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유조선 침몰 뒤 잡혔다..'年15억' 참새가 변했냐는 이것 [e슐랭 토크]
신진호1980년 5월 충남 홍성과 서산·태안을 끼고 있는 천수만. 바다를 막아 농경지를 만드는 간척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진두지휘한 공사는 바닷물의 유입을 막는 것부터가 난항이었다. 거센 조류 때문에 아무리 큰 돌을 퍼부어도 방조제를 쌓기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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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서산방조제 건설 현장에서 공사를 지휘하고 있다. [중앙포토]
새조개, 서산 간척지 공사 때 처음 등장
이때 정 회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고철로 사용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들여온 대형 유조선(23만t)을 방조제 구간에 가라앉히는 방법이었다. 이른바 ‘정주영 공법’ 사용 후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유조선이 조류의 속도를 늦춰줘 순조롭게 공사가 마무리됐다. 총 154.08㎢ 바다를 메운 간척지 건설은 1995년 8월 끝이 났다.
간척공사가 진행되던 1980년대 중반 천수만은 생태계가 바뀌었다. 기존 어종이던 우럭·도미, 참꼬막(살조개) 등이 줄어든 대신 새조개가 잡히기 시작했다. 당시 새조개는 생계의 터전을 잃을 뻔했던 어민들에게 효자나 다름없었다. 천수만에서 처음 새조개를 봤던 어민들은 못 먹는 조개인 줄 알고 버렸다고 한다.
당시 천수만에 조성된 새조개 어장은 2400㏊로 축구장(0.714㏊) 3360개를 합친 면적이었다. 1990년 초반에는 새조개 채취권을 놓고 폭력배를 동원한 해상(海上)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앞서 1989년 12월에는 조개 채취권 독점을 목적으로 조직을 만들었던 폭력배 7명이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천수만 새조개가 연간 12억~15억 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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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수만에서 어민들이 새조개 어장을 조성하기 위해 정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충남도]
무차별 남획·생태계 파괴로 생산량 급감
황금어장이 형성되자 전국에서 배가 몰려왔고 무차별 남획이 이어졌다. 바닷속 바닥을 긁은 방식으로 새조개 채취가 이뤄지면서 생태계도 파괴됐다. 급기야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이른바 ‘돈바람’이 불던 천수만에 찬바람이 몰아쳤다. 무차별 남획과 생태계 파괴로 새조개가 자취를 감춰서다.
새조개가 천수만에 다시 모습을 보인 건 1999년 1월쯤이다. 천수만 입구인 보령시 천북면 사호리 갯벌에서 새조개가 대량으로 나타나면서 마을이 활기를 되찾았다. 사호리에서만 며칠 새 2t가량의 새조개가 채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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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충남 홍성 남당항을 찾은 관광객들이 새조개를 맞보기 위해 식당을 오가고 있다. [사진 홍성군]
2012년 이후 천수만 새조개 생산량 'ZERO'
이후 천수만 새조개 생산량은 2003년 1000t까지 늘어나더니 2010년 다시 7t까지 급감했다. 2011년에는 1t까지 줄어들더니 2012년부터는 생산량이 아예 없어 공식 통계로 ‘ZERO(0)’가 기록됐다.
전국 새조개 생산량은 매년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2010년 949t에서 2012년 426t으로 줄었다가 2014년에는 4배가 넘는 1910t까지 급증했다. 이후 2016년 293t, 2018년 194t, 2020년 439t으로 증감을 반복하는 추세다. 이로 인해 새조개 1㎏당 소비자 가격은 2017년 5만 원, 2020년 7만5000원, 지난해와 올해는 6만~7만 원 선으로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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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6일 김석환 홍성군수(가운데)와 어민들이 남당항 인근 앞바다에서 어린 새조개 50여만 마리를 방류하고 있다. [사진 충남도]
어민 "명성 되찾자" 어린 새조개 방류
천수만 어민들은 돈을 주고도 새조개를 못살 정도로 귀해지자 자치단체와 힘을 합쳤다. 이들은 우선 2017년 2월 새조개 모패(母貝) 1만4590패를 시작으로 2018년 6월에는 중성패 97만패를 천수만에 뿌렸다.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는 자체 개발한 새조개 인공부화 기술을 활용해 2019년 30만패, 지난해 7월에는 50만패를 각각 방류했다.
