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 남탓하며 사퇴... 장준하 장남 “그의 그릇에 어울리는 입장문”
공금 횡령 혐의로 퇴진… 광복회 57년 사상 처음
金 “사람 잘못봤다” 끝까지 남탓, 회원들 “희생양이라 주장 씁쓸”
임기 2년반동안 분열·폭력 점철… 광복절마다 연설로 나라 두동강
16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앞에서 열린 김원웅 광복회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시민단체 ‘자유대한호국단’ 관계자가 김 회장 사퇴를 촉구하는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장련성 기자
광복회 공금 횡령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원웅(78) 광복회장이 16일 사퇴했다. 취임 2년 8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광복회장이 개인 비리에 연루돼 자진 사퇴하기는 1965년 광복회 창립 후 57년 만에 처음이다.
김 회장은 이날 보도 자료를 통해 “회원 여러분의 자존심과 광복회의 명예에 누를 끼친 것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의 사태에 대해 부끄럽고 민망하다”며 “사람을 볼 줄 몰랐고 감독·관리를 잘못해서 이런 불상사가 생긴 것, 전적으로 제 불찰”이라고 했다.
TV조선은 지난달 25일 광복회 전직 간부를 인용, 김 회장이 지난 1년간 독립 유공자 후손 장학금 조성을 위해 운영해온 국회 카페 수익금을 유용했다고 보도했다. 김 회장의 ‘가족 회사’가 광복회관에 몰래 사무실을 차려두고 공공 기관들을 상대로 영업 활동을 벌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런 내용은 국가보훈처 감사 결과 대부분 사실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김 회장은 ‘사람 볼 줄 몰랐다’며 본인 횡령 혐의는 부인하고 제보자 탓을 했다.
김 회장은 의혹을 보도한 언론에도 화살을 돌렸다. 그는 “저는 반평생을 친일 청산에 앞장서 왔다”며 “친일 반민족 언론 조선일보와 대척점에 서서 싸워왔다. 그 조선일보, TV조선에 의해 제가 무너지는 것이 더 가슴 아프다”고 했다.
장준하 선생 장남인 장호권 전 광복회 서울지부장은 본지와 통화해서 “자신이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이 씁쓸하다”며 “국민 통합의 구심점이 돼야 할 광복회장으로서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를 내주기를 바랐는데, 마지막까지 나라를 두 쪽 내는 분열적 언사를 늘어놨다”고 했다. 장 전 지부장은 “김 회장의 그릇에 어울리는 사퇴 입장문”이라고도 했다.
당초 광복회는 오는 18일 임시총회를 열고 김 회장 해임안을 의결할 방침이었다. 김 회장은 보훈처 감사 결과 발표 직후만 해도 “명백한 명예훼손”이라며 사퇴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대의원 대부분이 해임안에 찬성할 것으로 예측되자 자발 퇴진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광복회 역사상 최초로 탄핵당하는 오명은 피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3월 대선을 앞두고 여권(與圈)에서도 김 회장이 부담스럽다는 기류가 감지됐다.
김 회장 재임 기간의 광복회는 분열과 폭력·비리로 점철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회장은 2020년 광복절 75주년 기념사에서 “이승만은 친일파와 결탁했고 안익태는 민족 반역자”라는 주장을 했다. 김 회장은 백선엽 장군 등을 겨냥, 이른바 ‘친일 파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듬해 광복절 기념사에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지목하며 정부 정통성을 부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광복절 때마다 김 회장 연설로 나라가 두 동강이 났다”고 했다. 그런데도 김 회장은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 “백선엽은 사형감” “박근혜보다 김정은이 낫다” “차기 대통령은 빨갱이 소리를 듣는 사람이 돼야” 같은 문제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김 회장은 취임 후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기리는 ‘최재형상’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독립군 대상’을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에게 줬다. 각종 상을 신설해 여권 인사 수십 명에게 남발하며 광복회의 정치적 중립을 해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일부 광복회원은 지난해부터 김 회장 사퇴를 요구하며 반발했고, 지난해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에서 한 독립 유공자 후손이 김 회장 멱살을 잡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런 가운데 김 회장은 부모의 ‘가짜 광복군’ 의혹마저 제기되자 사실상 ‘직무 불능’ 상태에 빠졌다. 부친 김근수(1912~1992)씨와 모친 전월선(1923~2009)씨의 독립운동 공적 심사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논란이었다. 보훈처는 지난해 7월 김 회장 부모의 공적 기록에 행정 오류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기존 서훈을 취소할 근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김근수씨 경력이 교차 검증이 되지 않았다거나, 모친이 활동명으로 썼다는 ‘전월순’이라는 별개 인물이 실존했다는 등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논란으로 광복회가 연일 시끄러운 상황에서 김 회장은 국회 카페 수익금을 자기 계좌로 빼돌려 7000여만원 규모 비자금을 조성하고 무허가 마사지 업소를 드나들었다.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 가족 회사 사무실을 차려 놓고 광복회 명의 공문을 사용했다. 이날 김 회장 사퇴 직후 보훈처는 “지도·감독 기관으로서 유감”이라며 “광복회가 조속히 정상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회장 직무 대행 체제에 들어간 광복회는 오는 5월 중 신임 회장을 선출할 계획이다.
1972년 공화당 사무처 공채로 정계에 입문한 김 회장은 전두환 정권의 민주정의당에서 조직국 부국장, 청년국장을 지냈다. 이후 여야를 오가며 14·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회장은 자신의 공화당 이력에 대해 2020년 8월 한 인터뷰에서 “생계형이었다”고 했다.
원선우 기자 s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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