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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카 싸다고 덜컥 구입?… ‘도로 위 시한폭탄’ 사는 겁니다
레이찰스
2022. 8. 21. 09:00
수퍼카 싸다고 덜컥 구입?… ‘도로 위 시한폭탄’ 사는 겁니다
폭우에 쏟아진 침수차
중고차 사기 피하려면
“5000만원짜리 쓰레기를 샀다.”
최근 한 50대 남성이 침수차 구입 피해를 봤다며 한국소비자원에 남긴 신고 글이다. 이 남성은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일본 고급 차 메이커의 중고 세단을 구입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엔진 이상을 발견했다. 정비소에서 점검을 받았더니 침수차 판정을 받았다. 고객은 자신에게 중고차를 판매한 딜러에게 항의했지만 “나도 침수 사실이 있는 줄 몰랐다”는 황당한 답을 들어야 했다. 보상을 받기는커녕, 자비로 폐차해야 하는 상황. 서울 장안동에서 자동차 공업사를 운영하는 20년 경력 한 정비사는 “별다른 사고 없이 침수차인 것을 알게 된 건 그나마 운이 좋은 케이스”라며 “침수차를 끌고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 넘게 질주하다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거나 급발진해 크게 다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에 ‘침수차 주의보’가 떨어졌다. 지난 8일 서울 강남을 비롯해 하루 30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로 전국에서 침수 차량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 침수차들이 2~3개월 수리 기간을 거쳐 시장에 풀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 침수차가 멀쩡한 중고차로 둔갑해 중고 시장에 팔리는 문제는 매년 장마·태풍이 거쳐간 이후 반복되는 일이지만 올해는 20년 만에 최대 침수 피해가 발생하면서 중고차 판매 사기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침수차 허위 매물은 어떻게 정부 단속을 피해 중고 시장에 팔리고, 이런 차를 모르고 구입해 탈 경우 문제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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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과천의 서울대공원 공영주차장에서 DB손해보험 직원이 침수차의 엔진을 점검하고 있다. 최근 폭우로 망가진 침수차들이 중고차 시장에 대거 쏟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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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
“침수 수퍼카 중고 시장에 쏟아진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이번 폭우로 발생한 침수차 1만대 상당수가 중고차로 판매될 것이라는 우려는 과장된 면이 있지만 분명 있을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보험사로부터 전손(보험 가액보다 수리비가 더 많이 나옴) 처리된 침수차는 의무적으로 폐차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침수차 상당수는 중고차 시장에 흘러갈 가능성이 원천 차단되고 있다”며 “문제는 자기 차량 손해담보(자차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차량의 경우 폐차 의무가 없어 정부 감시를 피해 중고차로 팔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차 보험이 없는 침수 차량은 보험사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상당수 차주가 손해를 줄이기 위해 헐값에 중고차 거래 업체, 딜러에게 차를 넘기는 경우가 많다. 침수차를 싸게 매입한 중고차 업체는 경기도 외곽에 있는 전손 차량 전문 수리 공업사를 통해 2~3개월에 걸쳐 세척, 수리 과정을 거친 뒤 시장에 멀쩡한 중고차인 것처럼 내놓는다. 자차 보험이 없는 차는 중고 거래 시 침수 이력 조회도 어렵다. 한 손보 업계 관계자는 “자차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차량이 전체의 30%가량”이라며 “산술적으로 이번 침수 피해로 최소 2000~3000대는 별다른 제재 없이 중고 시장에서 되팔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올해는 부유층이 밀집한 서울 강남이 침수 직격탄을 맞으면서 고급 외제차 침수 피해가 2500대가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가 수입차는 보험료가 높다 보니 차주가 자차 보험에 들지 않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한다. 법망을 피해 침수차가 중고 시장에 나오기 쉬운 것. 실제 한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한 이용자가 6억원이 넘는 람보르기니 차량이 침수됐다며 100만원에 팔겠다고 매물로 내놨다. 고급 외제차일수록 중고차 시장에서 인기도 좋아 침수된 외제차만 싼 가격에 사들여 판매하는 전문 업체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급 세단의 경우 대당 2000만~3000만원의 이윤을 남길 수 있다고 한다. 한 15년 차 중고차 딜러는 “싼값에 외제차를 마련하려는 사회 초년생, 젊은층의 경우 안전 여부를 따지지 않고 가격만 보고 침수 가능성이 있는 중고차를 구입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들을 노리는 업체들이 최근 크게 늘었다”고 했다.
