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에게 ‘무제한 뷔페’ 차려줬다,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애니멀피플] 범보다 사람에 가까운 곰, 고단백 식단 안 맞아
북극곰, 고기보다 지방 선호…회색곰, 연어 먹다 베리 섭취
느림보곰은 ‘개미 맛’ 아보카도 탐식, 판다도 잎보다 줄기
고단백 먹이로 콩팥·간 질환 앓다 수명 10∼20년 단축
조상이 육식동물이지만 잡식으로 진화, 자연 먹이에 맞춰야
콜럼버스 동물원에서 북극곰에게 고기와 지방 덩어리를 놓고 어느 것을 먹는지 실험했더니 예상과 달리 둘을 비슷한 비율로 골랐다. 데본 세이브, 콜럼버스 동물원 제공.
곰은 늑대나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고기를 먹고 사는 식육목에 속한다. 그러나 동물원에서 고기 위주의 먹이를 주면 콩팥 질환 등으로 곰의 수명이 10∼20년 단축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찰스 로빈스 미국 워싱턴주립대 교수 등은 육식을 주로 하는 북극곰과 회색곰에 이어 초식성인 자이언트판다와 개미를 주로 먹는 느림보곰의 먹이를 분석해 “곰은 사람처럼 잡식성이어서 동물원에서 흔히 주는 것보다 단백질을 훨씬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자이언트판다는 단백질이 풍부한 대나무 잎보다 탄수화물이 많은 줄기를 선호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연구자들은 미국 내 여러 동물원에서 여러 형태의 먹이를 무제한으로 주고 자이언트판다와 느림보곰이 어떤 먹이를 선호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자이언트판다는 대나무가 주식이지만 단백질이 많이 든 잎보다 탄수화물이 풍부한 줄기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다가 식사할 때 보면 잎은 거의 먹지 않는다.
힘들기로 유명한 자이언트판다의 번식에 성공한 중국 동물원 5곳에서 준 먹이의 영양가를 분석했더니 탄수화물 63%, 단백질 19%, 지방 18%로 저단백질 식단이었다.
자이언트판다가 저단백질 고탄수화물 먹이를 좋아한다면 느림보곰은 저단백질 고지방 먹이를 선호한다. 느림보곰에게 ‘무제한 밥상’을 차려 놓고 실험했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동물원에 ‘무제한 밥상’을 차려 놓은 실험(a)에서 느림보곰은 지방이 풍부한 아보카도는 거의 먹고 삶은 얌은 조금 건드렸지만 사과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동물원에서는 주로 과일을 먹이로 준다. 트래비스 바인야드 제공.
식탁에 올린 지방이 풍부한 아보카도는 88%나 먹었지만 고구마와 비슷한 삶은 얌은 12%만 먹었고 사과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연구자들은 이런 식성은 야생의 식단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인도아대륙에 사는 느림보곰의 먹이는 대부분 개미와 흰개미 성체나 알, 애벌레로 지방이 풍부하다.
로빈스 교수는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곰은 엄밀한 의미에서 고양이처럼 다량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육식동물이 아니”라며 “동물원에선 북극곰이든 느림보곰이든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육식동물 취급을 하는데, 그건 곰을 서서히 죽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곰의 조상은 육식동물이었지만 오래전 잡식종물로 진화했다. 육식동물이란 선입견을 버리고 자연 먹이에 맞춰야 제 수명을 누린다. 개미를 전문으로 먹는 인도의 느림보곰.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실제로 로빈스 교수팀이 최근 수행한 다른 연구에서 동물원의 북극곰은 정상보다 10년쯤 일찍 죽었는데, 그 이유는 단백질 위주의 균형 잡히지 않은 식단으로 인한 만성적인 콩팥과 간 질환 때문으로 밝혀졌다. 대부분의 동물원에서는 북극곰에게 지방이 1이라면 단백질이 2∼3인 먹이를 주지만 야생에선 반대로 단백질 1에 지방 2∼3인 먹이를 사냥한다.
미국 동물원의 느림보곰도 잘 돌보았을 때의 예상수명보다 20년 짧은 17살이면 주로 간암으로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동물원에서 야생의 습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과일 등 고탄수화물 먹이를 주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연구자들은 600마리 이상의 야생곰을 조사했어도 간이나 콩팥 질환으로 사망한 사례는 없다고 덧붙였다.
알래스카의 회색곰은 연어만 전적으로 사냥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하루 중 여러 시간을 숲 속에서 장과류(베리)를 따 먹는 데 보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드미트리 아조프체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대표적인 육식성 곰으로 알려진 회색곰도 마찬가지다. 연어가 모천을 거슬러 오르는 가을이 되면 알래스카의 회색곰은 온종일 연어 사냥에 몰두한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자세히 관찰하니 연어를 탐식하던 회색곰은 슬그머니 숲 속에 들어가 몇 시간씩 장과(베리)를 따먹고 돌아왔다.
로빈스 교수는 “박사 학위를 지닌 사람이 느림보곰이나 불곰보다 더 많이 안다는 생각이 뿌리 깊은 것 같다”며 “그렇지만 이들은 약 5000만년 전 진화를 시작해 자신이 무얼 먹고 싶고 무엇이 몸에 좋은지 우리보다 훨씬 잘 안다”고 말했다.
곰은 4750만년 전 식육목 계통에서 갈라져 나와 8종으로 분화했다. 이 가운데 반달가슴곰, 말레이곰, 아메리카흑곰, 안경곰 등 4종은 전형적인 잡식성이지만 나머지는 식성이 전문화했다.
연구자들은 곰의 조상이 육식동물인 것은 맞지만 다양한 먹이를 먹는 쪽으로 분화해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토착 육식동물과 직접 경쟁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인용 논문: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41598-022-19742-z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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