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극장 넘어… 한류, 英박물관까지 진출
세계 최대 디자인박물관 V&A서 9월부터 특별전
한류를 통해 ‘한국’을 보여주다
싸이 ‘강남스타일 재킷’으로 시작
4개 섹션에 한국 역사·문화 담아
기생충 세트장·’오겜’ 의상부터
백남준 현대미술 작품까지 전시
200여점 작품 9개월간 볼 수 있어
‘한류’가 공연장, 극장을 넘어 세계적 박물관까지 진출했다.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V&A)은 오는 9월 24일부터 내년 6월 25일까지 ‘한류! 코리안 웨이브(Hallyu! The Korean Wave)’전을 연다고 15일 발표했다. 해외 유수의 박물관·미술관에서 ‘한류’를 타이틀로 전면에 내세워 전시를 여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1852년 설립된 V&A박물관은 약 5000년에 걸친 소장품 280만여 점을 보유한 세계 최대 공예·디자인 박물관 중 하나다.
이번 전시는 친선을 위한 문화 교류전 성격이 아니다. 박물관 내 한국관에서 작게 여는 전시가 아니라 V&A 측에서 야심 차게 기획한 특별전이다. 지난해 전시 소식이 일부 알려지자마자 미술계와 한류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을 만큼 주목받는 전시다. 이날 공개된 전시 세부 계획을 보면, 단순한 문화현상으로서 한류를 표피적으로 다루는 차원의 전시가 아니라 한국의 역사·산업·대중문화 전반을 관통하는 전시다. 한류라는 틀로 ‘한국’이라는 한 나라를 조망하는 대규모 기획전인 셈이다. 전시에는 영화, 디자인, 패션, 순수미술 등 여러 예술 장르를 아우르는 200여 점이 출품된다.
이 ‘화장실 세트장’을 英박물관에 그대로… - 오는 9월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V&A)에서 열리는 ‘한류! 코리안 웨이브’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 위 사진은 전시에서 재현되는 기생충 반지하 화장실 세트, 아래 사진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 ‘미라지 스테이지’. /CJ ENM·백남준 에스테이트
한류를 상징하는 대표적 장면이 전시장에 펼쳐진다. 영화 ‘기생충’의 이하준 미술감독이 참여해 기생충의 반지하 화장실 세트장을 재현한다.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 참가자가 입은 녹색 운동복, 드라마 ‘킹덤’의 갓 등 한류 팬들에게 익숙한 소품들도 전시된다. 백남준·함경아·권오상 등 한국 주요 현대 미술 작가 작품과 차이킴·미스 소희 등 한국 패션 디자이너 의상도 선보인다. 전시 디자인은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가 총괄했고, 스튜디오 무트 (Studio Mutt)가 3D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전시는 2012년 세계적 한류 열풍을 몰고 온 싸이가 ‘강남 스타일’에서 입고 나온 핑크 재킷으로 시작돼 네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섹션 ‘기술 강국이 되기까지’에서는 한류가 있기까지 역사적 배경을 되짚는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서울올림픽 호돌이 포스터, 1970년대 삼성전자 TV 공장 사진 등을 통해 한국이 전쟁과 분단의 역경을 딛고 초고속 성장을 거쳐 문화·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번째 섹션 ‘장면 연출’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저력을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세 번째 섹션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는 K팝을 다룬다. 한국에서 팬덤 문화가 시작된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에스파’까지 K팝의 역사를 보여준다. 권오상 작가가 만든 3m 크기 지드래곤 조각도 선보인다. 마지막 섹션 ‘인사이드 아웃’에선 한국 패션·뷰티를 조명한다.
영국 런던의 V&A 전경. 1852년 설립된 세계적인 공예·디자인 박물관이다. /V&A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로잘리 킴은 “한국은 한류를 통해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나라에서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문화를 선도하는 문화 강국으로 이미지를 변화시켰다. 이런 현상이 디지털 문화에 능하며 사회의식을 갖춘 글로벌 팬들에 의해 증폭돼 한류가 전 세계로 확산했다”며 “한국 대중문화에 관한 첫 전시를 열어 한류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소개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영국왕립예술학회 종신 석학 회원)는 “세계 디자인계에서 독보적 위치와 영향력을 가진 박물관인 V&A에서 한국 대중문화 위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 전시가 나아가 해외 유명 박물관에 있는 한국관을 국격에 맞게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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