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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권, 초딩 같은 보복” 文비판 대자보 붙인 20대가 2년간 겪은 일

레이찰스 2022. 7. 11. 08:02

“文정권, 초딩 같은 보복” 文비판 대자보 붙인 20대가 2년간 겪은 일

경찰, 건물주는 괜찮다는데 기소 의견 송치
檢 즉시 기소하고 1심 유죄 ... 21일만에 범죄자
수사·재판 때문에 눈치 보느라 첫 직장 관둔 청년
2년 간 2심 안 열리다 정권 바뀌자 무죄
“문 정권, 너 한번 당해보라는 초딩 같았다”

 

2019 1125일 충남에 위치한 단국대 천안캠퍼스 자연과학대 건물 내부 4곳에 붙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판 대자보 /신전대협 제공
회사원 A(27)씨는 지난달 22일 법원 판결에 따라 마침내 ‘피고인’에서 ‘무고한 시민’으로 돌아왔다. 868일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건조물 침입’. 자신이 살던 곳 인근의 대학 캠퍼스에 들어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 8장을 붙인 죄였다. A씨는 “그 전까진 ‘표현의 자유’라는 게 가만 둬도 잘 지켜지는 가치인 줄 알았다. 재갈 물고 생업을 방해 받아 보니 꼭 지켜야 하는 가치였다”라고 했다.

건물주 “괜찮다”는데... 경찰 “건물침입죄, 조사 받으러 와”


A씨는 2019 1125일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들어가 자연과학대 건물 내부 4곳에 2장으로 된 대자보를 붙였다. 대자보는 <시진핑 주석의 서신: “홍콩 다음은 한국이다”>라는 제목의 글과 이미지였다.

대자보에는 시진핑 중국 주석 사진, 그 앞에 엎드린 문재인 전 대통령 사진과 함께 ‘이제 나의 충견 문재앙은 한미일 동맹을 파기하고, 미군을 철수 시켜 완벽한 중국의 식민지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칠 것’이란 취지의 글이 적혔다. 당시 민주화 운동이 일고 있던 홍콩 다음으로 한국이 중국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라는 풍자였다. 홍콩에서 중국 공산당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때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경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천안 동남경찰서 소속 임청빈 형사였다. 다짜고짜 반말로 ‘조사 받으러 오라’고 했다고 A씨는 회상했다. 무죄 추정의 원칙 따윈 없었다. A씨는 ‘왜 내가 조사를 받아야 하냐’고 묻자 그는 “건조물 침입죄를 저질렀으니 조사 받으러 와”라고 했다. A씨는 “상식적으로 건조물 침입죄는 건물 소유자나 이용자의 문제 제기가 있어야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란 취지로 항변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실제 A씨 사건엔 고소인이나 고발인이 없었다. 동남경찰서 보안계가 현장에 출동했다가 올린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현일 과장이 이끄는 형사과가 사건을 수사로 전환했고, A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건물 소유자인 대학 측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은 무시됐다.

A씨에게 혐의는 ‘건조물침입죄’. 2015년 헌법재판소가 국가원수모독죄에 위헌 판결을 내린 이후, 정권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부착하거나 고층 건물에서 뿌린 시민을 상대로 경찰이 즐겨 적용하고 있는 혐의다. 건조물침입죄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처럼 당사자의 고소·고발이 필요없고, 이번처럼 경찰 의지만으로 ‘인지 수사’로 처벌할 수 있다.

동남경찰서의 송치 서류를 받아든 대전지검 천안지청 김우중 검사는 A씨를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곧바로 ‘벌금 100만원’을 약식으로 구형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송영복 판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2019 1227일 A씨는 순식간에 벌금 100만원형을 받은 전과자가 됐다. 대자보를 붙인 지 스물하루째 되던 날이었다.

천안 동남경찰서 관계자는 ‘정권 차원의 지시에 따라 사건을 처리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죄목을 적용했다”고만 했다.

