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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지도사 된 ‘文 자객’ 손수조… 이준석과 운명 갈린 이유는

레이찰스 2021. 12. 13. 07:53

장례지도사 된 ‘文 자객’ 손수조… 이준석과 운명 갈린 이유는

 
 

2011년 새누리에 영입된 이준석은 국회의원 3번 떨어지고, 10년 만에 국민의힘 당대표가 됐습니다. 2012년 “부산사상구에서 문재인을 떨궈라” 이 특명을 받고 ‘자객 공천’된 손수조는 지금 ‘상조회사’ 준비하며 장례지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각자도생만 있는 정치판에 ‘키즈’의 자리가 있을까. 이걸 물어봤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4ㆍ11총선을 한 달 앞둔 2012년 3월 13 13일 오후 격전지인 부산 사상구를 찾아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맞붙는 손수조 후보와 만나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노원구병에서 2016년부터 3번(보궐포함) 낙선했다. 손수조는 2012년 문재인 후보, 2016년 무소속 장제원에게 패했다. 2016년은 ‘박근혜 키즈’에게는 최악의 해였다. 그 해 대통령은 탄핵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5년, 두 사람은 인생 경로가 꽤나 달라져있다. 그 사이 이준석은 당대표가 됐고, 손수조는 현실정치를 떠나 ‘장례지도사’로 전업했다.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 건 무엇일까.

2012년 3월 18일 부산 사상구 삼락강변공원에서 열린 지역 축구대회에 참석한 문재인과 손수조. 이날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눴다. 19대 총선에서 최고격전지로 꼽혔던 부산 사상구,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55.1%,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는 43.7%를 득표했다. /조선일보 DB
-“이준석이 당대표된 날, 처음으로 입관했다”고 했다. 재미있는 우연인데. 이준석은 성공했고, 손수조는 그렇지 못하다. ‘하버드빨’이 없어서인가.

“준석이는 준석이 하나 밖에 없다. 아주 특별한 친구다. 개인으로 돌파하는 힘, 개인 플레이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 재미있는 건, ‘부산 주례여고 학생회장’ 경력이 부각되서인지, 제가 고졸인지 아시는 분들이 많더라.” 손씨는 이화여대 국문과 출신이다

-2021 12월 현재, 이준석은 많이 이뤘고, 손수조는 멈춘 느낌이다.

“비교 되기 싫은데. 하하. 그 사이 결혼도 했고 아이 둘 낳고 키웠다. 청년조직도 밑바닥부터 일궜다. 때와 시기가 좀 다를 순 있겠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어떤 자리에 오르는 게 정치의 최종 목표라면 성공과 실패가 명확한 게임이겠지만, 정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리 좋아했다면 2012년에도 문재인 대항마로 출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수조를 계기로 ‘자객 공천’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됐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3000만원 뽀개기’ 정신, 저비용 선거, 선거개혁, 정치개혁, 정당개혁을 이어가고 있다. 이준석과 저는 결국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이준석은 지역구에서 3번 패하고 당대표가 됐다. 지역구가 그렇게 어렵나?

“노원, 어려운 지역구다. 솔직히 좀 쉬운 지역구도 있지 않나. 정치 초년생에게는 양지를, 중진에게는 험지를 권하는 게 밸런스 맞추기 좋지 않겠나. 하지만 여태 거꾸로 해왔다. 초년생을 험지에 ‘학도병 공천’하고, 중진들은 양지에서 방을 안뺐다.”

서울 노원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손수조 씨. 상조회사에서 '손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보수가 여자 안키워? 보수가 기회 더 준다”

-왜 더 못컸나. 보수당에서 여자를 안키운 건가?

“아니. 저는 특별히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2012년, 2016년 공천을 두 번이나 받았다. 젊은이들에게 공천기회를 더 많이 줄 것 같은 정당에 대해 설문조사하면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을 지목하는 사람이 더 많다. 젊은층, 여성에 대한 기회가 보수당이 적다, 결코 이렇게 말할 수 없다. 다만 그렇게 들어온 이후에는 정말 이끌어주는 선배가 없다. 마음 열고 상의할 분도 없고.”

 

-국민의힘은 ‘자영업자 모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내 장사, 내 공천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느낌이랄까.

