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

[수요동물원] 표범이 홱 찢어발기자 X덩이가 구슬처럼 쏟아졌다

레이찰스 2022. 7. 27. 06:02

[수요동물원] 표범이 홱 찢어발기자 X덩이가 구슬처럼 쏟아졌다

정지섭 기자

특정 고기에 '맛' 들이면 계속 찾는 식습관
고양잇과 맹수중 가장 널리 분포
경상남도에서 1970년대까지 서식 확인

 

씹는순간 곱이 눅진하게 흘러나오는 곱창, 야들야들한 식감의 천엽, 생으로 먹어도 좋고 익혀 먹어도 좋은 간. 벌써부터 군침 돌아가시는 분들 있으실 겁니다. 쫀득한 식감과 풍미로 언제나 사랑받는 내장요리입니다. 그런데 내장에 대한 탐닉은 인간 고유의 식습관은 아닙니다. 부드러운 식감과 풍부한 영양분 때문에 야생의 사냥꾼들 대부분, 먹잇감을 쓰러뜨린다음 내장부터 먹어치웁니다. 이런 내장에 광적인 집착으로 인해 채 숨통이 끊기기도 전에 산채로 먹는 엽기적 상황까지 벌어지죠. 고양잇과 맹수이자 최상위권 포식자인 표범도 유난스러운 내장 매니아인가봅니다. 우선 다소 섬뜩한 표범의 ‘먹방’ 동영상 한 편 보실까요? 야생동물 전문 사이트 ‘네이처마타타’에 최근 올라왔는데요. 단, 비위가 약하시거나 예민하신분은 건너뛰시길 권합니다.

표범이 영양을 잡아먹으면서 결장을 이빨로 물어 뽑아내고 있다. 표범이 먹는 순간 결장안에 있던 영양의 배설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Nature Matata 인스타그램

영양 사체에 얼굴을 파묻은 표범이 찌이이익하고 길다란 무언가를 입으로 끄집어냅니다. 결장(colon)입니다. 단 하나의 찌끄러기도 나오지 않도록 남김없이 먹어치우겠다는 듯 마치 거친 국수가락을 넘기듯 입속으로 빨아들입니다. 그 바람에 결장안에 들어있던 두툼한 내용물이 툴툴툴 빠져나옵니다. 정로환같기도 하고 흑당버블티의 알갱이 같은 그것은, 이 살육으로 인해 미처 몸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안에 남아있던 영양의 배설물입니다. 결장을 후루룩 입속으로 빨아들인 표범의 눈매가 섬뜩하도록 날카롭습니다. 고양잇과 맹수 중 습성과 사냥실력, 먹성 뭐하나 평범함을 거부하는 표범의 일원답습니다.

한반도부터 아프리카 남단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있는 고양잇과 맹수 표범. /샌디에이고 동물원 홈페이지

몸길이 최장 190㎝까지 자라는 표범은 덩치만으로는 호랑이·사자에 이어 불변의 ‘넘버쓰리’입니다. 하지만, 서식하는 지역만으로 따지면 표범만큼 널리 퍼진 게 없습니다. 저멀리 아프리카 사바나부터 인도와 동남아를 거쳐 동북아와 한반도까지 살고 있어요. 고양잇과 맹수를 통틀어서 이렇게 넓게 퍼져나간 경우가 없습니다. 호랑이는 아프리카까지 뻗어나간 경우가 없고, 사자는 동아시아까지 오지 못했거든요. 사자가 아프리카사자·인도사자로 나뉘고, 호랑이가 서식지에 따라 시베리아·벵골·수마트라 등으로 구분되듯 표범도 크게 양갈래입니다.

표범은 드물게 온몸이 검은색으로 뒤덮인 '흑표'가 출현한다. 영물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별도의 종은 아니다. 2019년 케나에서 발견된 흑표. /샌디에이고 동물원

인도와 아프리카에 사는 종이 레오퍼드(leopard)이고, 중국과 한반도 등 추운곳에 사는 종을 팬서(panther)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할리우드 히어로물의 캐릭터인 블랙팬서의 그 팬서입니다. 호랑이나 곰을 보면 추운곳에 살수록 덩치가 큰데 표범도 마찬가지예요. 팬서는 ‘아무르표범’이라고도 하는데, 배에 덥수룩한 흰털이 나있고, 몸집도 털가죽의 무늬도 더 위풍당당합니다. 뙤약볕이 작렬하는 사바나부터 거친 고원, 빽빽한 밀림부터 한대의 침엽수림까지 그 어느 장소에 자신을 훌륭하게 적응시켰습니다. 표범의 사냥과 식습관은 치명적이고 섬뜩할 정도로 매혹적입니다. 인해전술의 사자, 고독한 단독사냥의 호랑이와는 확연히 구분돼요. 지구력은 부족하지만, 순간적으로 튀어나와 덮치는 매복술이 일품입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나무위에 숨어있다 폭격기처럼 내리꽂아 임팔라는 사냥하는 유튜브 동영상(latest sightings)입니다.

