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에 편지 쓴 부산여고생 무슨 일?...“운동장 컨테이너 구호품, 아이티로”
중앙일보
강진 피해를 입은 아이티 난민이 물을 긷고 있다. AP연합뉴스
“발 묶인 지진 구호물품, 대통령님 도와주세요”
“존경하는 윤석열 대통령님. 우리 학교에서 아이티 지진 피해 아이들을 위해 여러 생활용품과 학용품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운송비가 급등해 구호품이 운동장에 방치돼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부디 이 일에 도움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부산 삼성여고 3학년 이서영 양이 지난달 7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낸 자필 편지 내용이다. 이 양은 편지에서 “대통령님 도움으로 구호물품을 아이티에 보낼 수 있다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울 것”이라고도 적었다.
부산 사하구 삼성여고에서 학생과 시민이 아이티 지진 난민들에게 보낼 의류, 생필품 등을 컨테이너에 싣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 양이 재학 중인 삼성여고 학생들은 지난해 8월 14일 규모 7.2 강진이 아이티를 덮쳤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삼성여고는 아이티와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2010년 아이티가 대지진 피해를 겪었을 때 학생들이 구호 물품을 모으고 응원 편지를 써 아이티 지진 난민에게 전달했다. 4년 뒤 아이티에서 11명의 소년 소녀로 이뤄진 ‘기적의 합창단’이 삼성여고를 방문해 합창 공연으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컨테이너 4개 채운 물품 학교 운동장에 묶여
아이티에서는 지난해 또다시 강진이 일어나 1300명이 숨지고 5800명이 다쳤다. 3만여 가구가 집을 잃었다. 소식을 접한 삼성여고 재학생은 다시 한번 학용품과 담요 등 물품을 모으는 데 뜻을 보탰다. 삼성여고 이외에도 인접한 삼성중 학생들과 뜻 있는 지역 시민, 사업가 등이 동참했다. 신발 3만 켤레와 옷가지 5만벌, 피아노, 자전거 등 1TEU(가로ㆍ세로 2.4m, 높이 8m) 컨테이너 4개를 가득 메울 만큼 물품이 모였다. 모든 구호품은 중고가 아닌 새것으로 시가 1억2000만원 상당이다.
아이티로 보내기 위해 모은 구호물품이 부산 삼성여고 운동장 컨테이너에 쌓여있다.
하지만 구호품은 아이티로 가지 못하고 10개월째 삼성여고 운동장에 발이 묶여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 등 여파로 물류비가 폭등하면서다. 부산시 허가를 받아 구호품을 모집한 부산소망성결교회 원승재(75) 목사는 “애초 물품을 아이티로 보내는 선박 비용으로 2000만원을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보내려고 보니 비용이 1억원까지 뛰었고, 여전히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물품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원 목사는 2010년부터 30회 넘게 아이티에 드나들며 구호품 전달하고 봉사활동을 했다. 또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희망기술학교’를 세웠다.
외교부 “법상 불가” 답변… 3개월 뒤엔 원주인 돌려줘야
이 양은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이 편지는 지난달 15일 대통령 비서실에서 외교부 다자협력ㆍ인도지원과로 이첩돼 일반 민원으로 접수됐다. 외교부는 “지원할 수 없다”고 답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외교부가 이들 구호품을 접수하거나, 아이티 전달을 대행해주는 것은 불가능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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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7.2의 강진으로 무너진 아이티 남서부 항구도시 레카예의 한 호텔. AP연합뉴스
원 목사와 물품 모집에 동참한 학생과 일부 시민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오는 10월 7일이면 부산시가 허용한 해당 물품 모집 기간이 만료된다. 이 경우 관련법에 따라 어렵게 모은 물품을 모두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원 목사는 “기간 연장을 포함해 물품을 아이티로 보낼 방안을 백방으로 찾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신규 모집 등록 등을 통한 기간 연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검토하고 있다”며 “원 목사 등 물품 모집 주체들과 협의해 구호품을 보내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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