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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17) 컨테이너에서 지내며 발사대 개발한 현대중공업

레이찰스 2022. 9. 6. 12:59

[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17) 컨테이너에서 지내며 발사대 개발한 현대중공업

나로우주센터(고흥) = 고재원 기자
전남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 기립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를 우주로 쏘아 올린 발사대 개발 주역 현대중공업이 우주 발사체 발사대 사업에 박차를 가한다.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 새롭게 구축될 고체연료 발사대는 물론 적도 부근에서 발사하는 해상 발사대 관련 연구개발(R&D)을 진행한다.

지난달 24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만난 한상용 현대중공업 누리호발사대시스템제작및구축현장소 소장은 “해상 발사대는 현대중공업 입장에서 새로운 도전”이라며 “해상 발사대 관련 기초자료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상 발사대는 배를 이용해 해상에서 우주 발사체를 우주로 쏘아 올리는 발사대다. 보통 두대의 선박으로 구성되는데 한 대는 발사통제센터 역할, 다른 한대는 우주 발사체를 쏘아 올리는 실제 발사대 역할을 한다. 

해상 발사대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 절감이다. 해상 발사대는 보통 적도 부근에 위치한다. 적도 부근에서는 우주 발사체 엔진에 필요한 추진제를 적게 쓸 수 있다. 추진제를 적게 쓰는 만큼 비용이 줄어드는 것이다. 다만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 상황이나 염분으로 인한 기체 부식 등의 문제가 단점으로 꼽힌다.  

해상 발사대가 이전에 없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부터 2014년까지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노르웨이가 합작해 세운 시런치란 회사가 해상에서 우주 발사체를 발사한 바 있다. 지난 2019년에는 중국 위성운반로켓 창정 11호가 해상 발사대에서, 최근에는 스페이스X가 해상 발사대를 이용해 지구 내 이동에 발사체를 활용한다는 계획을 소개하기도 했다.

시런치가 운영한 해상 발사대. 시런치 제공

한 소장은 “커지고 있는 우주 시장의 여러 발사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향후 해상 발사대가 필요하다”며 “적도 근처 해외 지역의 땅을 빌리는 것보다 해상 발사대를 개발하고 발사체를 쏘는 게 한국에 더 현실적 방안”이라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건설을 계획 중인 고체연료 발사대 개발도 준비 중이다. 고체연료 발사대는 나로우주센터 내 기존 제1발사대를 철거하고 짓는 것으로 다양한 민간 기업이 소형발사체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민간 발사장 형태다. 2024년까지는 고체발사체를 지원하고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진행되는 2단계에서는 액체 발사체까지 지원하는 내용으로 현재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치고 있다. 오는 10~11월 중 결과가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우주 발사체 발사대 개발과 건설에 있어 국내 유일무이한 기업이다. 누리호를 쏘아 올린 나로우주센터의 제2발사대는 물론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의 발사대도 만들어 냈다. 

한상용 현대중공업 누리호발사대시스템제작및구축현장소 소장. 고흥=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현대중공업이 처음 발사대 사업에 참여하게 된 건 한국 조선 공업의 대부로 불리는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 때문이다. 한 소장은 “2004년 경 러시아와 나로호 기술 협정을 맺으며 발사대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당시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민 회장에게 발사대 건설을 요청해왔다”며 “회장이 이를 수락했고 발사대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소장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기존에 개발해오던 발전소나 장치 공장, 석유화학 공장과 발사대 설계가 유사한 점이 있다. 한 소장은 “발사대는 발사체 발사 순간 수백t의 압력이나 몇 천도에 이르는 화염 온도 견뎌야 하는 등 기술과 선박에서 제어실을 만드는 것과 같은 토목 및 조선 기술이 집약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 발사대는 한 척의 배처럼 매우 복잡하게 설계돼 있다. 발사대 지상기계설비(MGSE), 발사대 추진제공급설비(FGSE), 발사대 발사관제설비(EGSE) 등으로 구성돼 지상에 드러난 설비들 외에도 지하에 여러 시설들이 위치해 있다. 지하에 마련된 각 방들이 제2발사대의 핵심으로 꼽히는 지상고정장치(VHD)나 자동운용시스템 등 관련 각자의 기능을 한다. 전자기기들의 오류를 막기 위해 지하 내부 온도도 항상 24도 정도로 유지해야 한다. 정직수 누리호발사대시스템제작및구축현장 공무팀장은 “온통 보안이 걸려 있는 비밀 장소”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발사대 기반시설 공사부터 시작해 발사대시스템 전반을 독자 기술로 설계하고 제작, 설치, 발사 운용까지 수행했다. 한 소장은 “발사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며 “나로호 때는 아무 것도 몰라 외국의 발사대 동영상을 보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설계를 끝내고 항우연과의 검증이 끝난 후 실험했지만 막상 목표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며 “주변 환경도 매우 열악했다. 컨테이너 사무실을 차려 지냈고 화장실도 없어 주변 풀숲은 오물 때문에 지뢰밭과 같았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나로우주센터 내 상주 중인 현대중공업과 협력사 직원들. 고흥=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지금은 나로우주센터 내 번듯한 사무실 공간도 마련됐다. 현대중공업 직원 12명, 협력사 직원 30명 정도를 포함해 약 40~45명이 여기에 상주 중이다. 한 소장은 “가족과 같은 직원들”이라며 “이번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으로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도 형성돼 뭐든 해낼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이번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에 대해 “그간의 어려움에 대한 보상을 받은 듯하다”며 “같이 협력했던 항우연 연구진, 협력사에 감사함과 함께 더 열심히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국가적 책무를 느낀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책무로만 우주산업이 성장할 수 없다고 한 소장은 강조했다. 한 소장은 “현대중공업의 지난 7년 간 우주관련 매출이 약 1300억원인데 배 1척을 팔면 2000억원”이라며 “결국 국가적 책무보다는 어느 시점이 되면 경제성 논리가 절대적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소장은 “차라리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와 같은 인물이 국내에서 나타나길 희망한다”며 “새로운 경제 논리를 만들만 한 인물의 등장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나로우주센터의 발사대는 색상이 모두 초록색이다. 러시아가 발사대에 사용하는 색상을 동일하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장은 “새롭게 구축될 발사대의 색깔을 좀 멋있는 걸로 해보면 어떨까 생각 하고 있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로우주센터(고흥) = 고재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