몸에 가속을 붙여 순식간에 덮친 뒤 바로 목덜미를 물고 숨통끊기에 나섭니다. 표범입장에서는 골든타임입니다. 최대한 빨리 절명시켜서 혼이 빠져나간 고깃덩이로 만들어야 아무도 넘보지 않는 식당으로 옮길 수 있거든요. 바로 나무 위입니다. 표범은 다른 고양잇과 맹수에 비해 몸집단위당 근력이 훨씬 강해요. 특히 턱의 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자신의 몸집에 육박하는 사냥감의 가체를 입으로 문뒤 신속하게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은 파워와 순발력과 운동신경을 트리플로 겸비한 사냥기계 그 자체입니다.

표범이 임팔라를 사냥한 뒤 물고 나뭇가지위로 올라가서 사체를 걸쳐놓았다. 전형적인 식사방식이다. /Caters News Agency

표범이 나뭇가지에서 뷰를 즐기며 식사를 즐기는 낭만파여서가 아닙니다. 어디선가 죽음의 냄새를 맡고 찾아든 하이에나를 떼어내기 위해서죠. 표범 못지 않게 강력한 치악력으로 무장하고 떼로 몰려드는 하이에나를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표범이 겨우 나뭇가지위에 고깃덩이를 걸쳐놓고 먹는 동안 낙과기다리듯 살덩이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하이에나들을 보는게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의 덩치에 육박하는 큼지막한 임팔라를 쓰러뜨린 표범이 사체를 물고 나뭇가지위로 능숙하게 올라가는 장면(유튜브 Gigi Braun) 한 번 보실까요?

표범의 식단은 여느 고양잇과 맹수와 달리 좀 괴이쩍은 편입니다. 임팔라나 가젤, 스프링복처럼 머릿수가 많고 사냥하기 어렵지 않은 영양이 주 먹거리이지만, 풀을 뜯지 않고 피와 살에 탐닉하는 육식동물까지 사냥하는 장면이 종종 발견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인간이 속한 영장류이면서도 사바나의 무서운 사냥꾼으로 군림하는 개코원숭이를 제법 즐겨 사냥합니다. 심지어는 사자에 이어 사바나의 대장 2위를 놓고 다투는 지간인 하이에나까지 잡아먹을 때도 있습니다. 육식동물들끼리 세력을 다투는 과정에서 물어죽이는 경우는 종종 발생하지만, 잡아먹는 경우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음 동영상에서 보듯 표범이 하이에나를 물어죽인 뒤 으슥한 수풀로 끌고가서 살점을 뜯고 내장을 바로 끄집어내 먹는 모습이 생생하게 포착됐습니다.(유튜브 Africa Adventures)

표범이 드물게 하이에나를 잡아먹는 장면이 포착됐다. 살갖을 찢은뒤 부드러운 내장을 끄집어내 먹고 있다. /Africa Adventures 유튜브

뿐만 아닙니다. 심지어 자신과 같은 동족의 새끼까지 잡아먹는 장면도 포착됐습니다. 네이처마타타의 아래 동영상을 한 번 보시죠.

수컷 표범이 암컷이 사냥나간 틈을 타 어린 새끼를 잡아먹고 있는 모습. 상반신이 찢겨나간 몸뚱아리에 표범 특유의 무늬가 선연한다. /Nature Matata 인스타그램

암컷이 표범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수컷이 암컷이 새끼들을 위해 사냥을 나간 사이 무참한 살육을 저질렀습니다. 경쟁 수컷의 씨를 제거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수컷들의 잔혹한 본능발현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익히 알려진 서사입니다. 그런데 이 수컷표범은 한술 더 떠서 자신이 물어죽인 동족의 새끼를 가차없이 먹어치우기 시작해 반만 남은 몸뚱아리를 물고 있습니다. 표범은 개별 개체의 먹성에도 개성이 뚜렷합니다. 그래서 한 번 자기 입맛에 맞는 걸 찾으면, 이후에도 탐닉하는 습성이 있어요. 똥이 가득한 결장, 늙은 개코원숭이, 하이에나, 동족의 새끼 표범의 식단이 이처럼 두서없는 것은 어쩌면 개별 개체에 각인된 입맛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덩치만한 임팔라를 사냥한 뒤 직접 물고 나무 위로 올라온 표범이 식사전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Kruger Sightings

그 각인된 입맛의 상대가 사람일수도 있다는 섬뜩한 가정도 아주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인구가 밀집한 인도 등에서 식인표범 출몰 소식이 간간이 들려옵니다. 표범은 호랑이와 함께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돼있습니다. 그러나 근 반세기 넘게 자취를 감췄기 때문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그럼에도 공식적으로는 ‘국내 서식종’입니다. 1970년대 경남 함안에서 발견된게 마지막이예요. 이 때문에 적어도 극소수라도 남한땅에도 여전히 생존했을 것으로 보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표범의 존재가 극적으로 확인된다고 하더라도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일일 것 같습니다. 지리산에 복원돼 번성 중인 반달가슴곰과 달리 표범은 오로지 피와 살만을 탐하는 육식맹수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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