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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 소리만 들어도 로케트가 어쩌부럴지 알것당께요”

레이찰스 2022. 7. 3. 06:24

“인자 소리만 들어도 로케트가 어쩌부럴지 알것당께요”

 ‘우주센터와 13년’ 고흥
유자 동네서 우주 도시로


고흥에는 ‘우주로 가는 길’이 있다.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에서부터 봉래면에 있는 나로우주센터까지 이어진 47㎞의 길. 고흥 초입에서 땅끝까지 이어진 도로 이름이다. ‘우주항공로’도 있다.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시작해서 고흥군 도양읍까지, 군민들 삶의 터전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고흥읍 내부로 들어가는 호형교차로에 있는 표지판. ‘우주항공로’는 도양읍으로 이어진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본디 고흥은 유자의 고장이었다. 고흥군청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고흥에서 생산된 유자 생산량만 5448t, 전국 전체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그래서일까, 주민들의 유자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다. 30년째 유자 농사를 하는 이명현(52)씨는 “유자가 차이가 나요. 우리가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해풍·온도·일조량 등 고흥이 전국 최고죠”라며 “요새 우주에 좀 밀리는 감은 있지만요”라고 했다.

지난 21일 누리호 발사에 성공하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우주 기지 1호가 된 고흥. 유자의 명가였던 고흥이 우주로 가는 길목으로 자리 잡기까지 20여 년의 시간. 그간 고흥 주민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나로우주센터와 해상 17km 직선거리에 있는 우주발사전망대.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고흥전통시장 인근에 있는 ‘우주 떡방앗간’ 간판.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우주 방앗간, 우주 꽃집, 우주 장례식장

유자 마을에 우주센터가 들어선 건 2000 12월. 나로우주센터 공사가 시작되면서다. 내나로도를 거쳐 고흥 최남단에 있는 외나로도 봉래면이 부지로 선정됐다. 유자를 기르는 데 천혜의 자연환경이었던 맑은 날씨가 인공위성을 발사할 때도 최적의 조건이었다. 꼬박 9년의 공사 끝에 나로우주센터가 들어섰고, 이듬해인 2010년에는 우주천문과학관도 열렸다. 지난 21일엔 순수 국산 기술로만 개발된 누리호 발사에도 성공, 미국·러시아·유럽·일본·중국·인도에 이어 실용 인공위성을 자력으로 우주에 보낼 수 있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됐다.

고흥 주민들 마음속에 우주가 자리 잡기 시작한 건 2013년 나로호 발사가 성공했을 때다. 유자 축제만 진행됐던 고흥에서 2012년부터 우주항공축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고흥에서 나고 자란 김모(27)씨는 “2013년 나로호 발사 성공 때는 고흥이 우주로 세계를 제패한 듯한 기대감이 전역에 가득했다”며 “TV 예능 ‘무한도전’에 고흥 외나로도가 나올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고 했다.

우주와 관련한 상호들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우주 꽃집, 우주 떡방앗간, 우주 공인중개사, 우주 장례식장, 우주 민속주점 등 우주 상호를 단 가게들이 나타났다. 우주 산장, 우주 해수욕장에 이어 급기야 ‘다도해 회관’이란 식당은 방 이름도 로켓방, 우주방, 위성방, 하늘방으로 명명했다. 주인 지미향(66)씨는 “어르신들은 방 이름을 보며 재미나다며 웃고, 어린 아이들은 ‘우주 로켓 발사!’라고 외치며 뛰어다닌다”고 했다.

우주과학관 앞‘미니 장터’에서 어르신들이 비파, 돌미역, 톳 등을 팔고 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우주센터 앞에는 매 주말 미니 장터

고흥을 찾는 여행객들도 늘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우주과학관 앞 야외 전시장. 나로호를 본뜬 로켓 모형 앞엔 어린 자녀들과 나들이를 온 관람객들이 북적였다. 과학관에 따르면 이날 하루 찾은 방문객만 1000여 명. 우주과학관 내 나로호 내부 관제 센터를 본뜬 시설에선 어린이들이 계기판을 분주하게 조작했다. 매시 정각엔 나로호 발사 순간을 재현했다. 오후 2시 정각 나로호 주변으로 모여든 관람객 40여 명은 일제히 “삼! 이! 일!”을 외쳤다.

순천, 여수, 벌교로 이어지던 남도 여행에 고흥은 요즘 필수 코스다. 전주에서 온 이주현(40)씨는 이번이 세 번째 고흥 여행이라고 했다. 누리호 발사를 보고 인공위성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7세 아들 정태균군은 “누리호는 처음에는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700㎞까지 다녀와서 성공했어요!”라며 기뻐했다. 부산에서 산악회원 44명과 함께 고흥을 찾은 이기호(63)씨는 “누리호 발사가 성공한 기념으로 산악회원들과 우주센터 근처 봉래산 편백 숲을 여행하러 왔다”고 했다.

