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상사·프랑스인 동기·페루인 후배...다국적 IT 인재가 몰려온다
[다시 외국인 200만명 시대] [上] 다국적 IT 인재 몰린다
“국적불문, 능력만 본다” 늘어나는 글로벌 인재
지난 15일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있는 웹툰·웹소설 현지화 업체 키위바인 사무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자회사인 이곳에 들어서니 외국 기업에 온 느낌이었다. 한국과 미국·캐나다·멕시코·벨기에·페루 출신 ‘다국적 군단’ 35명이 한데 모여 일하는 모습 덕분이었다.
인도직원 146명 삼성전자, 매끼 인도 음식 제공 - 삼성전자 수원 본사 모바일 연구소 구내식당에서 인도인 직원이 인도음식 코너에서 점심 메뉴를 배식받고 있다.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외국인 500여 명 중 인도인은 146명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인도 최고 명문인 인도공과대학(IIT)을 졸업한 IT 인재들이다. /삼성전자
스페인어팀을 이끄는 아나 만조(여·28) 팀장은 멕시코 국적. 팀원들과 카카오의 인기 웹툰 ‘쓰레기장 속 황녀님’을 번역 중이던 그는 능숙한 한국어로 “같은 스페인어라도 라틴아메리카에서 쓰는 어휘와 뉘앙스가 다르기 때문에 늘 팀원들과 현지 친구들에게 물어가며 작업한다”고 말했다. 만조 팀장은 “전에 ‘극락왕생’이란 단어를 번역할 때 머리가 많이 아팠다”고 했다. 한국 생활 10년 차인 미국인 레티샤 웰스(여·32)씨는 “원어민 교사로 2~3년 일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한국 문화에 푹 빠져서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임직원 외국인 30% 스타트업 “국적은 무의미”
국내 스타트업 업계 인재 채용에서 국적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스타트업들이 공격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면서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인맥을 갖춘 인력을 적극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로 해외에 나간 스푼라디오는 한국 사무실 임직원 90명 중 13명이 미국, 유럽,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출신이다. 에미카 가와무라(31) 팀장은 일본 야후재팬에서 3년간 근무하다 한국으로 왔다. 그는 “한국 드라마와 K팝에 대한 관심이 한국 스타트업으로 이어졌다”며 “한국에서 취업하려고 어학연수를 하다가 스푼라디오에 입사했다”고 말했다. 대만, 홍콩 같은 중화권에서 인기가 많은 여행·쇼핑 플랫폼 크리에이트립는 전 직원 55명 중 외국인이 16명으로 약 30%를 차지한다.
해외 인재들이 늘어난 데는 지난 2년간 개발자 채용난 탓에 해외 스카우트로 눈을 돌린 기업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액셀러레이터(초기 창업 기업 발굴·투자) 퓨처플레이는 지난해 아프리카 부룬디 출신에 이어 최근 인도 출신 개발자를 채용했다.
미 증시에 상장한 쿠팡의 경우 한국 사무실의 임직원 6000명 중 외국인은 250명이다. 개발자가 가장 많지만 마케팅, 광고, 재무 등 직군이 점점 다양해지는 추세다. 쿠팡 관계자는 “한국 인재들이 해외 취업을 하는 것처럼 해외 인재도 한국의 좋은 일자리에 취업을 하는 시대”라며 “국적과 상관없이 가장 적합한 사람을 뽑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만 500명·현대차는 사장 등 핵심 보직에 포진
스타트업이나 벤처보다 상대적으로 기업 문화가 보수적인 대기업에서도 외국인 임직원들이 점점 늘며 역할이 다양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직원이 약 500명으로, 대부분 R&D(연구·개발)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인도(146명) 출신이 가장 많고 일본(84명), 중국(61명), 미국(49명) 순이다. 삼성전자 수원 본사 R5(모바일 연구소) 구내식당엔 한식·중식·일식과 함께 인도식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다. 매일 인도식 치킨 튀김, 케밥 등을 제공하고, 식자재 구매 단계부터 100% 할랄(무슬림에게 허용된 식품) 인증된 닭고기, 양고기 등을 사용한다.
지난 11일 점심시간 인도식 코너에서 배식을 기다리던 라가브 가르그(25)씨는 인도 최고 명문 IIT(인도공과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뒤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삼성전자 인공지능 음성 서비스 빅스비 음성인식 개발팀에서 일하는 그는 “대학 시절 삼성전자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입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바룸 스리람 워빌리세티(24)씨도 IIT출신이다. 그는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삼성전자를 지원했다”며 “음식·언어 차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회사 생활에 별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헬프 데스크를 만들어 외국인 직원의 입사부터 자녀 교육 기관·입학 상담까지 도와주고 있다.
현대차는 마케팅·브랜드·연구개발·디자인 분야 고위직을 중심으로 외국인 임직원 70여 명이 포진해있다. 현대차 글로벌 COO(최고운영책임자) 호세 무뇨스 사장, 그룹 CCO(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 현대차 고객경험본부장인 토마스 쉬미에라 부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기아도 고객경험본부장, 디자인센터장이 외국인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이들에 앞서 디자인 분야의 피터 슈라이어 사장, 연구·개발 부문 알베르트 비어만 사장 영입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은진 기자 momof@chosun.com변희원 기자 nastyb82@chosun.com장형태 기자 sha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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