1심 유죄 판결하곤 항소심 시작에만 2년 끈 법원


수사가 진행되던 당시 A씨는 취업난을 뚫고 갓 취업한 신입사원이었다. A씨는 “첫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경찰서와 법원을 들락날락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난 전과도 없었기에 스트레스가 심했다”며 “건조물 침입이 포함돼 있는 형법상 주거침입죄를 검색해 보니 거의 흉악 범죄였다. 자칫 잘못해서 전과가 생기면 향후 취업에도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사회적으로 위축되고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신전대협은 2020년 4월 대구 달서갑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권택흥 후보 지원유세차 대구를 방문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피켓 환영 시위를 벌였다. 피켓에는 "림종석 동무 대구 방문을 렬렬히 환영합네다"라는 문장이 적혔다. 임 전 실장은 이에 "예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신전대협 전신인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이다. /조선일보 DB
A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2020년 2월5일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같은 해 6월23일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 3단독 홍성욱 판사는 “A씨가 잘못을 인정하면서 반성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판사는 단국대 천안캠퍼스의 경비원이 증인으로 나와 “만약 저런 대자보를 붙이려고 들어온 것이라면 말렸을 것”이라고 했던 증언을 토대로 유죄를 인정해 버렸다. 검찰은 보통 자신들이 기소한 처벌 수위 보다 재판부가 낮은 처벌 수위 판결을 내리면 항소를 하지만, 항소는 없었다.

2심은 2년 간 잡히지 않다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그제야 시작됐다. 5월25일이 2심 첫 공판 기일이었다. A씨는 “재판 과정은 지옥이었다. 신입사원이니까 일을 배우는 단계였는데 재판 준비하느라 회사 눈치를 엄청 봤다. 너무 힘들어서 재판 다 끝낸 다음 재취업을 하려고 일단 첫 직장을 그만 뒀는데 1심 판결이 있고 2심 시작까지 2년이 걸렸다. 먹고 살아야 하니 다시 취업을 하게 됐다”며 “뭐 때문인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법원은 시간을 질질 끌었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올 6월이 돼서 A씨는 무죄를 받을 수 있었다.

A씨는 정권 차원에서 자신에게 고통을 주려고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2년 간 잡히지 않던 2심 일정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바로 잡혔다. 무죄가 나오더라. 그 말인 즉 내 사건을 정권 차원에서 묻어두고 그 시간 동안 고통 받도록 내버려둔 것이라고 본다”며 “문 정권은 아무 일도 아닌 걸 가지고 ‘초딩’처럼 행동했다. 마치 ‘너 나 욕했지? 너도 당해봐’라는 식이었다. 이런 짓은 초등학생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부당한 공권력 집행을 더욱 혐오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독재 항거했다는 오리지널 586 전대협, 청년을 외면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충남경찰청 산하에서 의경 생활을 했던 A씨는 같은 부대 부사수가 신전대협 활동을 한다는 걸 알게 되자 전역 직후 취업을 한 뒤인 2019년 말부터 신전대협 활동에 나섰다. 의경 시절 조국 전 법무장관이 범죄 의혹에도 장관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 미약하게나마 사회적인 활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A씨였다.

자신의 신전대협 첫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마자 피의자가 됐던 그는 “100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문 정권은 반대였던 것 같다”며 “이번 정권에선 표현의 자유가 지켜졌으면 한다. 앞으로 활동하는 청년 분들도 이런 사례가 있었지만 상식과 원리로 결과가 났으니 쫄지 말고 당당하게 표현하고 싶은 거 표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던 1987년 겨울 영호남 지역감정 해소 집회에 나가 연설하고 있는 이인영 의원 /조선일보 DB
A씨가 속한 신전대협은 과거 독재 정권 시절 독재에 항거하겠다는 취지로 모였던 전대협의 후신을 자처한다. 전대협 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문 정권에서 최고 권력자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A씨가 공권력에 고통 받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기자는 A씨가 기소되자 마자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이인영 전대협 1기 의장에게 연락을 했다. ‘전대협의 후신인 신전대협이라는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데,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가 됐다. 이에 대해 이 전 의장 님의 생각을 좀 듣고 싶다’고 묻고 싶었지만, 닿지 않았다. 그의 보좌진에게 대신 물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특별히 답할 사항은 아닌 것 같다”고만 했다.

1988년 7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뒤 대공분실을 찾은 국회의원들. 경찰청 전신 치안본부는 국가보안법 등 안보 사건 피의자 신문에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을 자주 활용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경찰은 5공 시절처럼 피의자의 배후를 캐물었다고 한다. 단국대 사건을 맡았던 천안 동남경찰서 수사관은 A씨에게 대자보 부착을 지시한 사람과 함께 붙인 사람, 그리고 대자보를 제작한 배후를 꼬치꼬치 물었다. A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경찰은 반말을 하며 A씨를 흉악범처럼 몰아세웠다. 세월이 흘러도 전대협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는 그대로였다. 고문만 없어졌을 뿐이었다.

최훈민 기자 jipcha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