주민들은 “질(길)이 젤 좋아졌제”라며 입을 모았다. 관광시설이 들어서며 외나로도 우주센터로 가던 비포장길이 매끈하게 포장됐고 ‘우주로 가는 길’이란 이름도 붙었다. 주말이면 미니 장터도 열린다. 이날도 우주센터 거대한 돔 모형 앞에는 어르신 5명이 챙 넓은 농업용 모자를 눌러 쓰고 비파, 돌미역, 톳, 고사리, 호랑이콩 등을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봉래면 애내리에 산다는 고순임(80)씨는 “(친정이 있는) 저짝 산만 보면 넘어가기 힘들어 울었는데, 인자 좋아부러. 우주센터 생겨부러서. 긍께로 관광버스로 와서 손주들 용돈이라도 벌고 있당께”라고 했다. 우주센터가 생기기 전만 해도 이들은 5㎞ 거리의 읍내로 걸어 나가 나물 등을 팔았다.

우주센터 인근 식당 상인들은 늘어난 여행객으로 웃음꽃이 피었다. 외나로도 쪽에서 수협 산지 중매업을 하는 김재현(38)씨는 “우주센터 직원들이 여기에서 밥만 먹어도 월 매출이 달라진다”며 “평소에도 많이 팔아주고, 누리호 발사 때는 투자 기업 직원들, 기자들까지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손님을 못 받을 정도로 자리가 없었다”고 했다.

우주과학관 나로호 로켓 모형.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인자 소리만 들어도 어쩌부럴지 알겄어”

“작년에는 갱장했당께. 소리가 푸슈슈슈허니, 막 후들후들혀서 총 쏘는 줄 알고 새들이 막 날아올랐당께. 올해는 소리가 한두 번만 글다가 올라가드만. 인자 소리만 들어도 어쩌부럴지 알겄어.” 우주센터에서 가장 가까운 예내마을에 사는 박모(67)씨는 소리만 듣고서 이번 누리호 발사의 결과가 예측됐다고 했다. 우주센터와 동거한 지 13년에 나로호와 누리호 발사 시도만 다섯 차례.

우주센터가 있는 봉래면 봉래중학교 전교생 12명은 이제 “우주 하면 질린다”고도 했다. 2007년생부터 2009년생인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을에 우주센터가 있었다. 이번 누리호 발사 때는 전교생이 단체로 학교 옥상에서 발사 장면을 봤다고 했다. 김경인(15)양은 “방송차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이제 슬슬 로켓을 발사할 때가 됐구나 짐작한다”고 했다. 김은별(14)양은 “내년에는 삘(feel) 받으면 옥상 올라가서 보고, 아니면 말려고요”라며 웃었다. 박시화(13)양은 “매년 친척들이 오면 다 같이 우주과학관을 가야 해서 지겹다”고 했다.

우주센터로 바뀐 모습이 뿌듯하면서도 살던 고향을 밟을 수 없어 아쉬워하는 군민도 있다. 고흥읍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종훈(68)씨는 우주센터가 들어선 외나로도에서 찍은 자녀 사진을 붙여 놓고 과거를 회상한다. 최씨는 “국민들 잘살고 국가에 좋은 일이니 축하할 일이제”라면서도 “지금은 사라진 예내리 하반 마을에 인자는 못 가지”라며 아쉬워했다. 홍인조(62)씨는 “우주센터가 들어오기 전에는 고요하고 청정한 곳이었는데 소음 등 발사체에서 나오는 문제들, 발사 시 주민들이 통제되는 것에 불편을 겪기도 한다”고 했다.

“저 위성처럼 우리 군도 날아 올랐으면...”

그럼에도 이제 우주는 고흥 군민과 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나고 자란 군에서 인공위성을 발사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발사일은 축제날이기도 하다. 남열·창포·염포·신금리 해수욕장 등 ‘발사 명소’를 공유한 뒤 단체로 관람한다. 호미로 밭을 매고 있던 한 주민도 “센터 들어와서 논밭 헐값에 가져가불고 좋은 게 뭐가 있었나” 하면서도 “발사하는 날엔 설레서 밭일을 못 했지요”라며 웃었다. 봉래면 도서관에서 만난 직원 서희자(64)씨는 “주민들이 너무 떨려서 도서관이나, 소방대에 모여서 발사 장면을 모여 보기도 했다”고 했다.봉래초등학교 6학년 차윤우(12)군은 누리호를 보려고 나로1대교를 지날 당시 택시 기사에게 내려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차군은 “로켓이 올라가면서 불빛이 먼저 보이고, 소리가 그 다음에 들렸거든요. 소리의 속도가 느려서 늦게 들리는구나 싶었어요. 생각보다 소리도 크고 불빛이 태양같이 엄청 세게 나오는 게 신기했어요”라며 뿌듯해했다.

풍양마을에서 유자 농사를 짓는 박모(65)씨는 최근 유자 나무들이 냉해를 입어 200죽에서 140~150죽 규모까지 줄어들었는데 누리호 발사가 성공해 큰 위안이 됐다고 했다. “유자 때문이 속상했는디, 저 누리호처럼 유자도 살아나믄 얼마나 좋겄어요. 저 위성처럼 우리 군도 날아오르면 좋겄어요.”

구아모 기자 am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