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MB에, 지금 尹에…정치보복과 '분노정치' 입장 다른 文
“정치 보복을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다.”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ㆍ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
각각 2018년 1월과 2022년 2월, 4년의 시차를 두고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분노를 표출한 대상이 이명박(MB) 전 대통령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라는 점을 제외하면 ‘판박이’에 가까운 내용이다.
분노의 이유도 유사하다.
문 대통령은 임기 초반이던 2018년 MB가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하자, 바로 다음날 극도의 분노를 표출했다.
4년 뒤엔 윤 후보가 중앙일보 인터뷰(2월 9일자)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며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자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윤 후보가 “대통령은 수사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전제로 말했음에도, 문 대통령은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에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며 직접 작성한 입장문을 발표시켰다.
문 대통령은 과거 사저 관련 논란이 일자 “좀스럽고 민망하다”는 SNS 글을 올리거나, 대변인을 통해 개별기록관 설립 추진에 대해 “불같이 화를 냈다”는 회의 기류를 공개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감정을 노출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입장문 형식으로 명확한 분노를 표출한 것은 이 두번의 사례가 사실상 전부다.
이런 민감한 대응에 대해 안병진 경희대 미래연구원 교수는 11일 “노 전 대통령 수사 관련 언급이나 정치보복 프레임을 통한 공격에 대해 문 대통령은 매번 자신의 정치철학에 대한 부정과 도전의 의미로 받아들이며 크게 반발해왔다”며 “이번 대응 역시 근본적으로 이런 역린(逆鱗)을 건든 데 대한 반응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4년의 시차를 두고 나온 문 대통령의 대응에 대해 “완전히 다른 성격”이라는 의견도 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4년전 MB에 대한 분노는 집권 초기 설정한 목표를 강조하려는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엔 5년간의 정부실패를 인정하지 않기 위한 자기방어적 성격이 강하다”며 “문 대통령은 유일한 성과로 내세워왔던 검찰개혁에 대한 부정에 침묵할 경우, ‘실패한 정부’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사실 본인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야권 대선후보가 된 사실 자체가 사실상 검찰개혁에 실패했다는 의미”라며 “특히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의 역할을 맡겼던 윤 후보까지 공개 비판한 것은 중도층의 반발을 샀던 ‘조국 사태’와 ‘추미애 국면’ 등에 대한 옹호로 해석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여당의 중도 확장을 막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소속 의원 172명 전원 명의로 윤 후보에 대한 규탄 성명을 내는 등 문 대통령의 분노를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 반등의 계기로 삼는 분위기다. 청와대 출신 인사들도 “우리는 아직껏 만나보지 못한 ‘괴물 정권’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임종석 전 비서실장), “문 대통령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를 생각한 것 같다”(강기정 전 정무수석)며 선거를 ‘문재인 대 윤석열’ 구도로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여권의 고위 인사는 본지 통화에서 “2012년 대선에서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정면 공격한 발언 등에 대해 진보진영은 시원하다며 반겼지만, 결과는 중도층의 대거 이탈로 인한 진보진영의 패배였다”며 “문 대통령의 강경 대응을 긍정적으로만 해석하려는 여권 내 기류에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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