수산자원연구소가 지난 2~3월 천수만 5개 지점에서 잡힌 새조개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한 결과 28%가 방류한 모패와 일치했다. 방류 해역에서 1㎞ 떨어진 곳에서는 8%, 2.5㎞ 떨어진 해역에서는 4%가량 유전자가 같았다. 어민들은 “천수만에 새조개가 돌아왔다”며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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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나 모양이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새조개'. 충남 천수만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새조개가 출하되기 시작하면서 효자 해산물이 됐다. [사진 충남도]
9년 만에 '0' 탈출, 올해는 100t 기대
이런 노력의 결과 2020년 천수만에서는 새조개 25t을 채취해 9년 만에 생산량 ‘0’에서 벗어났다. 충남도는 지난해 새조개 생산량이 73t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100t을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충남수산자원연구소 남기웅 연구사는 “방류 해역의 혼획률을 볼 때 천수만 새조개 10%가량은 방류 개체라는 계산이 나온다”며 “천수만 수질을 개선하고 인공부화를 통해 치패를 방류하면 새조개 생산량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의 부리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새조개'
새조개는 남해안이나 서해 천수만 갯벌에서 서식하는 지름 7~8㎝ 크기의 조개다. 크기나 모양이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경남 지역에서 대량으로 번식에 성공하면서 황금 수입원이 됐다. ‘해방조개’라는 이름은 이때 생겼다.
새조개는 양식이 되지 않고 청정 갯벌에서만 산다. 초밥에 새조개를 올려 먹는 것을 특히 좋아하는 일본인들 때문에 잡히자마자 수출길에 올랐다. 서민들은 맛보기 어려워 ‘귀족조개’라는 이름도 붙었다. 천수만을 비롯해 전남 여수의 가막만이나 고흥 득량만 등이 새조개 주산지로 꼽힌다.
크기나 모양이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새조개'. 충남 천수만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새조개가 출하되기 시작하면서 효자 해산물이 됐다. [사진 충남도]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작합(雀蛤)’, 속명 ‘새조개’라고 기록돼 있으며 “큰 것은 지름이 4, 5치 되고 조가비는 두껍고 매끈하며, 참새의 빛깔을 지니고 그 무늬가 참새 털과 비슷하여 참새가 변하여 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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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에 '5초' 가량 담갔다가 꺼내야 제맛
식성에 따라 날것으로도 먹지만 끓는 육수에 새조개를 잠깐 담갔다가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을 최고로 친다. 살집이 크면서도 부드러워 통째로 먹으면 연하게 씹히는 맛과 식감이 일품이다.
육수는 냄비에 무와 대파·버섯·대파·마늘 등을 넣고 끓여낸다. 육수에 담갔다 꺼내는 시간은 ‘5초’가 가장 좋다고 한다. 덜 데치면 약간 비린 맛이 나고 너무 오래 담그면 육질이 질겨진다. 미식가들은 ‘살살 녹는다’는 표현 외에는 할 말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크기나 모양이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새조개'. 매년 겨울이 되면 충남 홍성 남당항에서 새조개 축제가 열린다. [사진 충남도]새조개는 단백질과 칼슘, 철분 등 영양분이 풍부하다. 빈혈과 현기증, 기억력 감퇴, 심근경색, 고혈압 예방 효과가 탁월한 ‘보양음식’이다. 저지방 식품으로 성인병 예방과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좋다고 한다. 타우린이 풍부하고 아미노산의 일종인 아르기닌 함량도 높아 간 해독과 면역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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