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매력과 마력사이, '뱀의 눈'의 은밀한 비밀
정지섭 기자대만 고교생, 눈 모양에 따른 뱀 생태 분석 논문 화제
미 국립공원관리청 "고양이눈을 한 뱀이면 독사일 가능성 높아"
'뱀의눈'은 효능은 작지만, 공포스러운 이미지의 대명사가 돼
월트디즈니의 걸작 ‘알라딘’의 중요한 클라이막스는 아그라바 왕국의 술탄이 최면에서 깨어나 대오각성하는 장면입니다. 사람좋고 유약한 둥글둥글한 술탄이 알고보니 궁중마법사 자파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던 꼭두각시였던 것이죠. 자파의 뱀지팡이에서 나오는 눈빛에 최면이 걸려 헤롱헤롱하는 모습을 간파한 알라딘이 재빨리 지팡이를 박살내고 마각을 드러내면서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갑니다. 뱀이라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두려움, 그 중에서도 뱀의 눈에 대한 숭배와 공포의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뱀의 눈은 금기와 매혹의 상반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뱀은 시각을 크게 활용하지 않지만, 눈은 뱀의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샌디에이고동물원 홈페이지천성적으로 눈꺼풀이 없는 뱀은 여타 동물들처럼 눈을 감지도, 깜박이지 못합니다. 단지 얇은 막 하나가 눈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모든 신진대사를 진행할 때 눈을 치켜뜨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먹을 때도, 잘 때도, 암수가 몸을 뒤엉키며 사랑을 나눌때조차 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동물원 유리 안에서 온몸을 동그랗게 만채 사람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뱀을 본적이 있으신지요? 십중팔구 잠을 자고 있는 뱀입니다. 살아있을때 눈을 감지 못하다보니 이 짐승은 죽을 때조차 눈을 치켜뜬 채입니다. 사실 많은 뱀들은 그렇게 시력이 뛰어나지 않습니다. 피부나 와이(Y)자로 갈라진 혓바닥을 통해 공기의 진동이나 냄새를 맡아 먹잇감이나 천적을 찾는데 익숙해져있죠.
고양이눈을 한 뱀은 독사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어둠 속에서 방울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방울뱀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미국 농무부 홈페이지그런데 이 뱀의 눈이 일종의 종족의 신분증 역할을 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이웃나라 대만에서 나왔습니다. 뱀눈의 모양새만 제대로 판독하면 이 뱀이 어디서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지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대만 공영방송 RTI가 최근 이 연구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자연과학 분야의 권위있는 국제학술지인 ‘생태와 진화의 최전선’(Frontiers in Ecology and Evolution)에는 앳된 얼굴의 고교생이 당당 제1저자로 등재된 뱀의 생태 관련 논문이 실려 화제입니다. 논문의 제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뱀 눈크기와 서식지, 주•야행성 패턴과의 관계(Size of Snake Eyes Correlates With Habitat Types and Diel Activity Patterns)’.
대만 타이중 창춘텅고교 재학생 황천웨이 학생이 뱀의 표본을 관찰하고 있다. 그가 제1저자인 뱀의 눈 분석 논문이 최근 권이있는 국제학술지에 게재돼 화제다. /RTI방송. 대만국립자연과학박물관 홈페이지RTI 보도 내용에 따르면 제1저자 황천웨이(黃晨瑋)군은 대만 타이중시의 창춘텅(常春藤) 고교에 재학중인 과학 꿈나무입니다. 황군은 대만 국립자연과학박물관의 황원산(黃文山) 국립자연과학박물관 부관장이 이끄는 연구진과 의기투합해서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5대양 6대주에 골고루 분포하는 각종 뱀들을 실제로 찾아다니지는 못했지만, 국립자연과학박물관이 소장한 1176개의 뱀의 표본을 정밀하고 면밀하게 분석했다고 합니다. 알코올병에 담긴채 눈을 치켜뜬 뱀의 사체를 응시하는 것은 어쩌면 상당한 담력을 요구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상적인 눈을 한 긴코채찍뱀. 밝은 색깔과 우스꽝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친근한 인상을 주지만 여느 뱀과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사냥꾼이다. /인도 정부 홈페이지연구진이 1년 여동안 뱀 표본 눈 크기와 두개골 모양 등을 세밀하게 분석한 결과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우선 땅 속에서 살다가 올라와서 육지 생활에 적응한 뱀들은 주변 환경에 맞게 진화하는 과정에서 눈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생활 패턴이 주행성이냐 야생성이냐에 따라 눈의 형태도 달라졌습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낮 시간에 활동하는 뱀일수록 눈의 크기가 컸습니다. 반면 저물녘 이후 어둑한 밤에 먹이를 찾는 뱀의 눈크기는 상대적으로 작았습니다. 거의 뭍에 올라오지 않고 심해를 헤엄쳐다니는 바다뱀은 빛이 들어오는 뭍에 사는 뱀보다 훨씬 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죠. 뱀은 혐오와 공포의 대명사이지만, 그 어떤 동물족속보다도 다양한 형태로 주변 환경에 맞게 진화돼 살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괴수 아나콘다부터 지렁이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꼬꼬마 장님뱀까지 사는 곳에 따라 천차만별의 스타일로 진화해왔습니다.
대표적인 독사인 코퍼헤드뱀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홈페이지이 족속은 퇴화시키면서 진화하는 역설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환경에 맞게 신체기능을 최첨단화하는 과정에서 다리를 없앴고, 귀도 제거했으며, 눈꺼풀도 포기했습니다. 다리의 흔적이 남아있는 뱀일수록 진화가 덜 된 원시적인 뱀으로 분류되는 역설적 상황도 벌어졌죠. 새끼뱀이 알에서 깨어나서 자라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과감하게 뱃속에서 알을 부화시켜 내보내는 난태생으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다차원·고차원적으로 진화해간 뱀의 비밀의 열쇠가 가장 섬뜩하면서 매혹적인 신체기관 뱀의 눈이라는 것이 이번 연구의 결론입니다. 세계적인 파충류 연구자인 미국 코넬대 해리 그린 박사도 이번 연구에 대해 아낌없이 칭찬을 했다고 RTI는 전했습니다. 진화의 기원을 따지는 과학의 측면이 아니라 실생활면에서도 뱀의 눈을 판독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눈꺼풀이 없는 뱀에게 눈은 질병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감염병에 걸려 눈이 흐릿해진 뱀의 모습. /미국 농무부 홈페이지우리나라의 국립공원공단에 해당하는 미 국립공원관리청(NPS)은 국립공원 이용객들에게 뱀눈의 모양을 통해 독사와 독없는 뱀을 구분하는 법을 알리고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홀쪽하게 타원형인, 이른바 고양이눈을 한 뱀이면 독사, 그렇지 않고 둥근 눈을 한 뱀이면 독없는 뱀이라는 거죠. 실제로 방울뱀과 살무사 등 대표적인 독사들을 보면, 이른바 고양이눈을 하고 있죠. 하지만 대략적인 구분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맹독사로 유명한 코브라나 블랙맘바 같은 녀석들은 모두 둥글고 영롱한 눈을 갖고 있거든요.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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