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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큰일"…대만은 '인재 1만' 쏟아내는데, K반도체 1400명 [기로에 선 K반도체]

레이찰스 2022. 5. 20. 10:44

"이러다 큰일"…대만은 '인재 1만' 쏟아내는데, K반도체 1400명 [기로에 선 K반도체]

중앙일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 삼성전자]

반도체 설계 업체인 A사는 지난해 말 신입사원 60여 명을 뽑았다. 대부분 공대 출신이다. 하지만 현장에 투입된 인력은 한 명도 없다. 모두 재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뽑을 인력 자체가 부족하고, 뽑더라도 반도체를 전공한 학생이 거의 없다”며 “1년 정도 자체 교육을 한 후에야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도 반도체 인력 뽑기가 어려운 마당에 중소업체는 대학에 가서 읍소를 해도 사람을 데려오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이 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으로 꼽히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대·중소기업 할 것 없이 뽑을 인재가 부족하다며 아우성이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에도 노출돼 있다.

반도체 업계와 학계에선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윤석열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중앙일보가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 선정한 ‘10대 과제’는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 ▶반도체 공장 신‧증설 규제 완화 ▶투자 및 연구·개발(R&D)에 대한 세액 공제 등 인센티브 확대 ▶시스템반도체 분야 지원 강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는 국가 콘트롤타워 설립 ▶해외 기업 인수·합병(M&A) 지원 및 해외 기업 국내 유치 정책 ▶반도체 R&D 국책 사업 확대 및 예산 확충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중견‧중소기업 지원 강화 ▶차량용 반도체 및 소부장 국산화‧내재화 지원 ▶인공지능(AI) 등 차세대 반도체 핵심기술 확보 위한 민‧관 협력이다.

기업과 대학원이 손잡고 반도체 계약학과를 늘리고 있지만, 반도체 전문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각사 제공]

10년 간 3만명 부족한 인력 양성 시급  

특히 향후 10년간 3만여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도체 인력 양성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국내 기업에서 매년 뽑는 반도체 인력 1만명 중 1400명 정도만 반도체 전공자”라며 “반면, 대만은 10년째 매해 전문 인력 1만명을 육성하고 있고, 중국은 한해 20만명씩 배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도권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대학 반도체학과 정원을 확충하고, 석‧박사 배출을 위해 반도체 대학원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 역시 “기업에선 더 많은 인력을 보내 달라고 하는데 학생 자체가 부족하다”며 “특히 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좀 더 혜택을 주고 안정적인 지원이 제공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반도체 연구소 같은 학교별 중점 연구 시설을 확충하고, 정부 지원을 받는 국가 반도체 연구소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 속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은 갈림길에 섰다. [중앙포토]

차세대 반도체 시장 선점을 위해 소부장 자립화를 지원하는 정책도 시급하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미국을 필두로 각국이 자국 중심의 반도체 팹과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며 “한국도 차세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부장 업체의 자립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29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내 나노종합기술원을 방문, 반도체 연구 현장을 둘러보던 중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생태계 개선할 콘트롤타워 필요  

이윤식 한국반도체공학회장은 “무작정 인력만 늘리거나 시스템반도체 등 생태계 한 곳에만 집중해선 곤란하다”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반도체 산업과 기술‧인력‧생태계를 종합적이고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부처를 아우르는 대통령 직속 반도체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게 이 회장의 조언이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