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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적자 예고된 한전…文정부때 원가이하로 판 전기료 16조

레이찰스 2022. 8. 8. 08:32

최악 적자 예고된 한전…文정부때 원가이하로 판 전기료 16조

중앙일보

이달 초 서울의 한 주택가 전력량계.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당시 한국전력이 원가 이하로 판 전기 가격만 16조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脫)원전, 재생에너지 확대 등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서 올해는 더 큰 손실이 예고된 상태다. 한전의 적자가 쌓여가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압박 속에 전기료에 제값을 매길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7일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실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본격 추진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전이 원가 이하로 판 전기 가격만 16조6190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저유가 덕에 원가 보상률(판매수입을 총괄원가로 나눈 값)이 101.3%를 기록한 2020년을 제외하면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봤다는 의미다. 특히 지난해엔 원가 보상률이 85.9%에 그쳤다. 13년 만에 기록한 최저치다.

이는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이 커졌지만, 요금 결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전체 발전량의 7.5%로 사상 최고였다. 2011년(2.5%)의 3배가 됐다. 반면 원자력 비율은 27.4%로 10년 새 3.7%포인트 떨어졌다. 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 속에 상대적으로 원가가 싼 발전 방식이 줄어들고,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발전 방식이 늘어났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런 상황에서 전기 생산용 연료비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할 수 있는 연료비 연동제가 지난해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비용 조정 절차는 정부 개입 속에 유명무실해졌다. 한전은 지난해 1분기 1킬로와트시(㎾h)당 3원을 인하했다. 그 뒤 2~3분기엔 동결 조치가 이뤄졌다. 4분기에야 3원이 다시 인상됐다. 올해 들어서도 2분기까지 변동이 없었다. 지난해 이후 5번의 인상 기회가 있었지만, 실제 인상은 한 번에 불과했다. 인하액을 감안하면 전기요금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한무경 의원은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으로 전기료가 오른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문 정부에서는 무리하게 전기료를 묶어뒀고, 한전 손실이 확대됐다"며 "결국 탈원전 비용 청구서를 다음 정부와 국민이 떠안게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 의원은 이어 "국제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를 때는 선거를 의식해 스스로 만든 연료비연동제까지 무시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올해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석유·가스·석탄 등 해외에서 도입하는 연료 가격이 뛰었지만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워지면서 전기요금 체계가 휘청이고 있다.

올해는 더 심각, 전기료 추가 인상 고심 

한무경 의원실에 따르면 한전은 올 1분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연료비 급등으로 전력 구입에만 22조9815억원을 썼다. 반면 판매수입은 15조6364억원에 그쳤다. 전력 구입비가 총괄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2~85%인 걸 감안하면 석달 동안 원가 이하로 판 전기 가격만 11조4000억~12조4000억원에 달한다. 에너지 가격 오름세가 이어지면 올해만 50조원 가까운 손해를 보며 전기를 팔아야 하는 셈이다.

한전 적자 폭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1분기 7조786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지난해 전체 적자액(5조8601억원)을 넘어섰다. 최근 금융가에선 2분기 영업적자도 5조원을 훌쩍 넘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올 한해만 30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적자를 낼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한전 적자 징후는 지난해부터 이미 있었는데 연료비 연동제만 제대로 돌아갔어도 적자 폭이 크게 줄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전 손실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론 전기료 인상이 첫 번째로 꼽힌다. 한전에선 정부 측에 1㎾h당 33.6원의 연료비 조정 단가 인상을 요청했다. 하지만 3분기 요금의 연료비 조정 단가는 5원 인상되는 데 그쳤다. 연간 5원만 올릴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4분기에는 사실상 더 인상하기 어렵다.

그나마 올해 ㎾h당 기준연료비를 9.8원 올리기로 해서 그중 절반인 4.9원이 4월 인상됐고, 나머지는 10월에 반영할 예정이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도 지난달 한 방송에 출연해 "한전 적자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전기요금 인상밖에 없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연료비 연동제를 개선해 연간 인상 한도를 늘리는 방안도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등 물가 당국은 예정된 4.9원 인상을 넘어서는 추가 인상에 부정적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최대 변수는 인플레이션이다.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면 전기요금을 올리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다만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와 급증한 연료비를 감안하면 '요금 현실화'를 더 미루기 어렵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유승훈 교수는 "당장 4분기 요금이 적용될 10월부터 연료비 연동제를 바꿔서 추가 인상하는 건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연말이 되면 겨울철 연료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전 적자가 더 커질 수 있다"면서 "올해 안에 연료비 연동제를 개편해서 내년 1월부터 빠르게 적용하는 한편, 주요 선진국처럼 독립적인 전기 위원회를 만들어서 정부 등의 입김이 닿지 않는 요금 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세종=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