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초등생용 금융 교재만 읽어도 알 수 있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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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금융경제세미나 초청 강연회에 참석해 '청년살롱 이재명의 경제이야기' 경제정책 기조와 철학을 주제로 학생들에게 강연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날 “부자는 낮은 금리를 내고 가난하면 높은 금리를 내야 하는 금융은 정의롭지 않다”라고 했다. /국회사진기자단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증거와 사실을 무시한 채 경제에 대해 확신에 찬 의견을 주장하는 정치인을 보면 식은땀이 난다”고 최근 썼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주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강연한 영상을 보고 비슷한 거북함을 느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SNU Economics)’이라고 쓴 후드티를 입고 “경제는 정치”라며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끌어갔다. 그런데 사실과 다른 발언이 많았다. 이런 식이다. “금융감독원은 불법 사금융 이자가 평균 401%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통은 2만, 아니 3만%입니다.” ‘평균’과 ‘보통’의 차이가 50배가 넘을 수가 있나.
이런 말도 했다. “요즘은 투자할 돈이 남아돌아서 마이너스 이자입니다. 100억 빌려서 95억만 갚으라고 해도 안 빌려 갑니다.” 아무도 안 빌려 가는데 한국 가계 부채는 도대체 왜 세계 최고 속도로 불어나고 있나. 100 주고 95만 갚으라는 ‘천사’가 있다면 알려 달라. 당장 가서 돈 빌리게.
이런 식으로 하나씩 팩트 체크를 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20분짜리 모두 발언에만 사실과 다른 내용이 얼핏 봐도 10개가 넘었다.
자문을 구한 대부분 전문가는 사실 확인에 너무 힘 빼지 말라고 했다. 한 경제학자는 이렇게 조언했다. “시시콜콜 따지면 끝이 안 납니다. 이재명 후보가 뒤튼 경제의 세상에선 원래 사실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 ‘뒤틀림’의 결정적 증거로 이 후보의 이 발언을 지목했다. “부자들은 잘 갚는 집단이니까 이자율이 엄청 싸고 원하는 만큼 빌려준다. 가난하면 안 빌려주고, 이자를 엄청나게 높게 낸다. 정의롭지 않다.”
이 발언은 불편한 동시에 틀렸다. 불편한 까닭은 금융을 586 정치인의 주무기인 편가르기의 도구로 동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멀쩡히 앉은 학생 넷을 지목해 “자, 여러분은 가난해요”, 다른 넷에겐 “이분들은 부자”라고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여기(부자)는 원하는 만큼 빌려줘요. 여긴(가난한 사람) 안 빌려줘요. 이자 엄청나게 높게 내요”라고 했다. “약육강식하지 않는 것이 인간 사회인데 금융에선 작동하지 않는다”라며 가난한 사람이 부자 탓에 금리를 많이 내는 듯 포장했다.
하지만 틀렸다. 은행은 부자인지를 따져 금리를 정하지 않는다. 대출 심사의 잣대는 돈을 제대로 갚을 확률, 즉 신용도다. 금융사는 안 갚을 위험이 높다고 생각하면 일종의 보험료처럼 금리를 올리거나 대출을 막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부자라도 몇 번 연체하면 대출은 바로 회수되고 가난해도 성실히 대출을 갚아 나가 신용을 쌓으면 더 많이,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다.
금융의 고전서 ‘금리의 역사’(시드니 호머)에 따르면 15세기 유럽에선 프랑스 왕이 돈 빌리는 금리가 최고 연 100%로 이탈리아 상인(5~10%)보다 훨씬 높았다고 한다. 상인은 장사를 영위하려 신용에 집착했지만 왕은 수시로 돈을 떼어먹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금융도 비슷한 원칙에 따라 돌아간다. 신용 데이터를 모으고 위험을 분석하는 방법이 훨씬 과학적일 뿐이다.
이 후보는 신용과 금융의 이런 기본 관계를 뒤집는다. 불공정하므로 무너뜨리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국가와 민간의 영역을 이렇게 어지럽게 뒤섞는다. “세금은 부자가 많이 내고 가난한 사람은 세금 안 내고 혜택만 봅니다. 이것이 금융에선 작동하지 않습니다.” 과세 및 분배라는 독점적 도구를 지닌 국가와 민간의 영역인 금융을 아무렇지 않게 뭉뚱그려 금융이 정의롭지 않다고 비난한다.
이 후보가 지향하듯 금융회사가 저신용자에게도 대출해주라고 정부가 유도한 사례가 과거에도 있었다. 1990년대 말 소비 촉진을 한다며 신용카드 규제를 완화하자 너도나도 카드를 발급받고 현금 서비스를 썼다. 대학생이던 나도 신용카드가 5개 넘게 있었다. 노숙자마저 카드를 들고 다녔다. 끝은 처참했다. 신용불량자가 외환 위기 때의 두 배인 400만명으로 폭증하고 경제성장률이 고꾸라진 이른바 ‘카드 대란’이 일어났다. 10여 년 전 미국에선 갚을 능력은 대충 보고 가격 하락 위험이 있는 집을 담보로 저금리 대출을 해줬다가 대거 부도가 났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이로 인해 촉발된 금융 위기의 후유증은 10년 넘게 이어졌다.
금융과 신용의 고리가 헐거워지고 정치가 경제 원칙을 비틀 때 위기가 닥친다. 금감원이 만든 초등학생용 금융 교재에 적힌 말이다. ‘신용을 잃으면 돈을 빌리지 못하거나 돈을 빌리더라도 훨씬 높은 이자를 내야 합니다. 소득수준 안에서 소비하고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리면 제때 갚아야 합니다. 이것만 잘 지켜도 신용 등급을 좋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설명의 어느 부분이 정의롭지 않은가. 자칭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 후보에게 묻고 싶다.
김신영 기자 sk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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