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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고인돌 훼손, 민주 '전'시장 때인데 국힘 '현'시장이 왜 고발됐나[팩트체크]

레이찰스 2022. 8. 21. 06:44

김해 고인돌 훼손, 민주 '전'시장 때인데 국힘 '현'시장이 왜 고발됐나[팩트체크]

유동주 기자 
[팩트체크]
허성곤 전 김해시장(왼쪽)이 구산동 지석묘 발굴조사 현장을 찾아 지석묘 아래를 살펴보고 있다.2021.07./사진제공=김해시


문화재청이 세계 최대 크기 고인돌로 추정되는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에 대한 '훼손'을 이유로 '김해시장'을 고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7일 문화재청은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매장문화재법)' 위반 혐의로 '김해시장'을 김해중부경찰서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고발 소식이 알려지자 '올 7월에 취임해 고인돌 정비사업과 관련없는 홍태용 현 시장이 고발당했다'는 취지의 보도가 이어졌다. '홍 시장이 취임 50여일만에 피고발인 신세가 됐다'는 등의 보도도 있었다. 홍 시장이 김해시 대표자로 형사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등의 보도도 쏟아졌다.

하지만 법률전문가들에 따르면 홍 시장이 이번 지석묘 사건으로 매장문화재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은 가능성은 매우 낮다. 홍 시장이 매장문화재법 위반 행위를 지시했거나 문제가 된 정비사업을 현장에서 실행한 사람에 해당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수사를 거쳐 법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기소돼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허성곤 전 시장과 정비사업의 결재라인에 있었던 김해시청 간부들과 실제 훼손 행위를 한 업체 관련자들이다.

"현 시장은 처벌 가능성 낮아…전 시장, 관련 공무원들과 정비업체 관계자들이 처벌 대상 될 것"


행정법 분야 전문가인 조하늘 변호사(법무법인 이보)는 "문화재청은 지석묘에 대한 매장문화재법 위반 행위가 김해시의 정비사업으로 발생한 점을 이유로 김해시에 대한 법적 조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형사처벌을 구하는 고발장에 '김해시장'을 적은 것은 지자체 대표자를 명시한 것일 뿐 '현 김해시장'을 처벌해달라는 취지는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도 조 변호사의 설명과 비슷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피고발인에 현 시장이나 전 시장의 이름이 써 있지 않다"며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는 절차상 불법행위를 한 지자체에 대해 수사를 해달라는 의미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전·현 시장 두명 중 한 명을 특정해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고발도 아니라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고발장을 접수한 경찰도 '김해시장'이라는 개인을 특정해 수사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필우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고발장에 '김해시장'이 적혀 있더라도 문화재청의 고발 취지는 위법한 정비사업이 행해진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을 찾아달라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수사기관은 관련 공무원이나 업체 관련자들을 참고인으로 먼저 소환해 수사하는 방식으로 시작하면서 전·현 시장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면 수사대상에 올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2년 2월경 김해 구산동 지석묘 모습. 이미 지석묘 주변과 아래가 훼손돼 있다. /사진=김해시


이 변호사는 "수사를 마쳐야 기소여부가 결정되겠지만 만약 기소까지 가고 재판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현 시장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전 시장 체제에서 이뤄졌던 정비사업이라면 실제 현장에서 실행을 한 행위자들과 그 행위를 하게 만든 지시를 내린 공무원들이 처벌 대상이 될 것이고, 전 시장도 그 안에 포함될 지는 수사 결과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7일 문화재청에서 밝혔듯 이번 사건은 매장문화재법 제31조 제2항 위반에 해당된다. 해당 조항엔 "이미 확인되었거나 발굴 중인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의 현상을 변경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매장문화재를 허가없이 현상 변경한 것도 '도굴죄'에 버금가는 불법행위로 처벌돼"


법에 대한 무지로 문화재 정비사업을 한다면서 고인돌 아래 받침돌(박석)을 뽑아 인공적으로 재정비하고 그 아래 지층을 굴착기로 팠던 이번 사건의 문제 행위에 대해 가볍게 여길 수도 있지만, 현행 법률에 따르면 '허가없이 몰래 문화재를 발굴'하는 '도굴죄'에 버금가는 범죄인 셈이라는 게 법률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정문화재'를 도굴하는 행위는 제31조 제1항의 도굴죄에 해당돼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유기징역'으로 법정형 자체가 '중형'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법정형도 제31조 제2항에 규정된 바와 같이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꽤 무겁다.

