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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배운 사람들이 ‘국힘’ 지지? 유권자 폄하하는 이재명의 오만과 편견 [노정태의 시사哲]

레이찰스 2022. 8. 8. 08:23

못 배운 사람들이 ‘국힘’ 지지? 유권자 폄하하는 이재명의 오만과 편견 [노정태의 시사哲]

히틀러 마지막 그린 ‘다운폴’
계급배반투표의 진실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이재명 후보가 7월 31일 오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시민 토크쇼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뉴스1

1945년 4월, 총통과 수뇌부를 위한 은신처인 히틀러 벙커의 분위기는 암울했다. 패색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부전선의 소련은 거침없이 전진하여 이제 수도 베를린에도 포격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히틀러와 나치 고위직들은 평화협상을 맺거나 도피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제국선전부 장관 괴벨스는 베를린 시민들 중에서 국민돌격대를 모집하고 적을 향해 내모는 중이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무장친위대 장군 빌헬름 몽케가 히틀러 벙커로 찾아왔다. “당신의 국민돌격대가 몰살당하고 있습니다. 전투 경험도 무기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괴벨스는 덤덤하다 못해 당당하다. “부족한 건 승리에 대한 믿음으로 대신하면 됩니다.” 어이없는 대답을 들은 몽케가 ‘그건 개죽음’이라 반발하자, 괴벨스는 특유의 달변으로 대꾸한다. “전 그들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동정할 이유가 없죠! 그들이 직접 선택한 운명이니까요. 받아들이기 싫어도 그게 사실이죠. 누군가 강요한 게 아닌 그들의 선택이었으며 대가를 치르는 겁니다.” 히틀러의 마지막 14일을 다룬 영화 <다운폴>의 한 장면이다.

괴벨스의 논리를 좀 더 살펴보자. 나치는 집권 과정에서 자신들의 성격과 목적을 감춘 적이 없다. 국제연합을 탈퇴하고 전쟁을 벌이겠다고 공언하는 집단이었다. 그런 나치를 독일 국민 스스로가 제1당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나치는 이 전쟁의 전개 과정과 결과 등에 대해 책임이 없다. 잘못은 모두 독일인들 스스로에게 있을 뿐이다. 국민돌격대가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소련군과 맞서며 헛되이 죽건 말건 괴벨스의 탓이 아니라는 소리다.

후안무치한 궤변이다. 하지만 그 바닥에 깔린 사고방식은 그리 낯설지 않다. 유권자들은 때로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후보나 정당에게 투표를 한다. 그 투표의 결과에 따라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탓하지 말아야 한다. 흔히 말하는 ‘계급배반투표’(Class Betrayal Voting)의 논리다. 괴벨스는 그 논리의 도덕적 파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992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충남 청양 지역에서 유세를 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인 민주당 후보로서, 농촌 유권자들의 친여 투표를 비판한 바 있다. “30여 년간의 군정(軍政) 기간 중 가장 많은 차별과 천대를 받은 계층이 바로 여러분 농민들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뭐가 좋다고 선거 때만 되면 여당을 찍고 선거가 끝나면 후회를 하곤 합니까.”

이후 계급배반투표는 한국 민주주의를 둘러싼 담론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화두 중 하나가 되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의 정당을 찍을까? 왜 국민들은 본인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정치인과 정당에게 표를 줄까? 이러한 질문은 특히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당 계열보다는 더불어민주당의 뿌리가 되는 전통적 야권 세력, 그리고 진보 운동권과 진보 정당에게 더 큰 고민거리였다고 할 수 있다.

현장의 정치가와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서 계급배반투표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뜨겁다. 하지만 학술의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계급배반투표’로 검색하면 나오는 논문은 고작 10여 건. 영어로 검색해도 진지한 논문의 숫자가 크게 늘지는 않는다. 왜일까?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해야 마땅하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는 논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직 이익과 손해만을 따지는 계산적 존재가 아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가 <바른 마음>에서 잘 지적한 바와 같이, 세상은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이들이 각자의 판단 기준을 지닌 채 살아가는 곳이다. 심지어 한 사람이 지닌 관점이나 시각 역시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저소득층은 진보 정당을, 고소득층은 보수 정당을 찍는 것이 ‘옳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지식인 특유의 오만과 편견의 산물이다. 투표에서 이기고 싶다면 ‘당신들은 왜 손해 보는 투표를 하느냐’며 남을 다그칠 게 아니라, 유권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심을 다해 설득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무시하는 집단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이다. 보궐선거로 금배지를 달고 당대표 선거를 준비 중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7월 29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 중 “저학력·저소득층에서 국민의힘 지지가 많다”며, 그건 “언론 환경 때문”이라는 발언을 했던 것이다. 내외에서 반발이 쏟아졌지만 이재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음식평론가 황교익,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등의 지원 사격을 받으며 본인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주요 지지층이 60대 이상인데 60대 이상은 대체로 가난하며 학력 수준이 낮으니, 저학력 저소득층이 보수 정당 지지한다는 말이 뭐가 잘못이냐는 것이다.

이는 사실과 맞지 않는 주장이다. 국민의힘은 대체로 주택 자가 보유 비중이 높고 집값이 비싼 곳, 특히 서울의 경우 한강변에서 높은 득표율을 보인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집값과 공시지가가 높지 않은 지역을 텃밭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기간 동안 서울의 재개발과 재건축 등은 꽉 막혀 있었다. 그 바탕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들의 지지를 받지만 서민에게 손해를 끼치는 정당은 다름 아닌 더불어민주당이다. 지난 정권 기간 동안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고, 근로시간은 52시간으로 제한되었으며, 최저임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올랐다. 87년 이후 지속되어온 10년 정권 교체 주기를 5년으로 앞당길 수 있었던 건,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어이없이 솟구친 부동산 가격을 보며 분노했던 탓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이재명과 추미애 등의 발언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다운폴>로 돌아가 보자. 히틀러는 자살했다. 괴벨스는 총통직을 이어받은 후 연설문을 작성한다. “언젠가 거짓말들은 들통 날 것이고 진실이 승리할 것이며 그때가 되면 우리가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다.

 

순수하며 순결한 우리가.” 이 뻔뻔한 태도는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을 거리낌 없이 폄하하는 어떤 정치인들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유권자를 무시하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밝은 미래는 오지 않는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