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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성과 폄하 말라”는 총리… 그럼 실패 책임은 누가 지나요?

레이찰스 2022. 4. 3. 05:55

“방역 성과 폄하 말라”는 총리… 그럼 실패 책임은 누가 지나요?

커지는 방역 실패 비판론
사과없이 침묵하는 이들


“방역 정책에 대한 폄하가 지나치다.”

코로나 방역 사령탑인 김부겸 국무총리가 발끈했다. 최근 정부 방역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지난 29~30일 이틀에 걸쳐 “방역 성과를 폄하하지 말라”고 나섰다. 그는 “방역 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이 지나쳐 국민들의 눈물겨운 연대와 협력으로 이룬 성과 자체가 폄하돼서는 안 될 것”, “(지나친 비판은) 우리 국민과 상공인들을 자칫하면 모욕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론과 전문가의 반응은 싸늘하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국민들의 헌신적인 협조를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방역 성과를 내세울 땐 정부 성과로 내세우면서 정작 정부 방역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 ‘국민을 모욕하지 말라’며 면피만 하려는 정부가 문제”라고 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정작 거리 두기를 강화해야 할 때 거리 두기를 완화하는 비과학적인 정책으로 인명 피해를 늘리고 코로나 환자들을 치료 없이 방치한 것을 성과라 할 수 있냐”며 “잘못된 정책으로 인명 피해를 키우고 국민을 고통받게 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코로나 방역이 무너지면서 정부 내 주요 방역 책임자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왼쪽부터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정세균 전 국무총리, 김부겸 국무총리,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신현종 기자·연합뉴스·뉴시스

'방역 영웅’서 ‘영혼없는 공무원’으로


방역 실패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다. 정 청장은 사태 초기 중국발 입국을 차단하지 않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방역하는 입장에서는 누구라도 고위험군이 덜 들어오는 게 좋은 건 당연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또 PCR 검사를 조기 도입해 초기 확산과 유행을 억제하는 성과를 내면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고 비과학적인 방역 조치가 남발되면서 정 청장에 대한 호평은 ‘영혼 없는 공무원의 전형’이라는 부정적 평가로 바뀐 지 오래다. 특히 작년 코로나 백신 접종 사업 당시 백신 수급량에 따라 접종 기준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조치가 나오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질병청의 전문성과 신뢰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계 관계자는 “백신 접종 기준을 바꾼 주체는 정 청장이 아닌 청와대라는 얘기가 공직 사회에 파다했다”며 “그럼에도 정 청장이 책임을 피할 순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청와대가 비과학적인 결정을 내렸을 때 제동을 걸어야 할 주체가 바로 질병관리청장이라는 것이다.

'정치 방역’에 앞장선 총리들


방역에 앞장선 국무총리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작 “방역 성과를 폄훼하지 말라”는 김부겸 국무총리도 이미 수많은 실책을 저질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오미크론 유행 와중에 거리 두기를 거듭 완화한 것부터가 논란 거리다. 김 총리는 “오랜 기간 고통을 감내한 상공인들의 입장도 감안해야 했다”고 설명했지만, 전문가 대부분은 “비과학적”이라고 지적했다. 일일 확진자가 수십명·수백명대였을 때보다 거리 두기를 완화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확산을 억제하기 어려우면 치료라도 제대로 받게 해야 하는데 둘 다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김 총리가 지난해 11월부터 주도한 ‘단계적 일상회복’도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위드 코로나를 하려면 미리 비상 시기 대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치료체계도 정비해야 한다”고 했지만, 김 총리는 불과 한 달여 만의 준비 기간을 거쳐 단계적 일상회복을 강행했다. 그 결과 중환자와 사망자가 급증하고 재택치료는 사실상 ‘재택방치’로 전락한 실정이다.

사태 초기부터 작년 초까지 방역을 총괄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정 전 총리는 사태 초기 중국발 입국 제한을 앞장서서 반대했고, 중환자 병상 확보 없이 거리 두기를 완화해 3차 대유행을 초래했다. 국산 백신과 치료제에 과도한 기대를 걸다 백신 도입을 뒤늦게 한 책임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전 총리는 방역을 지휘하던 중 지난해 4월 대권 도전을 위해 총리직을 사임했다.

뒤로 숨은 청와대 ‘방역 실세’


전문가들은 “방역 실패의 가장 큰 책임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대외적으로는 국무총리실이 방역을 총괄하고 질병관리청이 실무를 전담했지만, 방역의 전반적인 결정은 사실상 청와대에서 다 이뤄졌다는 게 의료계와 공직 사회 내부의 정설이다. 특히 ‘김용익 사단’으로 불리는 의료 사회주의 라인의 핵심 인사인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지난해 4월 청와대가 신설한 방역기획관에 취임한 기모란 국립암센터 예방의학과 교수 등이 ‘방역 실세’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계 인사는 “심지어 코로나 백신접종 사업 전반에도 청와대가 정치적 목표에 따라 일일이 접종 기준 등을 지시하고 개입한 것으로 안다”며 “다만 공문 등을 통해 지시하진 않았을 거라 추후 책임 소재를 밝혀내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책임 논란에 대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내부에서는 “현 정부의 방역 실패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수위 관계자는 “법적 책임이 있다면 밝혀서 문책하고, 법적 책임이 없더라도 방역 실패에 대한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그래야 차기 정부가 기존 문제를 개선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방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준용 기자 junsam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