이번 사건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홍 시장은 지난 11일 시청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문재인 정부 시절 벌어졌던 일"이라며 거리를 두면서도 "김해시가 세계 최대 고인돌 정비 사업을 하면서 고인돌 주변 박석의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절차에 관심을 덜 가졌고 무지했다. 시정 책임자로서 죄송하다"고 사과에 나섰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7월부터 시장직을 맡은 의사출신 홍 시장은 고인돌 주변 정비사업과 직접 관련이 거의 없다.

2007년 발굴 당시 그대로 묻어뒀던 지석묘 복원해 유적공원 조성하려 했던 허성곤 전 시장

 


2018년 역사자원 활용과 유적공원 조성을 위해서라며 복원·정비사업을 결정한 것은 2016년 4월부터 시장직을 맡았던 전임 허 시장이었다. 허 전 시장은 토목직 9급 출신으로 1급(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까지 올라 지역 공무원 사회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알려졌다.

허 전 시장은 올해 6월 지방선거 직전인 2월9일 지석묘를 문화재청에 국가 사적으로 신청하는 자리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지석묘 정비사업에 공을 들였다.

지석묘는 김해 구산동 연지공원 맞은 편에 묻혀 있었다. 2007년 구산동 택지개발지구 공사 당시 땅속에서 발견됐고 길이 10m에 너비 4.5m, 무게 350t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로 알려졌다.

발견 당시엔 지석묘를 노출시킬 경우 훼손 등이 우려돼 발견 지점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한 뒤, 땅속에 그대로 매립했다.
그러다 2018년 허 전 시장 시절 땅속에 보존돼 있던 지석묘를 노출시키고 원형을 복원하는 것을 골자로 유적공원 조성계획이 추진됐다.

허성곤(오른쪽에서 두번째) 전 시장 등 김해시 관계자들이 2022년 2월8일 문화재청을 방문해 지석묘 발굴 지역 등 현안에 따른 국비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사진=김해시 제공


허 전 시장은 올해 지방선거 직전인 2월에도 문화재청을 방문해 지석묘 일원에 조성 예정인 디지털 가야역사문화공원 조성(75억원)과 가야유적발굴체험관 건립(69억3000만원) 등을 위한 국비를 요청하기도 했다. 가야유적발굴체험관 건립은 시장 재임기간 중 '가야왕도 김해'를 브랜드로 내세웠던 허 전 시장이 올해 지방선거에서 내놓은 주요 공약 중 하나이기도 했다.

김해시는 사업비 16억원을 들여 지난 2020년 12월부터 파묻혀 있던 상석 주변을 파기 시작해 2021년 3월까지 본격적인 시굴조사를 거쳐 5월 발굴조사에 착수해 7월 완료했다. 지석묘 아래에선 목관묘 1기와 토기 2점이 출토됐다.

올초까지만 해도 김해시가 밝혔던 지석묘 일원 정비사업의 종료시점은 올해 6월이었으나 8월 중 완공예정으로 바뀐 상태에서 이번 사건이 터졌다. 6·1 지방선거에서 홍 시장은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재선을 하고 삼선에 도전했던 허 전 시장을 꺾고 당선됐다.

한편 경남경찰청은 문화재청에 의해 김해중부경찰서에 접수된 이번 고발사건을 19일 이첩받아 직접 수사에 나서고 있다. 전국적으로 관심도가 높은 중요 사건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말 김해시가 문화재청에 신청했던 국가사적 지정을 위한 사전 조사를 위해 현장에 갔던 문화재위원들이 지석묘가 이미 훼손된 상황임을 목격했다. 문화재위원들에 의해 즉시 문화재청에 신고가 됐고 8월 초 긴급 조사 결과, 상석 아래 박혀 있던 박석이 대부분 뽑혀 정비업체에 의해 인공적인 세척 과정을 거치면서 훼손됐단 점이 확인됐다. 아울러 주변부 '문화층'(文化層·특정 시대 문화 양상을 알 수 있는 지층) 상당 부분이 굴착기에 의해 파괴되는 등 유실된 점도 밝혀졌다.

김해 구산동 지석묘 유적공원 조성 상상도/그림=김해시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