면 충분하다”는 표어와 함께.
맥시멈에서 미니멀로

음식 맛없게 먹기로 유명한 개그맨 안영미가 유튜브에서 직접 만든 요리를 시식하고 있다. 화면 우측 상단 타임워치에서 보이듯 2분 이상 오래 씹어 넘긴다. /유튜브 캡처
그간 한국 대중문화계 먹거리 열풍을 주도해온 건 차력에 가까운 폭식 먹방이었다. 삼겹살을 몇 겹씩 집어 입안 가득 쑤셔넣거나, 기름진 음식을 한상 가득 올려놓고 먹어치우며 시청자의 대리만족을 실현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소식좌’가 물길을 바꿨다. 입 짧기로 유명한 개그맨 안영미(39)는 포장용 비빔밥 한 그릇을 아침·점심·저녁에 걸쳐 나눠 먹고, 모델 주우재(36)는 도넛 한 입으로 아침 식사를 끝낸다. 힙합 작곡가 코드쿤스트(본명 조성우·33)는 바나나 2개와 고구마 따위를 하루 식량으로 삼을 따름이다. 이들의 소식은 다이어트가 아니라 그저 식욕 부족 탓이기에 억지스러운 연출이나 연기가 필요치 않다. 카메라 앞에서 맛있는 표정조차 지어보이지 않는 이들의 먹방이 참신해보이는 이유다.
인기의 원인은 초기 먹방 대식가들에게 느낀 충격과 대동소이하지만, 푸드 포르노에 가까웠던 자극적 희열에 피로를 느끼면서 잔잔한 재미로 돌아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의도하지 않은 성찰도 유도한다. 이처럼 적은 열량으로도 ‘소식좌’들은 왕성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쓸데없이 너무 많이 먹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같은 댓글이 빗발친다.
조금 먹어야 속 편해

패션모델 주우재가 아침 식사로 도넛 한입을 먹고 있다. 이후 식사는 종료된다. /MBC
건강과 환경오염 이슈도 소식 바람에 한몫했다. 폭식 먹방은 길티플레저(guilty pleasure)의 성격을 띤다. 많이 먹는 것은 결국 건강을 담보로 한 유희이기 때문이다. 장수 먹방 TV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이 롱런할수록 출연진의 건강을 염려하는 시청자가 늘어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일본의 한 유튜버가 주먹밥 먹방 도중 사망하거나, 미국 유튜버(니코카도 아보카도)가 6년 만에 체중이 90㎏ 불어 산소호흡기 신세를 지는 등 심각한 질환이 적지 않았다. 과잉 PPL(간접광고)이나 음식을 삼키고 몰래 토한 뒤 이를 편집하는 더러운 촬영 실태가 일각에서 제보되기도 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푸드파이터식 낭비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적게 먹어도 포만감 느끼는 이들이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라고 했다.
아끼자… 경기 침체 영향?

소식좌를 위한 맞춤형 밥그릇. 모두 각자의 그릇이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 캡처
‘소식좌’의 등장이 경제 지표 하락이 낳은 유행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박소현은 “하루 식비는 1만원 수준”이라고 밝힌 반면, 대식가 유튜버 히밥(본명 좌희재·26)의 경우 한 달 식비가 1000만원에 육박한다는 고백이 이를 뒷받침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최근 물가 상승 등의 뉴스가 잇따르면서 사회 기류가 절약으로 바뀌는 분위기”라며 “예상 수입 감소로 인한 비용 축소 심리가 먹거리 콘텐츠에서도 실속을 향하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제 사람들이 ‘똘똘한 한입’을 원한다는 것이다.
정상혁 기자 ti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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