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켜지 않았다”...‘박정희대통령기념관’ 가보니 [송의달의 모닝라이브]
지난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박정희(朴正熙·1917~1979)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과 더불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생전에 농촌과 산간 벽지, 섬 등을 찾아 서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소재 '박정희대통령기념관'에 전시된 사진들이다./송의달 기자
박 대통령의 뜻을 기리는 한편, 관람 못한 독자들에게 현장을 소개·공유하려는 마음에서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이 있는 서울 상암동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박정희대통령기념관 모습/송의달 기자
◇안내판·이정표 없는 박정희대통령기념관
기념관 찾기는 만만찮았습니다. 도로, 지하철, 버스정류장 어느 곳에서도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이 있음을 알려주는 안내 표시나 이정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2022년 4월부터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제5대)을 맡고 있는 유영구 전 KBO 총재는 월간조선(2022년 7월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기자 질문 : “마포구 상암동이 외진 곳이어서인지,여기에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죠.”
- 유 이사장 대답 : “표지판 사인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전 정권에서 여러 제약을 가했습니다. 유명한 조각가가 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기증하겠다고 했는데 (전 정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동상도 못 세웠습니다. 조각가가 보관 중인데 조만간 박정희대통령 동상 세우기도 해야 합니다.”
◇2012년부터 서울 상암동...매주 화~일요일 무료관람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을 지하철로 가려면,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에서 내려 마포08버스를 타고 ‘난지천공원’에서 하차하면 가깝습니.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 네비게이션에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을 입력하면 됩니다.
기념관 주변을 운행하는 버스는 172, 7011, 7016, 7019번 버스입니다. 월드컵파크3단지, 난지천공원(정류장 번호 14-107)에서 내려서 도보로 400~500미터쯤 걸어가면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이 나옵니다. 그러나 정류장에서 내린 뒤, 도로 등에 이정표나 안내 표시판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기념관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 정각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열고 있습니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 내부 안내 표시/송의달 기자
매주 월요일은 휴관하며, 매일 입장은 오후 5시30분에 마감합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단체 관람을 할 경우 기념관측에서 안내 관광(guide tour)을 제공합니다. 제가 현장을 방문한 지난주에도 오전 11시쯤 70~80대 단체관람객들이 기념관을 찾았더군요. (입장 및 관람 관련 문의 전화번호는 02 716 9345입니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정문에 들어서자 마자 만나게 되는 1층 로비/송의달 기자
기념관 정문을 들어가면 오른쪽 편에 짐 보관함이 있는데, 그곳에 짐을 맡겨놓고 관람할 수 있어요. 맨 먼저 만나는 로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저서인 ‘국가와 혁명과 나’를 주제로 한 상징조형물과 생전 모습들을 보여주는 대형스크린이 있습니다.
◇1~2층 전시실 3곳...박정희도서관, 기념홀도
1전시실에는 박 대통령의 경북 구미시 상모리 생가와 대구사범학교 재학시절,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 시절, 군인 시절을 거쳐 5.16 혁명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등의 행적을 담은 각종 사진과 유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기념관 1전시실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북 구미 상모리 생가 모형/송의달 기자
예를 들어 초등학교와 사범학교 시절의 생활성적표, 대구사범학교 시절 쓰던 책상과 제5대 대통령 취임 선서문 등도 볼 수 있어요. 참 기념관전시실 내부에 있는 소개 글자는 모두 한글,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4개 국어로 표기돼 있어 외국인들도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1전시실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대구사범학교 성적표/송의달 기자
1전시실에 전시돼 있는 박정희대통령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모습/송의달 기자
1층을 따라 쭉 따라 가면 2전시실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파독근로자, 수출진흥확대회의, 중동진출, 수출 100억달러 달성, 중화학공업, 경부고속도로 건설, 새마을 운동, 산림녹화, 치산치수, 과학기술, 북한의 도발과 자주국방, 월남 파병, 한미동맹 등을 포함한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재임 기간을 업적 별로 나눠서 각종 패널, 모형, 영상, 진열장, 디오라마, 사진과 안내문 등으로 구성해 놓고 있습니다.
2전시실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구간 관련 박정희 대통령의 메모/송의달 기자
기념관 2전시실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이 쓴 '새마을정신' 휘호와 현장 모습/송의달 기자
아카이브 휴게 공간에는 박정희 대통령 생전의 재임기간 중 그가 매년 한 신년사를 헤드셋을 끼고 육성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해놨어요. 영상관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서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이나 당시 모습을 담은 영화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2전시실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매년 신년에 한 신년사를 헤드셋을 끼고 들을 수 있다./송의달 기자
3전시실로 가려면 2전시실 끝부분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에스컬레이터 양 벽면에도 당시 사진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박 대통령 내외 모신 ‘디지털 추모관’
제3전시실은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이해를 돕고, 박 대통령의 고뇌를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비판과 시련 공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3전시실에 전시된 육영수 여사가 생전에 입던 옷과 여권, 교육 수료증, 붓글씨 작품을 비롯한 유품들/송의달 기자
또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1925~1979) 여사를 추모하는 디지털 추모실과 다양한 사진 패널, 유품, 1979년 10월 당시 집무실과 읽던 도서들, 각종 훈장과 기념품, 가족 사진, 육영수 여사의 여권, 기념열쇠 같은 것들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념관 3전시실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가족 사진들/송의달 기자
3전시실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내외 '디지털추모관'. 박정희 대통령은 62세에, 육영수 여사는 49세에 각각 영면했다./송의달 기자
2층의 제3전시실을 따라가면 박정희도서관과 어깨동무도서관, 박정희 홀 등이 있습니다. 도서관과 기념관 중간에는 관람객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카페6737′이 있습니다. 대통령 기념관내 영리 활동 금지법 규정 때문에 주중에는 커피 등 음료를 구입할 수 없습니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층에 있는 박정희도서관 내부/송의달 기자
‘박정희도서관’은 6500권의 장서와 2만3000여건의 대통령 결재문서를 갖추고 있으며 외부로 도서 대출도 해주는데, 실내는 쾌적한 시설입니다. 도서관에는 세미나실, 미팅룸 등도 있습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올해 4월 ‘박정희학술원’을 발족해 초대 원장에 좌승희 박사를 선임했습니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전시실에 전시돼 있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출전 선수를 격려하고 대화하는 박정희 대통령 모습/송의달 기자
좌승희 원장은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박정희도서관 소장 자료들을 중심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사상 및 국정운영 철학을 학술적 차원에서 다각도로 연구하고 결과물을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용 책들을 구비해 놓고 있는 ‘어깨동무도서관’은 자작나무 숲 속 같은 아늑한 공간에서 독서를 통해 꿈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어린이 전용도서관입니다. 주말에 인근 시민들이 어린 자녀들과 많이 오는 명소가 됐다고 합니다.
