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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2등 전략’ 이젠 안 통한다

레이찰스 2022. 1. 27. 08:13

[특파원 리포트] ‘2등 전략’ 이젠 안 통한다

새해 벽두부터 전 세계 기업들이 3차원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Metaverse)와 VR·AR(가상·증강현실) 기기 개발에 전력 질주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을 통해 메타버스를 구축하기 위해 IT업계 사상 최고가인 82조원을 들여 대형 게임사인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하기로 했다. 애플은 VR 기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작년 페이스북에서 이름을 바꾼 메타는 실리콘밸리의 가상현실 관련 연구 인력들을 무섭게 영입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테크 기업 중 유난히 이런 흐름에 조용한 곳이 있다. 바로 삼성전자다. 미 IT 매체 CNET가 최근 ‘AR 글라스 시장이 뜨거워지지만, 삼성은 놀랄 만큼 조용하다’는 기사를 보도할 정도다. 사람들이 현실을 벗어나 새로 구축된 가상 세계에서 만나고, 일하고, 놀고, 즐기는 메타버스 세상은 그동안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메타버스가 지금 당장 구현되는 건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이뤄질 미래라는 덴 실리콘밸리를 포함해 테크 업계 모두가 동의한다.

삼성전자는 억울할 수도 있다. 작년 3월엔 마이크로소프트와 AR 기기 개발을 위한 TF(태스크포스)를 만들었고, 11 AR 스타트업에 수백억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2014년과 2017년엔 다른 업체보다 앞서 VR 기기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은 삼성전자가 메타버스에 관심이 적다고 본다. 공개한 메타버스 비전이 없고, 관련 행보도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삼성이 새롭게 뜨는 가상현실 세계에서도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쓰기로 결정한 것은 아닐까. 초기 불확실한 시장에서는 로키(low-key)로 임하다가 후에 시중에 나온 제품보다 싸고 좋은 제품을 내놓아 뒤집기 하는 그 성공 공식 말이다.

패스트 팔로어 전략은 이제 예전만큼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다. ‘베끼기의 귀재’인 중국 업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VR 기기를 내놓으면 중국 업체들은 아마 한 달도 되지 않아 성능을 그대로 베낀 제품을 반값에 내놓을 것이다. 시장은 애플 등 빅테크의 프리미엄 제품과 중국산 저가품으로 양분되고, 삼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수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괜히 수조 원을 쏟아가며 초기 메타버스 시장에 진입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다. 선점하지 않으면 설 자리를 아예 잃을 것이다.

한국의 스마트폰과 반도체가 세계 정상을 차지하자, 국내 산업계는 너도나도 “이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체질 개선하자”고 했다. 모든 산업이 융합되며 새로운 시장이 태동하는 지금이 그때다.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퍼스트 무버로 가야 한다. 아니면 중국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 패스트 팔로어로 떨어진다.

실리콘밸리=김성민 특파원 dori2381@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