차 바닥만 침수돼도 급발진·시동 꺼짐 위험↑
차량 일부만 침수되더라도 내부를 세척하고,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면 달리는 데는 문제가 없을까. 전문가들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외관상 멀쩡해 보여도 한번 침수된 차는 정상적 주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DB손해보험 조성진 차량손해사정사는 “10년 먼지 쌓인 차는 사도, 10초라도 침수된 차는 사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침수차는 심각한 안전 결함을 안고 있다”며 “주행 중 침수돼 엔진에 물이 유입된 차는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차량 내부 전기 계통 부품이다. 자동차 부품 중 전기 전자 부품이 40%가 넘는데 이들 상당수는 차량 바닥의 매트 아래에 깔려 있다. 타이어 절반 높이만 침수돼도 차량 바닥이 모두 물에 잠겨 전자 장치 상당수가 망가진다. 사람의 두뇌에 해당하는 ECU(전자제어장치)는 엔진의 연료 분사량을 조절하는데 이 부품이 침수되면 급발진하거나 주행 중 갑자기 시동이 꺼질 수 있다. 이호근 교수는 “침수차는 핸들이 갑자기 잠기거나 브레이크 오작동이 일어날 수 있어 그 자체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달리는 것”이라며 “다른 차량에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했다.
곰팡이 냄새, 안전벨트부터 확인하라
중고차를 구입할 때 침수차를 가려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차량 내부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침수차 상당수는 오수가 뒤섞인 흙탕물에 장시간 잠겼기 때문에 문을 열면 퀴퀴한 곰팡이 냄새나 생선 비린내가 난다. 한 달 넘게 세척, 건조 과정을 거쳐 내부 악취를 없앴다 해도 에어컨을 틀어 악취가 날 경우 의심할 필요가 있다. 또 차량 매트를 들어 바닥이 젖어 있거나 흙먼지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모든 안전벨트를 끝까지 당겨봐서 진흙이 묻었는지 보는 것도 침수차 분별 방법. 시트나 매트와 달리 벨트의 섬유는 상대적으로 촘촘한 조직이기 때문에 세척해도 얼룩이 남는다. 최근엔 아예 침수차의 벨트를 통째로 새것으로 교체하는 경우도 있는데 벨트 밑단에 인쇄된 제조 일자와 자동차 연식을 비교해 차이가 날 경우 침수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더 따져봐야 한다. 매트 아래 전선 배선이나 엔진 주변에 하얗게 부식된 흔적이나 녹이 슨 부분도 침수의 결정적 증거다.
전문가들은 중고차 거래 시 공식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개인 간 거래보다 정식 업체를 통해 구입할 것을 권한다. 보험개발원이 운영하는 자동차 이력 정보 서비스 ‘카히스토리’에 차량 번호를 입력하면 누구나 무료로 침수 여부를 조회할 수 있다. 또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자동차민원 대국민포털’에서 자동차등록원부를 열람해 최초 차량 등록지가 최근 1, 2년 내 침수 지역에 해당할 경우 일단 구입을 피해야 한다. 중고차를 판매하는 곳과 차량 등록지가 거리상 먼 경우도 의심해야 한다. 중고차 거래는 대부분 첫 등록 지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김대휘 케이카 품질관리팀장은 “차량 문 부분의 고무 몰딩이나 차의 두꺼비집에 해당하는 퓨즈 박스는 침수가 아니라면 흙먼지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까지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며 “중고 거래 계약서를 작성할 때 판매 업체에 ‘사고(침수 포함) 사실이 나중에라도 밝혀지면 배상한다’는 내용을 특약 사항으로 넣어줄 것도 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인준 기자 pe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