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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현장은 지옥인데… 거리두기 완화 신호, 불에 휘발유 붓는 격”

레이찰스 2022. 2. 18. 07:54

“방역현장은 지옥인데… 거리두기 완화 신호, 불에 휘발유 붓는 격”

[오미크론 비상] 거꾸로 가는 K방역… 전문가들 강력반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과연 완화해도 되는 걸까.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방역 상황이 날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거리 두기 완화를 시사하자 전문가들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방역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다.

(왼쪽부터)이재갑 교수, 엄중식 교수, 정재훈 교수, 김윤 교수

‘방역 전문가’로 정부 방역 정책에 관여했던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 16일 정부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위원과 민주당 외부 자문위원에서 둘 다 사임했다. 그는 “소상공인·자영업자 고통 때문에 말씀드리기가 여의치 않다”면서도 “확진자 규모가 더 커지게 되면 의료 기관부터 축소 진료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되므로 거리 두기를 완화하겠다면 늘어나는 환자 관리가 가능한지부터 보여달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일 신규 확진자가 9만명대인데도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인데 확진자가 20만명 이상으로 올라가면 그땐 운영을 못 하는 병원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며 “지금은 정부가 거리 두기 완화를 고려할 때가 아니라 심각한 상황에 처한 우리 의료 체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난 15일 페이스북 글에서도 “이미 현장은 지옥”이라며 정부를 향해 “적어도 정점은 찍고 나서 거리 두기 완화를 논의해 달라”고 호소했다. 정부가 잘못된 신호를 줘 중증 환자가 늘어나 중환자 병상 등 의료 체계에 과부하가 생길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다른 글에서도 이 교수는 “늘어나는 확진자 관리도 안 돼서 격리와 통보 해제도 제대로 안 되고 있고, 상태가 나빠진 일반 관리군 환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거리 두기를 완화할 수도 있다는 사인을 주다니”라면서 답답해했다. 이 교수는 “중환자도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하는데 제발 위기를 스스로 키우지는 말자”며 정부에 신중한 대응을 당부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역시 거리 두기 완화에 대해 “일부 표현을 빌려 ‘불붙은 섶에다 휘발유를 들이붓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하지 않는다는 건 정부의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라면서 “정점에서 벗어난 다른 나라들과 달리 우리는 이제 막 스퍼트를 내며 본격적으로 정점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현재의 확산세가 정부의 섣부른 행보에서 기인했다고도 했다. 그는 “김부겸 총리가 지난주부터 방역 완화를 시사했는데 그때부터 확진자 증가에 가속도가 붙었다”며 “이러면 의료 기관의 대응이 어려워질 게 확실하기 때문에 절대 시기적으로 좋은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의 방역의료 분과 위원인 정재훈 가천대길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적절하지 않은 시점에 거리 두기를 완화해 자칫 이번 오미크론 유행이 위험하지 않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것을 경계했다. 정 교수는 “최소한 이번 주와 다음 주에는 확진자가 급증할 것”이라며 “위기를 넘기고 정점을 지나고 나면 거리 두기를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오미크론 유행이 정점을 향해 가고 있는 시점에 방역을 완화하면 증가 속도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유행을 더 급격하게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오미크론 변이가 그리 위험하지 않다거나 현 상황이 그렇게까지 위기는 아니라는 신호도 줄 수 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적어도 정점은 지나고 나서 우리 의료 체계가 이 질병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지 확인할 때까지는 주의가 필요하다”며 “그전까지는 우리 사회가 중환자들을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거리 두기를 완화해도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없다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에서 포용복지국가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거리 두기를 완화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확진자 5만명일 때 중환자가 400명 발생했으니 확진자가 10만명 되면 중환자는 800명 정도로 예상할 수 있다”면서 “현재 확보된 중환자 병상 수가 2500개이기 때문에 거리 두기를 완화해도 우리 의료체계가 감당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급성심근경색·투석 환자 등 비코로나 환자도 원하면 언제든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정부가 의료 현장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김경은 기자 eu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