“공천 문제는 정말 중요하다. 사상당협위원장 시절, 당협위원장으로서 지자체장 후보 공천권을 포기하고, 경선을 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이 욕하고 등을 돌리더라.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

-2012년 문재인에게 패한 손수조가 2016년 다시 부산사상에 공천되자, 장제원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박근혜 지지자들은 “박근혜 공천에 MB계가 재를 뿌렸다’고 하더라. 반대로 “2012년 장제원대신 손수조를 공천해 문재인에게 길을 터줬다”는 비판도 있다. 장제원 후보가 미웠나.

“제가 여러 번 생각했는데, 누구 미워할 것도 없고 누구 탓할 것도 없고, 그냥 다 제 책임이다. 아무리 그렇게 판을 흔들어도 내가 잘하면 이긴다. 지 능력이 있으면 이길 사람은 이긴다.”

 -능력 있으면 된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굉장히 어렵잖은가.


“개인의 능력을, 세대의 능력을 하나의 파도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차세대 리더십 아카데미 with 손수조’를 시작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노리는 친구들을 위해 선거법, 재무회계 , 연설문작성법, 카메라연습 등 선거실무를 가르치는 거다. ‘3000만원으로 국회의원 되기’도 결국 이뤄낼 거다.”

-젊은 정치인의 오류는 뭔가?

“젊은 정치인 중 중심이 될 사람을 세우고 세력화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26세에 국회의원을 했다. 그를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됐고, 함께 커가는 정치인들이 있었다. 이제는 선배가 없는 시대다. 각자도생 시대. 돈, 경험, 인맥 없는 이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한번 쓰고 버려지는 구조다. 미약하지만 서로 경험을 공유하고 쌓아가며 힘을 모아야 한다.”

 -젊은세대, 여성들이 ‘누구의 키즈’ 방식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 장단점은 뭔가.


“저는 내 손으로 이력서 넣고 내 발로 걸어 들어온 케이스다. 공천 이후,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많이 챙겨주셨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자산에 힘입어 성장했다. 장점은 속도가 빠르다는 것, 빨리 큰다는 것. 단점은 자기 색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박근혜 키즈’로 불린 이후부터 나의 ‘3000만원 뽀개기’는 사라졌다.”

-계획은.

“줄여서 ‘손수조 아카데미’라고 하는데, 정치에 입문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실질적 도움도 주고, 네트워크를 만들 거다. 내가 어떤 자리를 하는가 보다, 청년 정치가 하나의 세력으로 굳어질 수 있게 달려볼까 한다. 지금 생각 중인 상조회사 모델은 기업비밀이니 쓰지 말아달라. 생업이 진짜 중요하다.”

20년 이상 정치부 기자가 본 이준석과 손수조 차이

한국정치는 여전히 남성중심적이다. 거기에 하버드라는 후광. 이준석은 선거 패배후에도 방송에 줄기차게 출연하면서 혼자 힘으로 유명인 ‘셀럽’, 혹은 반연예인이 됐다. 그리고 골수지지층을 만들었다. ‘반페미’ ‘이대남’ 등 자기정책 자산을 일궜다. 정치인에게는 그게 ‘엔진’이다. 이준석에게는 그게 있었고, 손수조에게는 없었다. 손수조씨가 ‘당협위원장이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고, 민주적 경선방식을 도입했다’고 했다. 전형적으로 정치 초보가 하는 행위다. 정치는 ‘동지’로 하는 것이다. ‘빚’을 지고 갚는 사이를 통해 동지가 만들어진다. 사람 만나고 상가 가고, 도와주고 빚지고, 이렇게 해서 사람의 반경을 넓히는 것이 정치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



정치판 키즈의 생존율? 열명 중 하나 정도라고 본다. ‘키즈’는 장식품이 되기 쉽다. 이준석은 ‘박근혜 키즈’로 출발했지만 탄핵 국면에서 결별했다. 그런 순간이 필요하다. 손수조는 박근혜 그림자를 벗어나 강력한 ‘자기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3000만원으로 국회의원 뽀개기’ 같은 건 좀 약했다. 청년 정치 자체가 쉽지 않다. 그래도 586이 장악한 민주당 보다는 국민의힘이 정치신인들에게는 더 환경이 좋다. 이미 ‘포스트 이준석’급의 인물이 국민의힘에는 15명 정도 있는 것으로 안다. (배성규 조선일보 논설위원)

박은주 에디터 zeen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