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돈 다 뿌리고 이제 와 “물가·금리 걱정된다”는 정부
조선일보
지난 14일 한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부겸 국부총리가 소상공인 지원확대를 위한 정치권의 추경 증액 요구에 대해 "이 상황에서 돈을 풀면 물가로 바로 연결되고, 금리와도 연관된다. 물가가 뛰면 온 국민이 피해를 본다"면서 반대 입장을 재차 밝혔다. /뉴스1
김부겸 총리가 추경 규모를 35조~50조원대로 늘리자는 여야 정치권 요구에 대해 “돈을 풀면 물가로 바로 연결되고 금리와도 연관된다. 물가가 뛰면 온 국민이 피해를 본다”면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경제 전문가들과 금융계에서 계속 지적해온 우려였는데, 그동안 정부는 여권의 선심성 돈 풀기에 동조하기만 했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 그 부작용을 인정하는 것이다.
6·25 전쟁 이후 71년 만에 등장한 이번 ‘1월 추경’은 출발부터 노골적인 대선용 매표 정치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국민 1인당 50만원씩 전 국민 재난 지원금을 주자며 불씨를 던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세수 예상 오차분을 근거로 “소상공인 지원 여력을 갖게 됐다”고 맞장구치면서 추경을 공식화했다. 정부는 올해 본예산에 이미 잡혀 있는 소상공인 지원 예산 10조원과는 별도로 자영업자 320만명에게 300만원씩 지원하겠다며 총 14조원 규모 추경안을 마련했다. 선진 각국 정부가 코로나 대응 때 풀린 돈을 회수하는 금융·재정 긴축에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만 거꾸로 간 셈이었다.
이미 금융시장과 민생 현장에선 김 총리가 말한 부작용이 본격화되고 있다. 607조원의 초대형 본예산에다 14조원의 추경이 추가되면서 돈 풀기가 가속화되자 물가가 뛰고 시중 금리가 요동치는 ‘금리 발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 물가는 4개월 연속 3%를 웃돌았고, 국채 금리는 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출 금리가 급등하면 가계와 소상공인, 중소기업들의 금리 부담이 가중된다. 선심성 돈 풀기가 경제 약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역설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권은 추경 규모를 35조~50조원대로 늘리라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추경 증액엔 거의 전액 빚을 내야 한다. 곧바로 금리·물가 불안으로 이어진다. 800조 넘는 빚을 가진 자영업자들에게 지원금을 안기고는 뒤로는 더 큰 고금리·고물가 이중고를 떠안기는 꼴이다.
헌법 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지출 예산을 증액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제동 걸 권한을 준 것이다. 정부가 무분별한 추경 증액에 거부권을 행사하는지를 보면 김 총리의 걱정이 진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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