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상하이의 절규
상하이 봉쇄로 고통받는 상하이 시민의 목소리를 담은 '4월의 목소리' 동영상 장면. /유튜브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한 베이징은 공포와 혼돈의 도시였다. 사람들이 기침과 고열로 죽어나가는데 공산당 지도부는 “곧 통제된다”는 말만 반복하며 우왕좌왕했다. 외국인 엑소더스(대탈출)까지 벌어지자 하이난성 서기로 내려갔던 왕치산을 ‘구원 투수’로 불러올렸다. 베이징 시장이 된 왕치산은 군경을 동원해 환자가 발생한 지역을 완전 봉쇄하고 물과 음식을 배급했다. 격리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베이징에서 2434명이 감염돼 147명이 사망했지만 사스는 잡혔다.
▶공을 세운 왕치산은 2012년 중국 최고지도부(상무위원)에 입성해 시진핑 주석의 최측근이 됐다. 2013년 조류 인플루엔자 유행 때도 도시 봉쇄로 불길을 잡았다. 시진핑 포함 최고 지도부는 ‘봉쇄 방역’에 대한 성공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시진핑은 코로나 초기 대응에 실패해 “역사의 죄인”이란 비난을 들었다. 그러자 민주주의 국가에선 상상도 못 할 도시 봉쇄를 강행했다. 서울보다 인구가 많은 도시들의 사람·물자 이동을 틀어막고 현관문에 못질까지 했다. 대도시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다. 2020년 가을 중국 내 신규 확진자가 20일쯤 나오지 않자 방역 공로자에게 훈장을 주며 “공산당은 코로나 전쟁에서 중대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축했다. ‘봉쇄하면 이긴다’는 확신을 굳혔을 것이다.
▶상하이가 지난 1일 봉쇄됐다. 텅 빈 2500만 도시를 드론으로 찍은 영상을 배경으로 상하이 시민의 육성 절규를 담은 ‘4월의 목소리(四月之聲)’란 동영상이 공개돼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아파트 단지에선 “물자를 보내달라” “바이러스가 아니라 굶어서 죽겠다”고 외친다. 구호 물자를 싣고 온 트럭 기사는 “(전달 못 한) 채소가 전부 썩겠다”고 탄식한다. 위급한 아버지를 병원으로 옮기지 못한 아들은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고 울부짖는다. 자원봉사자는 “봉쇄 표시를 더는 못 붙이겠다”고 당국 지시를 거부하고, 지역 공무원은 “(무기력한) 제가 더 슬프다”며 한숨 짓는다. 공산당은 이런 ‘목소리’ 확산을 막고 있다.
▶코로나 독성이 떨어지면서 전 세계가 ‘위드 코로나’로 가고 있다. 그런데 중국만 무자비한 봉쇄를 고집하는 건 과거 성공 모델에 집착하는 지도부의 굳은 사고와 관련 있을 것이다. 올가을 시진핑의 공산당 총서기 3연임을 앞두고 중국식 봉쇄 방역이 성공했다고 선전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봉쇄 부작용이 계속 커지면 어느 날 갑자기 ‘치료제 자체 개발’을 발표하며 방역 승리를 선언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죽어나는 건 일반 국민들 뿐이다.
안용현 논설위원 ahny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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