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대북정책, 무의미한 9ㆍ19논란

실패한 대북정책, 무의미한 9ㆍ19논란

중앙일보

 

오병상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남북정상회담 둘째날인 2018년 9월 19일 오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장에 입장한 뒤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18.09.19/뉴스1

1. 난데없이 2018년 9ㆍ19합의가 정치공방에 호출됐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이 22일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서 북한의 방사포발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이 서해상에서 올해만 11번째 (도발)했는데..(20일) 방사포(발사)는 9ㆍ19합의 위반 아닌가..이런 안보상황에 대해 빈틈 없이 챙겨달라..’

 

2. 윤석열이 언급한 9ㆍ19합의는 2018년 남북정상 평양회담 당시 합의한 ‘군사분야합의서’를 말합니다.  당시 합의서 1번 항목은 ‘남북한은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중지한다’입니다. 따라서 북한의 방사포발사는 당연히 합의위반에 해당됩니다.
이런 뻔한 얘기를 윤석열이 새삼 언급한 것은..물론 ‘청와대 이전’때문입니다. 문재인 청와대가 ‘안보상 문제’를 이유로 청와대 이전을 반대하자 ‘문재인 정부가 안보관련 얘기할 자격 있냐’고 에둘러 비판한 셈입니다.

 

3. 이런 의중을 모를리 없는 민주당은 22일 국회 국방위에서 국방장관에게 추궁했습니다.
‘북한 방사포가 9ㆍ19군사합의 파기냐?’(민주당 민홍철 의원)

‘합의를 이행하기로 한 지역은 아니다.’(서욱 장관)

서욱 답변은 ‘포를 쏘지 않기로 합의한 지역(서해 남측 덕적도와 북측 초도 사이)에 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군사합의 위반이 아니다’란 뜻입니다. 9ㆍ19합의 2항에선 구체적으로 군사분계선 5Km 인근지역을 사격ㆍ비행금지 구역으로 명시했습니다. 북한 방사포는 그보다 북쪽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협소하게 해석하자면 ‘위반 아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4. 결론적으로..북한의 방사포 발사는 합의서 정신(1항)을 위반했지만 구체적 금지지역(2항)을 벗어났기에 위반이 아닙니다.
북한을 보는 윤석열과 문재인의 시각차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의미한 정치공방입니다.

 

5. 문재인 정부 초기 남북한 합의는 휴지조각이 된 지 오래됐습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이 전격회동할 당시만 해도 파격적이었습니다. 곧바로 6월12일 싱가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문재인이 평양군중의 함성속에서 연설하던 9ㆍ19 합의 당시는 장미빛 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모두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6. 이후 문재인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받은 수모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입니다.
‘남조선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하지 말라.’(김정은, 2019년 4월)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조평통, 2019년 8ㆍ15 논평)

‘옥류관 국수 처먹을 때는 무슨 큰일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전혀 한 일도 없다’(옥류관 주방장, 2020년 6월)

 

7. 김정은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21년 1월 노동당대회에서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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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적은 미국이다. 강대강(강하게 나오면 강하게) 선대선(착하게 대하면 착하게) 원칙으로 대응하겠다. 미국은 적대시정책 철회하라.’

‘남조선 당국에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선의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화답하는만큼 상대해줘야 한다.’

 

8. 김정은은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상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남한에 대해서는 ‘일방적 선의’를 거두겠답니다. 2018년의 환대가 모두 일방적 선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정당한 요구란 본질적으로 ‘한미 군사훈련중단’‘미국무기 도입금지’입니다. 모두 미국과 직결된 군사문제입니다.

 

9. 이런 현실에서 9ㆍ19합의 위반여부를 따지는 정치공세는 허무개그 같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평양 능라도경기장의 함성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의 환청을 조롱하기보다 반면교사로 삼아 대북정책을 고민해야 합니다.

남북문제는..정치공세 소재로 삼기엔 너무 심각한 생존의 문제니까요..
〈칼럼니스트〉
202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