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와대 이웃으로 20년, 개방 한 달 겪어보니

청와대와 머리 맞대고 살아 온 지 20년이다. 그동안 네 대통령의 부침(浮沈)을 지켜보았다. 북악산을 등에 업은 채 늘 삼엄한 냉기를 품고 있었던 청와대는 만고불변의 정물화 같았다. 그런 청와대가 74년 만에 모두에게 개방되는 대변혁이 일어났다.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새벽 동이 트기 전,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청와대로 갔다. 여러 번 그 앞길을 오갔지만 무장한 경비와 사복 정보원이 사라진 정경은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낯설었다. 기자실이었던 춘추관 앞에는 건축 자재를 실은 대형 트럭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본관 철제 담장 사이로 빨간 장미가 손을 내밀어 환영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았다. 정문 앞에는 7시에 시작하는 첫 관람을 위해 한 시간 전부터 시민 30여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청와대 개방의 열풍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삼청동 주민들이 자가용처럼 이용했던 11번 마을버스는 이제 터져버릴 듯 만원이어서 승차조차 어려워졌다. 청와대와 북악산 전면 개방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고 거기에 국립현대 미술관의 ‘이건희 기증전(展)’이 어우러지면서 거대한 인파가 삼청동으로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용하던 골목길은 온종일 인파로 북적이고 웅성거린다. 문화를 즐기는 인파는 청와대 관람에서 끝내지 않고 주변의 박물관과 화랑 관람까지 함께 즐기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만보기로 재보니 청와대는 집에서 불과 1000보 남짓이다. 그리 가까운 곳을, 그리 아득하게 느끼며 살았다. 지금도 대통령이 행사장으로 이동할 때 사용하는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날 저녁 뉴스를 보면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 내용을 알 수 있었다. 그 소음도 이제는 다시 들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얼마 전 ‘열린음악회’는 거의 생음악처럼 가깝게 들렸다. 열리기 사흘 전 부터 북악산을 넘나드는 화려한 드론 쇼가 밤마다 열려서 의아했는데 열린음악회의 사전 행사였다. 정삼각형의 북악산 상공을 넘나드는 드론의 화려한 춤은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영빈관 앞에 서자 그곳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했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콧등이 싸해졌다. 매년 봄이면 서울에서 공관장 회의가 열렸다. 세계 곳곳에서 근무하는 대사들이 모이고 대통령은 영빈관에서 대사 내외를 위한 만찬을 베풀었다. 남편이 대사 생활을 10년 한 덕에 청와대 밥을 열 번 먹었다. 보통 호텔에서 케이터링한 음식이었지만 유독 김영삼 대통령 때는 칼국수와 추어탕이 나와서 이채로웠다. 노태우 대통령 때는 식사 후에 노래를 부르는 여흥 프로그램도 있었다.
이제 앞으로가 중요하다. 이 금쪽같은 곳을 백년대계를 염두에 두고 개발해야 할 것이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나 런던의 하이드 파크처럼 도심의 심장 역할을 맡길 수도 있지만 청와대는 사위를 둘러싼 산들과 고궁과 역사의 흔적이라는 특별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지형과 자산을 가진 곳은 없다. 제대로 개발한다면 막강한 관광 자원이 되는 것은 물론 우리 국민 모두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으로 자리할 수 있다. 각 단체의 목전 이익 추구를 떠나 대승적인 차원의 지혜가 모아져야 할 것이다.
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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