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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북송’ 수사 100일… 녹음파일 속 그날의 ‘비밀’

레이찰스 2022. 10. 10. 06:44

강제북송’ 수사 100일… 녹음파일 속 그날의 ‘비밀’

정의용 소환 임박… 나포~추방 5일 베일 풀었나
檢 “법률적 근거 없다” 종합 판단
기소땐 탈북어민 법적 지위 수면위

 

2019 11월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할 때 1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통일부 제공
한국전쟁 이후 판문점으로 북한 주민을 처음 추방한 2019년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수사가 오는 13일 국가정보원 고발 100일을 맞는다.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까지 동반한 검찰 수사는 고발 내용 이상으로 진척됐고,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주요 피의자 출석도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간 법률적 근거가 없는 북송 조치가 이뤄졌는지, 합동조사가 끝나기 이전부터 사실상 추방 방침이 정해졌는지 살펴 왔다.

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이준범)는 지난달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을 수차례 조사한 뒤 서훈 전 국정원장, 정 전 실장 등 북송 조치에 관여한 주요 인사들의 조사를 앞두고 있다. 검찰은 당시 정부합동조사를 담당했던 실무자와 국정원 간부들의 통화 내용을 포함한 녹음파일 다수를 확보해 20대 탈북어민 2명의 나포부터 추방까지 과정을 상당 부분 복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진술과 자료를 종합한 검찰의 판단은 강제북송 조치의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며, ‘윗선’ 진술을 청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제북송 조치에 절차적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는 정부합동조사가 과연 정상적으로 완료됐는지와 연관돼 있다. 국정원 고발 내용 가운데에는 서 전 원장이 합동조사 기간 중 “흉악범을 받아들여서야 되겠느냐”는 취지로 주변에 말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심문과 호송 등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들은 조사 종료에 대해 “매우 허탈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실 1차장이 문자메시지로 어민들의 북송 결정 사실을 보고받는 장면이 포착됐을 때부터, 법조계에서는 나포부터 추방까지 단 5일이 소요된 것은 유례없는 속전속결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검찰은 일부 인사에게는 방어권을 돕는 차원에서 국정원의 고발 내용을 전달했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정 전 실장의 경우 국회 정보위원회에 제출할 보고서에 어민들의 귀순 의지와 관계된 ‘남하’ ‘자필’ 등 표현을 삭제토록 지시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도 나왔다. 다만 이는 검찰이 확인하진 못한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국회 제출 보고서 마련 과정에 누가 어떠한 의견을 첨언했는지 단계별로 살피고 있다.

북송이 근거 없는 추방이었는지 정당한 퇴거였는지에 대해서는 어민들의 법적 지위를 중심으로 여전히 시각 차이가 있다. “처음부터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을 안 했다”는 정 전 실장 등은 이번 사건을 ‘흉악범 강제퇴거 사건’이라 부른다. 어민 2명은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었고, ‘귀순 진정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검찰은 “대한민국 국민을 북송할 수 있다는 법률은 없다” “우리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려면 법률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어민들의 판문점 북송 당시 태도를 보더라도 최소 ‘귀북 의사’는 없는 우리 국민이었다는 얘기다.

법조계는 이번 사건 기소가 이뤄진다면 법원이 탈북어민들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부터 판단하게 될 것이라 본다. 대법원은 북한법에 의해 북한 국적을 취득하고 중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해외공민증을 발급받아 입국한 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 판단한 바 있다. 법조계 고위 관계자는 “당시 탈북어민 퇴거 조치가 정당하다고 말하려면 북한 주민을 우리 국민이 아닌 외국인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이는 헌법적 문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