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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도 울린 임윤찬 “산에 들어가 피아노와 사는 게 꿈”

레이찰스 2022. 6. 20. 09:38

지휘자도 울린 임윤찬 “산에 들어가 피아노와 사는 게 꿈”

중앙일보

 

우승자 임윤찬 등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입상자들. 왼쪽이 2위 러시아의 게뉴시네, 오른쪽이 3위 우크라이나의 초니. [사진 반 클라이번 재단]

“제 친구들은 모두 태권도 학원에 다녔는데,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서.... 저도 뭔가 하고 싶어서 일단 아파트 상가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가게 됐습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베이스퍼포먼스홀에서 폐막한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18·한국예술종합학교)은 시상식 이후 기자회견에서 ‘어떻게 피아노를 시작하게 됐는지’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무대 위에서 신들린 듯 연주하던 18세 피아니스트의 덤덤한 이야기에 좌중은 일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대회 내내 압도적인 기교와 표현력으로 화제를 모은 끝에 대회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 그였지만, 무대 아래에선 영락없는 소년이었다.

일곱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임윤찬은 해외 유학 한 번 간 적 없는 순수 국내파다. 중학교 과정인 예원학교를 2020년 수석으로 졸업한 뒤 홈스쿨링을 거쳐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 입학했다. 열한 살 때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 열다섯 살에 윤이상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를 하는 등의 이력으로 일찌감치 조성진을 이을 차세대 ‘괴물 신인’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이번 대회에서도 내내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화제를 몰고다녔다. 특히 준결선에서 65분에 달하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12곡 전곡을 쉼 없이 연주한 무대는 큰 화제를 모았다. 콩쿠르 공식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된 올해 콩쿠르 영상 가운데 최고 조회 수(19일 기준, 9만5000회)를 기록했다. 외신도 “그의 지적인 기교와 리스트 양식에 대한 완전한 몰입은 진정 초월적”(영국 그라모폰), “경이적인 기교에 더해 음악적 구조와 형태, 질감과 색감에 대한 정교한 감각까지 갖췄다”(댈러스 모닝 뉴스) 등 찬사를 보냈다.

17일 진행된 결선에서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 c단조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d단조를 연주했다. 특히 결선 두 번째 곡인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연주를 마쳤을 때 현장 청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고, 지휘자인 마린 올솝이 감격한 듯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임 “커리어 야망? 0.1%도 없다”

임윤찬(오른쪽)과 그가 열두 살이던 때부터 가르친 손민수 한예종 교수. [사진 목프로덕션]

임윤찬은 기자회견에서 “실제 무대에서는 연습했던 것의 30%도 나오지 않아 굉장히 아쉽고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음악 앞에선 학생이기 때문에 더 배우고 싶다”고 자신을 낮췄다. 또 “(이번 콩쿠르 기간) 하루에 거의 12시간씩, 새벽 4시까지 연습했다”며 “새벽 4시까지 연습해도 괜찮다고 해주신 (미국 현지) 하숙집 주인분들에게 감사하다. 한국에선 아파트에서 살아서 (새벽) 4시까지 연습하면 큰일난다”고 말했고,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향후 계획에 대해 그는 “사실 제 꿈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냥 산에 들어가 피아노와 사는 것인데, 그러면 수입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라며 “커리어에 대한 야망은 0.1%도 없다”고 대답했다

임윤찬은 이번 콩쿠르에서 2개 부문 특별상(청중상, 신작 최고연주상)도 수상했다. 우승상금 10만 달러(약 1억2800만원)와 특별상 상금 7500달러(920만원)를 받았다. 이와 함께 3년간 종합적인 매니지먼트 지원을 받는다. 러시아의 안나 게뉴시네(31)가 은메달(2위), 우크라이나 드미트로 초니(23)가 동메달(3위)을 각각 차지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1958년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기 위해 창설됐다. 그의 고향인 포트워스에서 1962년부터 4년마다 열린다. ‘세계 3대 콩쿠르’인 쇼팽, 퀸 엘리자베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버금가는 권위를 자랑한다.

올해 대회 최연소 출전자였던 임윤찬은 역대 최연소 우승이자 2017년 선우예권에 이어 한국 피아니스트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도 썼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 알렉세이 술타노프, 올가케른 등이 이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한국인으로는 선우예권 외에도 양희원(2005년), 손열음(2009년)이 2위에 올랐다.

김대진 총장 “차원이 다른 연주”

그가 재학 중인 한예종의 김대진 총장은 “지난 대회에서 선우예권이 우승했기 때문에 한국 연주자가 또 우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압도적인 연주를 하면 그런 걸 다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임윤찬의 연주는 다른 연주자들과 차원이 다른 연주였다”고 평가했다

2017년부터 임윤찬을 지도하는 손민수 한예종 교수는 지난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임윤찬은 연주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며 “외국 콩쿠르에 나갔다가 돌아와 한국 공항에 내리자마자 나에게 전화해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악보 보고 싶다’고 한 학생”이라고 전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