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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메타버스 무작정 하는 기업들

레이찰스 2022. 3. 11. 08:07

[데스크에서] 메타버스 무작정 하는 기업들

지난해 말 한 대기업에서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를 내놓으면서 기자 간담회를 자사 메타버스에서 열었다. 메타버스 간담회는 처음이었기에 기대에 부풀어 입장했다가 고개를 저으며 나왔다. 사전에 녹화한 영상을 메타버스 간담회장의 스크린에 틀어주는데, 이런 형식은 줌이나 웹엑스 같은 화상 회의 설루션이나 유튜브에서도 해왔던 것이다. 굳이 메타버스에서 할 이유가 없는 행사를 메타버스에 끼워 맞춘 것 같았다.

SKT가 지난 3일(바르셀로나 현지 기준) 막을 내린 MWC22에서 메타버스를 앞세워 글로벌 관람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사진은 이프랜드 HMD를 통해 볼류메트릭으로 구현된 K팝스타 제이미의 미니콘서트를 즐기는 모습. 2022.3.6/SK텔레콤
지난 1년간 받은 보도 자료에서 가장 많이 본 단어가 메타버스였다.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IT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 부처, 지자체, 학교까지 안 하겠다는 데가 없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현실 세계에서 이룰 수 없는 것, 예를 들면 졸업식·입학식, 여행·공연이 가상 공간으로 옮아가면서 지난해 메타버스는 인터넷 세계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학계에서도 아직 메타버스의 정의에 관해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메타버스를 제대로 구현했다고 내세울 만한 데도 없다.

메타버스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공간이 될 수 있다면 설익은 채 시작해도 괜찮을 텐데, 이조차도 의심스럽다. 코로나가 종결되면 일상 활동이 오프라인으로 돌아올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영국 여행 가서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직접 보거나 방탄소년단 공연에서 떼창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메타버스를 더 선호할까? 이런 시점을 맞이했을 때 메타버스를 어떻게 활용할지, 수익 구조는 어떻게 나오는지 제시하지도 않은 채 국내외 기업들이 우르르 메타버스에 달려들면서 오히려 메타버스 거품론만 키웠다. 메타버스의 대표 우량주로 꼽힌 로블록스와 사명(社名)을 ‘메타’로 바꾼 옛 페이스북의 주가는 올 초 지난해 실적이 나오자마자 모두 폭락했다.

신기술이 깜짝 스타처럼 등장해 신기루처럼 사라진 예는 과거에도 많았다. 90년대 말 닷컴 버블이 한창일 때, 당시 새로 생긴 기업 이름엔 ‘닷컴’이나 ‘테크’를 붙이는 게 유행이었고, 이런 회사에 사람들은 사업 내용도 모르고 뭉칫돈을 투자했다. ‘무료 인터넷 전화’ 사업을 내세운 새롬기술 주가는 1999년 8월 상장 6개월 만에 무려 150배 가까이 폭등해 시가총액이 현대자동차를 눌렀다. 당시 삼성전자는 이 회사의 서비스가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데 협력하겠다고 러브콜까지 보냈다. 하지만 과다한 확장과 사업 모델 부재로 30만원대까지 올랐던 새롬기술 주가는 5500원까지 떨어진 뒤 자취를 감췄다.

메타버스가 곧 사라질 신기루라는 게 아니다.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 콘텐츠나 수익 구조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마냥 뛰어드는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메타버스를 하겠다고 나선 기업 CEO들은 “왜 메타버스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

변희원 기자 nastyb82@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