기념관 2층에 박정희도서관 옆에 나란히 설치된 어깨동무 도서관. 초등학생 전용 도서관이다./송의달 기자
전체적으로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은 방문 전에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품위있고, 깨끗하고, 격조있게 잘 구성해 놓고 있었습니다. 기념관은 2012년에 완공됐고 2016년부터 약 3년에 걸쳐 기념관전시실과 도서관 등을 전면 보수했다고 합니다.
◇40개월 16만9천명 방문...‘다시 박정희!’ 열풍
재개관한 2019년 3월1일부터 올해 6월말까지 40개월동안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을 찾은 관람객은 총 16만 9000명이라고 합니다. 이는 매월 4225명으로 하루평균(휴관일 제외) 163명쯤 됩니다.
무더위와 장마 속에서도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을 찾아온 단체 관람객들/송의달 기자
박정희 대통령의 큰 공헌을 감안할 때, 충분치 않은 숫자입니다. 이는 외딴 곳에 기념관이 있는데다, 전(前)정권이 유무형으로 박 대통령 선양(宣揚) 사업에 어깃장을 놓은 탓도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박정희!’ 열풍이 불 날을 기대해 봅니다.
또 하나 든 느낌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품 중 값 나가거나 화려한 것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청렴한 생활은 1979년 10월 27일 새벽 국군통합병원에서 박 대통령의 시신을 확인한 군의관 증언에서도 확인돼요.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사범학교 재학 시절 입었던 교복과 교모, 금강산 수학여행 사진 등으로 1전시실에 있다./송의달 기자
군의관은 “(시신이) 박 대통령인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짜깁기투성이인 바지와 낡고 해진 허리띠,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핀, 평범한 세이코 시계 등 대통령 옷차림이라고 믿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1997년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출간한 회고록/인터넷 캡처
“박 대통령이 살던 본관 2층과 집무하던 1층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전기를 아끼려는 뜻이었다. 선풍기는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그것조차 돌리지 않았다. 한여름에 열기가 닥치면 박 대통령은 창문을 열었고 열린 문으로 파리가 날아들어 오곤 했는데 박 대통령은 파리를 잡기 위해 파리채를 휘두르곤 하였다.
박 대통령은 아침’저녁으로 밥을 먹을 때 꼭 30%는 보리를 섞었다. 부족한 쌀을 아끼려고 혼식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점심은 멸치나 고기 국물에 만 기계 국수였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나, 의전수석, 비서실장 보좌관 등 본관 식구들은 똑같이 국수를 먹었다. 장관들도 청와대에서 회의를 하는 날이면 점심은 국수였다.”
울산 현대중공업을 시찰하러 온 박정희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겸 회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조선일보DB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겸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장기집권할수록 부패하기 쉬운데 우리는 그 정반대의 경우를 그분에게서 보았습니다. 아울러 통치자가 청렴결백할수록 나라는 더욱 부강해진다는 것도 배웠습니다”고 했습니다.
◇외국인들도 인정...청렴한 ‘近代化의 國父'
2020년 12월 별세한 에즈라 보겔(89) 하버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2011년 ‘박정희 시대(원제 The Park Chung Hee Era)’를 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 국가발전의 기초를 놓은 점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중국 덩샤오핑과 같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는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있었고, 경제를 배워가는 비상한 능력도 지녔다. 김대중 대통령이 1961년에 집권했다면 박정희와 같은 경제발전을 이뤄냈을지 의심스럽다”고 했다./조선일보DB
박정희대통령기념관 3전시실에 전시돼 있는 세계적 정치인과 석학들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들/송의달 기자
외국 학자들도 그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교수는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다. 그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국가에 일신(一身)을 바친 리더였다”고 했어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그는 다른 후진국 지도자들과 달리 부패하지 않았다”고 평가했죠.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과 게으름에 찌든 후진적 심성을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부지런하고, 능동적인 국민성으로 개조한 근대화(近代化)의 국부(國父)입니다.
농촌 현장에서 농민들과 함께 직접 모내기 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사진 오른쪽에서 세번째)
그의 리더십과 애국심, 현실감각, 역사의식이 21세기에 창조적으로 계승됐으면 합니다. 그럴려면 더 많은 이들이 박정희대통령기념관과 도서관을 찾고 기부도 실천해야겠습니다. 개인적인 호불호(好不好)와 선입견을 넘어 ‘박정희 대통령 없는 대한민국’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대학생포럼이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2017년)을 기념해 2017년 11월20일부터 판매를 시작한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조선일보DB
'박정희TV 유튜브'.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제작운영하고 있다./박정희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