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칩 심고 고향 떠나는 경주 동경이…중성화는 왜 할까
"하나둘~ 하나둘. 힘차게 옳지 옳지 잘한다. 추워도 운동하자. 그래야 항상 건강하데이~."
지난 17일 오전 경북 경주시 용명리 마을 공원. 이미옥씨가 구령을 붙이며 새해 13살이 된 황구(黃狗) 진목이와 산책에 나섰다. 조금 뒤 12살 호랑이 무늬 호구(虎狗) 오릉이와 올해 6살이 된 백구(白狗) 서하도 아침운동에 동참했다.
나란히 거리로 나선 황구·백구·호구는 평범한 시골 반려견이 아니다. 혈통부터 남다른 '꼬리 없는 개'. '댕견'으로도 불리는 천연기념물 540호 경주개동경이(이하 동경이)다. 동경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견이다. 꼬리가 짧은 게 특징인데 개체에 따라서는 꼬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 경북 경주에만 520여 마리가 있다.
경주개동경이. [사진 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
귀한 혈통의 동경이들 가운데 소수의 '보호견'이 이번 설 연휴를 전후해 처음으로 고향 경주를 벗어난다. 동경이에 대한 친화성을 높이고 이미지 제고를 위해 처음 진행된 동경이 보호견의 외지 반출, 첫 일반 무료 분양이다. 보호견은 2006년생부터 2016년생까지 '성견(成犬)'으로 분류된 어른 동경이를 의미한다.
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 측은 28일 "2018년부터 해마다 3마리, 1마리, 4마리 등 보호견이 아닌 어린 동경이가 경주 이외 지역에 일반 분양된 사례는 있지만 그 수는 아주 적다"며 "이번 분양은 입양이 사전에 약속된 소수의 가족 만을 대상으로 최대 5마리 안팎의 보호견만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달 중순까지 보존협회 측은 30여마리 보호견의 새 가족을 찾아줄 계획이었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26일 무료분양 중단을 결정했다. 그래서 소수의 보호견만 새 가족을 만나게 됐다는 게 보존협회 측 설명이다.
새 가족을 찾아 떠나는 동경이 보호견도 천연기념물답게 '혈통' 지키기는 엄격하게 지켜진다. 보존협회 한 간부는 "고향 땅을 떠나는 동경이 보호견은 중성화 후 새 가족에게 가게 된다"며 "분양 후 다른 종과의 교배 등 동경이 혈통 지키기에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한 예방 조치이자 동경이들의 건강을 지켜주기 위한 배려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아침 운동을 한 후 휴식 중인 경주개동경이. 김윤호 기자
모든 동경이는 '가문'을 상징하듯, 왼쪽 어깨에 0.5㎝ 크기의 마이크로칩이 심겨 있다.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족했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동경이 왼쪽 귀에 숫자가 쓰인 색인표를 문신처럼 새기기도 했다고 한다.
철저한 혈통 지키기는 천연기념물이라는 특수성에 더해 '천연기념물 경주개동경이'라는 이름을 쓰는 악용 사례가 있어서다. 실제 보존협회 측은 포털 사이트 등에 천연기념물 경주개동경이, 천연기념물 동경이, 천연기념물 꼬리 없는 개 등과 같은 판매 글을 확인하고 ‘천연기념물 경주개동경이라는 말을 쓰는 행위가 위법하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보내기도 했다.
경주개동경이. [사진 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
남다른 혈통의 동경이를 품게 된 새 가족은 깨끗한 환경을 갖춰 사진 등으로 이를 협회에 증빙해야 한다. 가족이 되기 전 면담 등 심사 절차를 거치며, 분양을 받은 뒤에는 주기적으로 협회에 동경이의 건강 상태 등을 알려야 한다.
동경이는 고려시대 때 경주의 옛 지명인 동경(東京)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백구·황구·흑구·호구가 있다. 특히 호구는 호랑이 무늬여서, 검은 호랑이해인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더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1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경이 이외에도 2종(種)의 천연기념물 토종견이 더 있다. 진돗개와 삽살개다. 이들 역시 동경이처럼 혈통 지키기에 힘을 쓴다.
진돗개는 일본강점기인 1938년에 조선 명승고적으로 지정·보호받다가 1962년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다시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대표 토종견이다. 진돗개는 태어나면 '가문'을 상징하듯 어깨에 출생이력 등의 정보를 담은 마이크로칩을 이식한다.
외지 반출 땐 진도군수 명의의 진돗개 증명서를 발급한다. 강아지 때 DNA로 진돗개 혈통을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성견이 되면 혈액을 샘플로 보관해 정통 진돗개임을 별도로 기록해둔다. 진도군 관계자는 "진돗개는 진도에만 4000여 마리가 있고, 매년 2000여 마리가 외지로 나간다"며 "진돗개라는 그 뿌리를 저장·보관하는 방식으로 혈통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도의 명견인 진돗개가 장애물을 뛰어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진돗개는 주인에게 충성심이 강하다. 1993년에 진도에서 할머니가 기르던 7살 된 ‘백구’라는 진돗개를 대전으로 분양했는데 반년이 지난 후 다시 진도 할머니에게 돌아온 이야기가 있다. 진도군은 이를 기려 ‘돌아온 백구상’ 동상을 세웠다.
1992년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된 삽살개는 경북 경산에 있는 한국삽살개재단에서 혈통을 관리한다. 삽살개는 현재 재단 측에 400여 마리, 전국에 일반 분양된 3000여 마리가 있다.
일반 분양이 이뤄지고 있지만 삽살개 또한 '가문 지키기'가 엄격하다. 삽살개재단 관계자는 "DNA 및 혈액을 보관하고 부견·모견까지 별도로 확인하면서 혈통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혈통서 발급에 더해 무분별한 번식을 막고 아이들(삽삽개들)의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 '번식 3회 제한'이라는 별도 규정까지 만들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삽살개 역시 남다른 혈통답게 무조건 기르고 싶다고 다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적절한 입양 환경을 갖췄는지를 보는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재단 측의 면접 개념인 면담을 거쳐야 분양받을 수 있다.
삽살개는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서 서식하던 토종개이다. ‘귀신과 액운을 쫓는 개’라는 뜻을 가진 삽살개는 신라시대 주로 귀족이 기르는 반려견으로 알려져 있다.
삽살개는 1940년 이후 일본이 방한복·방한모에 사용할 목적으로 개를 대량으로 도살하면서 개체가 급격히 줄어 멸종위기를 맞았다. 그러다 경북대 교수팀이 비교적 원형이 유지된 30여 마리를 찾아 이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복원사업을 시작, 우수한 형질의 삽살개를 증식·복원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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