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서울의 스카이라인, 더 높아져야 한다
눌려있던 서울의 성장판(成長板)이 다시 열릴 모양이다. 지난달 오세훈 서울시장은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주거용 건축물 35층 제한 규정을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른바 ‘박원순표(標) 35층 룰’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이후 서울시는 제3종 일반주거지역은 35층 이하로, 한강 수변 연접부는 15층 이하로 층고를 억제해 왔다.
3일 오후 서울 남산 전망대를 찾은 시민이 용산구와 강남 일대를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오 시장은 다채로운 스카이라인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차제에 이는 서울의 미래상 전반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될 필요가 있다. 자고로 위대한 문명 뒤에는 위대한 도시가 있는 법이다. 그리스·로마 문명이 그랬고 서구 근대 문명도 그랬다. 굳이 문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진 강국으로 가는 길에는 항상 메트로폴리스의 역할이 있었다. 일정 수준의 인구 규모, 자유로운 경제활동, 경쟁과 혁신 분위기, 그리고 다양성과 개방성에 따른 사회적 활력은 언제 어디서나 거대 도시를 국부의 발판이자 국력의 원천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19세기 전후 ‘근대화의 세계화’ 물결 속에서 우리가 자주적 근대화에 실패한 것에는 성리학적 이념 도시, 양천(良賤) 신분 도시로 일관한 한양의 저발전 탓이 크다. 인구 측면에서도 조선의 왕도(王都)는 나라가 망할 때까지 20만 명 정도에 머물렀는데 이는 일본 에도(江戶)가 18세기에 이르러 인구 100만짜리 세계 최대 상공업 도시로 발전한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뒤늦게나마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압축적 근대화가 가능했던 것은 배후에 서울의 역동적 성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도 성장기 메트로폴리스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서울의 외관은 ‘수직 도시’로 천지개벽했다. 무엇보다 서울은 1970년대 이후 아파트 도시로 변신하기 시작했는데, 고층 아파트를 거쳐 오늘날에는 초고층 아파트가 단연 대세다. 현재 서울 아파트의 평균 층수는 1980년대의 두 배 이상이다. 서울이 ‘천만 도시’가 된 것은 누가 뭐래도 아파트의 힘이다. 이전의 ‘납작 도시’로서는 어림없는 공간 혁명의 개가가 아닐 수 없다. 전반적으로도 서울은 마천루 도시로 변모했다. 1970년에 건설된 삼일빌딩, 1985년에 준공된 63빌딩, 2017년에 개장한 123층 롯데월드타워를 보면 서울의 스카이라인에는 엇비슷한 간격으로 일종의 ‘배가(倍加)’ 법칙이 작동하는 느낌이다. 이러한 고층화·고밀도 개발이 세계 도시 서울을 만들고, 이는 다시 대한민국을 선진국 턱밑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서울의 일취월장(日就月將) 기세는 주춤해졌다. 이는 ‘한강변 35층 규제, 도심부 90m 제한’이 웅변한다. 개발은 악이고 보존은 선이라는 오해, 환경과 경제는 양립할 수 없다는 편견, 주거지의 높낮이로 빈부가 양극화된다는 착시에 빠진 결과다. 지난 10년 가까이 서울은 상생, 포용, 인권, 나눔, 촛불 등 각종 ‘거룩한’ 도시 담론에 갇혀 미래로 거의 나가지 못했다. 작년부로 천만 서울 인구가 32년 만에 붕괴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최근 서울의 세계 도시 경쟁력이 계속 후진하는 것도 놀랍지 않다.
이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뉴욕이나 런던, 파리,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이 글로벌과 디지털, 모빌리티를 키워드로 일제히 도심 재개발이나 도시 대개조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다. 특히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도쿄 도심의 경우는 수퍼 초고층 빌딩들로 최근 20년 동안 상전벽해가 됐다. 도시의 인프라 업데이트를 반(反)개발주의나 공간 정의(正義)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관념의 호사(豪奢)다. 실상 그것은 국가의 사활 및 번영에 직결된 문제다. 또한 결과적으로는 경관 미학, 녹지 증가, 보행 환경 개선 등 도시 공간의 공공성에 오히려 도움을 주기도 한다. 공중권 매매 같은 운용의 묘를 살리고 최첨단·친환경 건축 재료 및 건설 공법을 활용하면 말이다.
한때 근대화의 주역이었던 서울은 K컬처 세계화 시대를 맞아 문명의 선도자로 거듭나야 한다. 초일류 세계 도시는 서울의 특권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도의 운명이다. 그 운명에 직면하는 방법이 바로 서울의 또 한 차례 수직 공간 혁명이다. 오 시장의 이번 아파트 층수 관련 정책은 따라서 미래 서울의 ‘높이 관리’에 대한 전반적 도시 계획으로 이어져야 한다. 서울을 통째 거대한 ‘타워시티’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원칙도 없고 비전도 없이 ‘쥐 파먹은 머리’처럼 들쑥날쑥한 지금 스카이라인으로는 서울의 꿈을 찾기도 힘들고, 서울의 힘을 느끼기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높이에 관한 한 서울은 좀 더 욕심 낼 자격이 있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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