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
높이 80m 소련 승전탑 ‘쿵’… 철거한 라트비아, 아픈 역사 지웠다
레이찰스
2022. 8. 27. 06:29
높이 80m 소련 승전탑 ‘쿵’… 철거한 라트비아, 아픈 역사 지웠다

25일(현지 시각)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 설치돼 있던 옛 소련시대 승전기념탑이 철거됐다. / 라트비아 국립도서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라트비아가 구 소련 시절 건립된 80m짜리 승전기념탑을 철거했다.
25일(현지 시각) AP통신에 따르면, 라트비아 수도 리가 당국은 이날 빅토리아파크에 세워져 있던 소련 시절 오벨리스크(방첨탑)를 해체했다. 높이 약 80m의 이 탑은 공원 연못 방향으로 쓰러졌다. 철거 충격으로 연못에는 큰 물보라가 일었다. 이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본 시민들은 환호했다. 현지 방송사도 이 과정을 생중계했다. 시 당국은 철거 3일 전부터 공원 인근 도로를 폐쇄하고 드론(무인기) 비행 금지령 등을 내렸다고 한다.
해당 조형물은 제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상대로 소련 붉은 군대가 승리한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1985년 세워진 것이다. 높이가 다른 5개의 첨탑이 붙어있고 탑 위에는 소련을 상징하는 별 3개가 달린 형태다. 방첨탑 양옆에는 조국을 상징하는 여성상과 소련 붉은 군대 병사를 형상화한 동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 동상들도 철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과거 소련 지배를 받았던 기억 때문에 반러 정서가 강한 곳이다. 발트 3국은 1991년 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후 2004년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가입했다.

1985년 옛 소련시절 라트비아 수도 리가의 빅토리파크에 설치된 높이 80m의 승전기념탑. 지난 2월 공원의 모습이다. / AP 연합뉴스

25일(현지시각) 라트비아 리가에 설치됐던 소련 시절 승전기념탑이 해체되는 모습 / 리가 경찰
그간 라트비아에선 승전탑 존속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 특히 러시아 전승절이 다가올 때면 이 탑 앞에는 헌화하려는 이들로 붐볐다. 이 때문에 소련 점령기 동안 라트비아가 겪었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반면 라트비아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은 승전탑 철거를 반대해왔다. 논쟁 끝에 라트비아 의회는 지난 5월 승전탑 철거안을 통과시켰다. 라트비아 외무장관은 트위터에 “이로써 고통스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닫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게 됐다”고 적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동구권에서는 소련 지우기가 이어지고 있다. 전날(24일) 폴란드 남부도시 브제그에선 소련 붉은 군대 기념비가 해체됐다. 에스토니아는 지난주 러시아 국경 도시에 있었던 소련 승전 기념물들을 철거했다. 이 가운데 탱크 모형은 전쟁박물관으로 옮겼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최혜승 기자 hsc@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